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7(토)
서윤이는 아주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아내랑 아침을 먹었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도 쉬지 않고 먹었다고 했다. 셋 중에 고집이 가장 셀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은 반복 훈육은 언제나 열매를 본다.
아내는 아침에 치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11시 30분까지 가야 해서 아침에 밥 먹고 조금 있다 보니 금방 시간이 됐다. 오늘은 어디 안 가고 집에 있기로 했다. 서윤이는 자기는 남고 엄마만 떠나는 상황에도 아무렇지가 않았다. 소윤이, 시윤이는 당연하고. 내가 제일 슬펐다.
‘여보. 가지마’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디라도 잠깐 나갔다 오자고 했다. 아내도 치료받고 오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서 바람도 쐬고 봐서 점심도 먹고 들어올 생각으로 준비를 했다. 서윤이 기저귀 갈고 옷 갈아입히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에 비밀번호 누를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뭐지. 벌써 왔나?’
진짜 아내였다.
“여보.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빨리 끝나던데”
“아, 진짜? 생각보다 엄청 빨리 끝나네”
“그러니까. 나가려고 했어?”
“어, 애들이 어디라도 나가자고 해서”
아내는 마취가 안 풀려서 뭘 먹을 수가 없었다. 한 2시간은 지나야 먹는 게 가능할 거라고 했다. 서윤이는 졸려 보였다.
“서윤이는 재우고 소윤이랑 시윤이만 데리고 나갔다 올까”
“그래. 그래도 되겠네”
“그럼 여보가 서윤이랑 방에 들어가면 그렇게 해야겠다”
나가려고 옷까지 다 입은 서윤이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가장 바람직한 조합이었다. 내심 ‘서윤이랑 같이 나가면 뭘 먹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 한결 아니 열결은 가벼워졌다.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재우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지난 주의 더위보다는 한풀 기세가 꺾인 듯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덥긴 더웠다.
“아빠. 킥보드 타고 가도 돼여?”
“그래”
소윤이와 시윤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도 신나게 발을 굴렀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뭘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이것저것 얘기했다. 그중에 딱 적당한 게 ‘짜장 떡볶이’였다. 근처에 있는 분식집으로 갔다. 짜장 떡볶이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시켰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짜장 떡볶이 먹는 걸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 시윤이 생일에도 집에서 먹었는데 그때는 내가 아파서 정신이 없었다. 엄청 잘 먹었다. 둘 다 참 다양한 음식을 편식하지 않고 잘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녀석의 아빠인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잘 먹었다. 나랑 같이 먹으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눈다.
“누나아. 아빠 봐. 아빠는 저거를 한 입에 다 넣으셔어”
“와, 그러게. 시윤아 아빠 입 엄청 크다 그치?”
떡볶이를 다 먹고 나서 아내가 먹을 점심도 샀다. 생긴지는 좀 됐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또띠아 가게에 가서 아내가 미리 얘기해 준 걸로 샀다. 한살림에 들러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샀다.
서윤이는 깨서 아내 무릎 위에 누워 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는데 문 여는 소리가 들리니 눈을 번쩍 떴다고 했다. 서윤이는 누구를 보고 좋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빠, 언니, 오빠를 보며 활짝 웃으며 반겼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윤이는 닥치는 대로 열고 꺼내는 데 맛이 들렸다. 주방 서랍도 열고 옷 서랍도 열고 책도 꺼내고. 한 겨울에 철원에 내리는 눈처럼 아무리 열심히 치워도 뒤돌아서면 다시 그 상태고 또 치우고 돌아서도 그 상태고 그랬다. 블록을 하는 언니와 오빠를 열심히 방해도 하고, 오빠가 서럽게 울게도 만들고.
저녁도 나가서 먹기로 했다. 점심때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서윤이는 저녁이 되어서야 처음 집 밖으로 나가게 됐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가려던 곳이 여름휴가라 문을 열지 않았다. 가까운 시장에 있는 다른 국수 가게에 가기로 했다. 아주 예전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맛이 좋았다. 간 김에 시장 구경도 하고(구경이라고 해도 별 건 없고 그냥 시장을 가로질러 가면서 좌우를 둘러보는 정도다).
자리는 널찍했지만 아기의자가 없었다. 유모차에 앉혀서 자리를 잡았는데 서윤이가 자기를 풀어달라며 짜증을 냈다.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지려고 했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도 이러면, 오늘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미리 각오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내가 안고 있었다.
막국수, 메밀국수, 돈까스를 시켰는데 깜짝 놀랐다. 셋 다 너무 맛있어서.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잘 먹었고 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서윤이는 유모차에 앉아서 내가 떠 주는 밥과 돈까스를 날름날름 잘 받아먹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짧은 칭얼거림도 없이 아주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에는 당연히 커피도 한 잔씩 샀다.
서윤이는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다.
“여보. 그럼 서윤이는 아예 방에 눕힐까?”
“그래, 그러면 되겠다”
서윤이는 방에 눕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준비를 했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오늘 하루 종일 굉장히 피곤했다. 아까 낮에는 애들이랑 거실에서 뒹굴다가 잠들기도 했다. 아내는 방에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이라고 했지만 그럼 너무 오래 잘 것 같아서 그냥 일어나서 정신을 차렸다. 아내도 나랑 비슷한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카톡을 보냈다.
“흑흑 졸려. 잠들기 싫다”
한 30분 정도 후에 내가 샤워를 하고 있을 때 아내가 카톡을 또 보냈다.
“여보 물 한 잔만. 서윤이 깼네”
“나 샤워중인데”
“아, 오키오키”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아내가 거실에 나와 있었다. 서윤이도 함께.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서윤이의 표정이 너무 개운해 보였다. 무섭게. 나를 보매 생긋생긋 웃는 게 조금의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그래봤자지 뭐’ 정도로 생각했다. 아내는 다시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방에서 서윤이의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렸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서윤이의 기척은 물론이고 아내의 기척까지도.
아내는 거의 2시간 정도가 흐른 뒤에 슬픈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여보. 나 왜 안 깨웠어?”
대답도 하기 전에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아”
아내는 절망스러운 표정과 함께 주저앉았다.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더 문에 가까워졌다. 아내가 문을 열어줬더니 서윤이는 아내만큼 슬픈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래도 아내는 서윤이를 보며 귀엽다고 웃었다. 이게 막내의 힘이다. 모든 상황을 감당하게 하는 막내 특유의 저력. 아내는 다시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난 이번에도 직감했다. 아내가 이번에도 쉽게 나오지 못할 거라는걸. 서윤이가 잠들지 않아서라기보다 아내가 너무 피곤해 보였다. 서윤이를 재우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아내가 먼저 잠들 것 같았다.
예상대로 아내는 날을 넘기고 나서야 나왔다.
“여보. 고생했어”
“하아. 허무하다”
아내는 영화라도 보면서 토요일 밤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재우는 건지 헷갈리는 육아인의 밤을 보내면서 무산됐지만.
다음 주에는 꼭 영화를 한 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