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금요일

21.08.06(금)

by 어깨아빠

아내는 피곤함을 호소했다. 그야말로 육체의 피로였다. 이번 주 너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데다가 평균 수면 시간도 너무 부족했던 탓일 거다. 드디어 금요일이지만, 그만큼 진하게 농축된 피로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오늘도 많은 걸 했다. 식빵에 케첩, 피자, 야채, 어묵, 햄 같은 걸 올려서 피자빵도 만들었고, 소윤이를 데리고 안과도 다녀왔다. 피곤하다고 출근을 안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육아도 멈출 수가 없다.


소윤이는 며칠 전부터 눈이 가렵다고 했는데 오늘은 아내가 보기에도 눈이 너무 빨갛다고 했다. 심하지 않은 일시적 눈병일 거라고 생각했고,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다만 의사 선생님은 비염과의 연관성을 언급하셨다. 비염이 치료가 되지 않는 한 눈도 계속 비슷할 거라고 하셨다. 소윤이가 안쓰러웠다. 만성 비염 환자로서 남들에게는 가볍게 보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괴로운 건지 알아서 더 그랬다.


아내랑 소윤이의 비염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다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몸이 안 좋은 걸 뭐 많이 먹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훨씬 적게 먹는 것도 같고. 매 끼니도 아내가 정성스럽게 잘 차려주는데 비염이라니. 아마 다 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겠지. 소윤이에게 자연인에 가까운 식단을 적용해야 나을는지. 아무튼 몸에 안 좋고, 비염에 독이 되는 무언가를 많이 먹이는 것 같지 않은데 나아지지 않는 비염이 원망스러웠다.


아내는 안과도 엄청 늦은 오후에 갔다. 생각이야 진작에 다녀오고 싶었겠지만, 끊임없이 할 일이 있었을 거고 거기에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준비해서 나갈 엄두를 쉽게 내지 못했을 거다. 그래도 금방 다녀왔는지 퇴근했을 때는 이미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저녁으로 불고기를 준비했다. 고기는 장모님이 사 주셨다고 했는데 혹시 양념도 장모님이 해 주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딱 그 맛이었다.


“여보. 이거 양념도 여보가 한 거야?”

“어, 내가 했지”

“너무 맛있는데? 소윤아, 시윤아. 불고기 너무 맛있지 않아?”


그 맛있는 불고기를 앞에 두고 서윤이는 또 난리였다. 요즘 밥 먹을 때마다 두 가지를 가지고 고집을 부린다. 하나는 밥그릇과 숟가락을 자기 앞에 놓고 먹겠다는 것, 또 하나는 물을 너무 자주 마시겠다고 하는 것. 그게 거부되면 악악 거리면서 화도 내고 짜증을 부린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말은 분명히 다 알아듣기는 하고 또 훈육도 얼마든지 통할 만큼 컸지만, 그래도 너무 아기 같아서 ‘이게 될까’싶어서 뭔가 본격적인 가르침을 망설이게 된다. 또 하나의 큰 걸림돌은, 솔직히 말하면 그냥 ‘서윤이를 혼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크다. 그냥 다 받아주고 싶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서윤이가 더 크면 ‘애초에 잘 가르쳐 놓을걸’하면서 후회할 걸 아니까 굳게 마음을 먹고 엄한 아빠가 되는 거다. 물론 서윤이한테는 아직 그럴 일이 거의 없었다. 요즘 들어서 조금씩 고민의 순간이 생기고 있다.


요즘 아내가 밥 먹을 때마다 서윤이 때문에 힘들다는 걸 알고 있어서 오늘은 과감하게 훈육에 들어갔다. 밥상머리에서 밥 먹는 것 가지고 떼를 쓸 때는 사실 간단하다. 밥그릇을 치우면 된다. No manner, No rice. 이게 가장 효과적이다. 서윤이에게 다정하게 얘기하며 밥그릇을 치웠다.


“서윤아. 밥 먹을 때 그렇게 자꾸 짜증 내면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짜증 내지 않고 밥 먹을 수 있으면 아빠한테 말해. 알았지?”


말은 못 해도 표현은 다 한다. 내가 몇 번 밥을 먹을 거냐고 물어봤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매서운 눈매를 지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밥그릇을 치우고 아기의자에서도 내려놨다. 서윤이는 엄마한테 가서 슬픔을 호소했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어, 서윤아. 아빠가 말씀하신 것처럼 짜증 안 내고 밥 먹을 거면 아빠한테 가서 얘기해야 돼. 엄마도 똑같아”


서윤이는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우는 것이었겠지만 아내와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서윤이는 그 뒤로 아내에게는 몇 번이나 가서 태도를 고치고 밥을 먹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놀랍게도 이런 고차원의 소통이 가능하다. 정말이다. 부모만 알아먹는 표현이 존재한다) 아빠에게도 가서 그 태도를 보이라고 하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갔다. 글로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누가 봐도 ‘고집’이었다. 아직 500일도 못 산 핏덩이어도 이렇게 고집이 세다. 인간의 본성일 테고 나도 마찬가지리라. 서윤이는 끝내 다시 식탁에 앉지 못했다. 난 저녁에 교회에 가야 했고 아직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기 전이었다. 혼자 남을 아내가 서윤이의 무한 울음에 시달릴까 봐 그게 좀 걱정이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시윤이라도 씻겨 놓고 가려고 시윤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씻겼다. 그러고 나서는 더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맡기고 집에서 나왔다.


서윤이는 아빠에게 인사하라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아내에게로 갔다. 이것 역시 누가 봐도 ‘삐짐’을 표현하는 거였다. 다행히 내가 나가고 나서 더 심해지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마 내일 아침은 엄청 잘 먹을 거다. 서윤이가 먹을 아침을 미리 준비해 놨다.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바로 대령할 수 있도록.


예배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과자를 사 오라고 했다. 밤에 과자를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집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내랑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다 잤다. 이 맛에 일주일 버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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