우리 부부의 고향

18.12.06(목)

by 어깨아빠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이 떠졌는데 시윤이도 깨 있었다. 다시 잠들기를 기다렸는데 금방 잠들 것 같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시윤이에게 기별을 전했다.

"시윤아. 아빠 이제 출근해야 돼. 아빠 나갈 테니까 시윤이는 나오지 말고 엄마 옆에서 더 자? 알았지?"
"으응"
"나오지 말고 더 자?"
"으응"
"아빠 갈 게. 시윤이 빠이빠이. 사랑해"
"빠빠"

이미 방을 빠져나온 뒤 울린 알람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들렸다.

[쓰레기 버려라. 쓰레기 버려라. 쓰레기 버려라]

현관 앞에 나의 출근을 기다리며 도열하듯 세워진 쓰레기봉투와 재활용 상자들을 하나씩 챙겨 들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양 손에 들었다기보다는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배 위에 걸쳐서 힘겹게 껴안고 갔다. 비록 쓰레기와 함께 했지만노는 게 목적이 아니긴 해도 어쨌든 내일 하루 휴가까지 내고 그리운 얼굴이 많은 울산에 가는 거고 마치 여행을 앞둔 기분이라 평소랑 다르게 출근길이 가벼웠다.

아내는 점심시간 무렵에 파주 처갓댁에 도착해서 머물다가 퇴근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왔다. 5시쯤 출발했다. 장장 400km가 넘는 여정이라 언제나 출발하기 전에는 막막하다.

'아. 언제 가나'

소윤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차에 타면 바로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전혀 졸린 기색 없이 말똥말똥했다. 2시간 가까이 달렸을 때도 전혀 잘 기미는 안 보이고 오히려 계속 물었다.

"엄마. 휴게소는 얼마나 더 가야 되여?"
"아빠. 휴게소 언제 갈 거에여?"

(여기에도 나름의 사연이 있는데, 지난 금요일 아내와 내가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서 소윤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오겠다고 했었는데 깜빡했다. 소윤이도 잊었는지 말이 없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갑자기 아내에게 그때 약속했던 아이스크림을 자기가 먹었냐고 묻길래 아내는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따가 사주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첫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은 강력한 의지로 환원되었다.)

어차피 저녁은 먹여야 하니 휴게소에 들어가 저녁을 먹이기로 했다. 가장 만만한 게 돈까스였는데 낮에 장모님이랑 먹었다길래 황태해장국과 우동을 시켰다. 아내랑 나는 굳이 따로 시켜서 먹지 않았다. 애들도 그야말로 끼니를 때우는 수준으로 먹었다. 소윤이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고. 소윤이도 시윤이도 다시 차에 태워 출발하니까 금방 잠들었다. 밤잠이길 바랐지만 그러기에는 차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잘 건데 뭐"

맞다. 애들이 안 자고 버티는 게 힘든 건 애들을 재우고 뒷 일을 도모할 때나 그런 거지 함께 잘 생각이면 자거나 말거나 먼저 잠들면 된다. 차라리 차에서 많이 자주는 게 운전할 때는 더 낫다.

애들은 자고, 오늘은 웬일인지 아내도 옆에서 자지 않고 계속 말 상대가 되어준 덕분에 6시간 치고는 수월하게 느껴졌다. 긴 시간의 운전이 끝나가서 그런 건지 우리의 신혼이 담겨 있는 곳이라 그런 건지 톨게이트 위의 [울산], KTX 역의 [울산역] 이 눈에 들어오면 참 기분이 좋다. 내 고향은 서울이고 아내 고향은 목포라면 우리 부부의 고향은 울산인 셈이다.

오늘은 한나네(아내 친구, 시언 시아 시온 엄마, 하준 아내) 신세를 지기로 했다. 11시쯤 도착했다. 한나네 애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마치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새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주 잠깐 하준이, 한나랑 얘기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소윤이는 안 자겠다고 살짝 떼를 쓰긴 했지만 엄마, 아빠가 누워서 자겠다는데 자기가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워낙 늦어서, 활력을 찾은 듯했던 소윤이도 금방 졸린 기색이 느껴졌다. 아직 뭘 모르는 (혹은 뭘 모르는 척하는) 강시윤만 빨빨거리면서 누워있는 엄마, 아빠, 누나 사이를 활보했다.

그래. 밤을 새워서 돌아다니든 뭘 하든 니 맘대로 해라. 아빤 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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