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08(주일)
서윤이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걸 내가 가장 먼저 알아차렸고. 서윤이에게 아직 나의 기상을 알리지 않은 채 동태를 살폈다. 서윤이는 혼자 뭐라고 중얼중얼하면서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더 잠을 청하고자 하는 게 본능적인 행동이지만, 그걸 뛰어넘는 더 강력한 본능이 작동했다.
“서윤아. 깼어? 이리 와. 아빠 안아”
서윤이는 활짝 웃으며 나에게 와서 안겼다.
“무우우. 무우우”
“그래. 물 마시자. 아빠랑 나가자”
최대한 조심스럽게 나온다고 나왔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도 곧 따라나올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가 일어나서 나왔고 곧이어 시윤이도 나왔다. 그때가 7시였다. 그렇게 일찍 일어난 건 오랜만인 느낌이었다. 요즘에는 대체로 아내가 일찍 일어났다.
‘소파에 누워서라도 조금 더 자야지’
라고 생각하며 소파에, 바닥에 눕기는 했지만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늘은 웬일인지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다. 물론 착각이었다. 오후가 되니 어제처럼 병든 닭이 되었다.
냉동실에 얼려둔 밥을 데워서 계란밥을 만들어줬다. 세상 편하고 간단하면서도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은 게 계란밥이지만, 아무리 간단해도 세 아이의 밥을 차리고 먹이려면 은근히 체력이 소모된다. 아내는 아침을 거의 다 차렸을 때쯤 나와서 서윤이 밥을 먹였다. 난 그 사이 어제 미루고 잔 설거지를 했다.
서윤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때부터 여기저기를 열며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었다. 예배드리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웃음을 흘렸다. 아내는 평일에도 내내 보는 모습이라 조금 질린 듯했다. 아 웃음에 질렸다는 게 아니라 자꾸 뭘 열어서 꺼내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것에 질렸다는 말이다.
“서윤아. 그만 좀 꺼내라. 휴우”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주말에나 잠깐 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우리 막내 많이 컸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었다.
서윤이는 밤에 잠을 개운하게 자서 기분이 너무 상쾌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이 넘쳤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활력을 잃고 바닥에 엎드려 손가락을 빨았다. 눈꺼풀의 움직임도 현저히 느려졌다. 곧 그대로 잠들었다. 맨날 사진으로만 보던 ‘거실 노숙’의 순간을 처음으로 직접 봤다.
서윤이를 방에 눕히고 나오자 소윤이가 우노를 하자고 했다. 시윤이는 세차를 하러 가자고 했다(아침에 내가 먼저 얘기했었다. ‘우리 오늘 세차하러 갈까’하고). 서윤이의 방해 없이, 서윤이에게 미안한 마음 없이 홀가분하게 우노를 하고 싶은 소윤이의 심정. 어떻게든 밖에 나가고 싶은 시윤이의 심정. 두 아이의 욕구도 채워주고 싶고, 서윤이에게 눈앞에서 자기만 놔두고 모두 나가는 비극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심정. 이 세 심정을 모두 고려해서, 서윤이가 깨기 전에 빠르게 우노도 몇 판 하고 세차도 하러 나가기로 했다.
더위가 한풀 꺾인 건 분명했지만 그래도 더웠다. 꺾이기 전 더위가 너무 기세가 좋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나는데 아빠를 도와 열심히 닦겠다며 걸레질을 하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얼굴이 금방 달아오르고 땀이 났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너무 덥지?”
“네”
“이제 다 했어. 가자”
아내는 서윤이를 등에 업고 점심을 만들고 있었다. 볶음밥이었다. 서윤이는 깨서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고 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내가 데리고 와서 안으니까 엄마한테 가겠다며 내 품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여보. 내가 나머지 할게. 여보가 서윤이 좀 안아줘야겠다”
아내가 하던 볶음밥을 이어 받아서 마무리를 했다. 점심도 맛있게 먹었다. 점심 먹고 나서는 장모님이 사 주신 사과 수박의 속을 파내고 아내가 얼려둔 우유를 갈아서 우유수박빙수를 만들어 먹었다. 거창한 이름이지만 그냥 수박이랑 우유얼음을 같이 먹은 거였다. 다른 부재료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래도 시원한 맛에 다들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 분명히 설거지를 한참 했는데 누가 나 몰래 와서 싱크대에 그릇을 넣어 놓고 도망갔는지 아까 그대로인 느낌이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이거 아까 그 장면 아닌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도 설거지가 그나마 가장 기쁘게 아니 기쁘지는 않지만 즐겁 아니 그나마 가장 보람차게 할 수 있는 집안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가면 갈수록 식기세척 생각이 간절해진다. 내년 생일에는 아내한테 식기세척기를 선물로 사달라고 할까.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서윤이랑 노는 걸 지켜봤다. 이불을 가지고 와서 해먹이라며 태워주기도 하고 여전히 이것저것 꺼내는 서윤이를 쫓아다니며 엄마 대신 한숨도 쉬고. 그렇게 지켜보다가 한 번씩 잠이 들었다. 나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
“여보. 나 코 골았어?”
“어”
“아, 그래? 아우 피곤하다”
그렇게 몇 번 스스로 놀라고 나서 조금 안정(?)을 되찾았나 보다. 아주 잠깐 쪽잠을 잤다. 깼을 때는 이불이 덮고 있었다. 아마 아내가 소윤이나 시윤이에게 시켰거나 소윤이가 알아서 덮어줬겠지(시윤이가 그랬을 리는 없다고 본다). 정말 짧게 자고 일어났지만 그래도 좀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바람도 쐬고 물도 사고 커피도 살 겸 늦은 오후에는 집에서 나왔다. 차에 타고 출발하는 순간부터 비가 거세게 내렸다. 꼭 태풍이 온 것처럼. 그래도 먼 거리를 가는 건 아니라 전혀 부담이 없었고 오히려 좋았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는 이 빗소리를 너무 좋아해”
그다음 말은 속으로 생각만 했다.
‘좋아하는 것치고는 경험해 본 적은 거의 아니 아예 없지. 그런 집에서 살았던 적이 없으니까’
볼 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올 즘에는 비가 거의 그쳤다. 마지막으로 마트에 들를 때 아내는 나와 소윤이, 시윤이만 내려주고 서윤이랑 먼저 갔다. 다른 이유는 없었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조금이라도 걷게 해 주려고 그랬다.
그러고 나니 또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시켰다. 옷을 입힌 채로 물도 막 뿌려주고 엄청 차가운 물도 뿌리고 장난도 치고 그랬다. 불쌍한 우리 삼 남매는 올여름에는 물놀이를 한 번도 못했다. 화장실에서 샤워기로 장난치는 것도 그렇게 재밌다고 깔깔거리는데. 왜 그랬지. 다른 사람들은 물놀이 많이 하던데. 코로나 때문인가, 무더위 때문인가, 나의 게으름 때문인가.
나와 아내는 라면을 먹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두부와 김, 오이지를 반찬으로 먹었다. 서윤이는 언젠가 먹다 남은 불고기와 밥을 줬다. 맛있게 잘 먹고 나니 또 설거지가 한가득이었다. 그쯤 되니 하루 종일 먹이고 치우느라 볼 일 다 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나마 먹기 전에 샤워를 시켜서 먹고 나서는 양치만 해도 된다는 게 위안(?)이었다.
일주일에 5일을 그렇게 사는 아내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아봤다.
“여보. 하루 종일 무슨 설거지만 하는 느낌이야”
착한 아내는 ‘그게 니가 할 소리냐. 난 맨날 그래’라고 하지 않고 인간 식기세척 아니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잘 쳐줬다.
서윤이는 오늘도 두 번의 낮잠을 잤다. 아까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잠들어 버렸다. 재우러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자기 싫다며 우는소리가 들렸다. 바로 아내의 카톡이 왔다.
“자꾸 내 손 잡아 끌어. 나가자고”
그러고도 한참을 더 있었다. 서윤이 소리도 계속 들리고. 계속 우는소리는 아니었고 기분 좋고 잘 생각 없어서 장난치는 소리였다. 결국 아내는 오늘도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고 나서야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여보. 주말이 벌써 끝났네”
“그러게”
“여보. 그래도 다음 주 월요일은 휴일이야”
“그러네? 좋다”
내일 월요일도 안 왔는데 다음 주 월요일을 얘기하는 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싶지만, 그게 직장인의 낙이요 육아인의 낙이니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