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엄마를 힘들게 한 서윤이가, 새벽에는 온 가족의 잠을 방해(한 줄 알았는데 소윤이랑 시윤이는 못 들었다고 했다)했다. 새벽에 깨서 엄청 울었다. 이유를 모르겠다. 꼭 무서운 꿈 꾼 것처럼 울었다. 아내가 안고 거실에도 나가고 그랬는데 쉽게 달래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자세히 쓰니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난 깨긴 했지만 잠결에 누워서 상황을 인지할 뿐이었다. 아내만 움직였다.
그 뒤로는 계속 잠을 설친 것 같다. 알람이 울리기 30분 전에 잠이 깼다. 억지로 10분을 더 누워 있었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그냥 일어났다. 차라리 빨리 가서 졸리면 차에서 눈을 좀 붙이는 게 더 나았다. 행주대교를 넘어가는데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는 정말 오랜만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잤다. 조금도 덥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그저께가 입추였고 내일은 말복이라며 계절은 변하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토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집안일 표를 만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집안일을 분배해 주고 그걸 확인하는 표를 만든 거다. 진짜 집안일을 덜기 위함이라기보다(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될 때도 많고, 지금보다 더 크면 도움이 많이 되겠지만) 이것도 하나의 훈련이었다. 해야 하는 일은 해야만 하는 훈련,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걸 배우는 훈련, 나도 우리 집의 중요한 일원이고 중요한 임무가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훈련,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일이 하찮아 보여도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아는 훈련. 사실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시작한 거다. 아니 이제라도 시작한 거지.
맡은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진을 보내줬다. 시윤이는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그러다가 누나가 격하게 칭찬받는 걸 보고는 동기부여가 돼서 열심히 움직였다고 했다. 아내는 곧바로 서윤이 동영상도 보내줬다. 카톡과 함께.
“엄청난 방해꾼”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아내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시윤이와 큰 훈육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나에게 전한 것만 그 두 번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두 번을 합쳐 1시간 30분이었다. 찌꺼기와 불순물이 남지 않는 깔끔한 훈육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아니 많다. 특히 시윤이는.
아내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애들 아침 차려주고 자기 아침이라며 찍어서 보내준 사진에는 밥이 딱 한 숟가락이었다. 자세한 부연 설명이 없어도 대충 파악이 됐다. 애들 퍼주고 나니 자기 먹을 몫이 그것밖에 안 남았지만 또 자기 먹자고 밥을 하는 건 너무 귀찮으니 그냥 그걸로 때우자는 심정이었을 거다. 오후에는 서윤이한테도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며 미안하고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감히 아내에게 뭐라 섣부른 위로의 말을 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라고 얘기했다. 집에 가는 길에 얼음을 뺀 아이스 라떼 한 잔을 샀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도 난 퇴근의 기쁨을 만끽했다. 복도가 울리도록
“빠아아아아아악”
외치는 서윤이와 일단 달려들고 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다 날렸다. 아내는 생선을 굽고 김치찌개를 만들고 있었다. 생선은 오븐으로 구워서 속까지 골고루 잘 익었고 김치찌개는 조미료 맛은 하나도 안 나고 기분 좋은 들기름 향이 솔솔 풍겼다. 자주 그렇지만, 오늘도 아내에게서 고인물의 냄새가 풍겼다.
소윤이가 저녁 먹다 말고 갑자기 얘기했다.
“아빠. 저는 시간이 가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여”
“왜? 뭐가 감사하고 뭐가 아쉬워?”
“같이 지낼 날이 점점 줄어드니까 그게 아쉬워여”
“왜? 왜 같이 지낼 날이 줄어든다고 생각했어?”
“결혼해야 되니까”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며칠 전에 소윤이한테
“소윤아. 결혼하지 말고 엄마, 아빠랑 계속 같이 살자”
라고 했을 때는
“좋져”
라고 하더니.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감사한 건 뭐가 감사한데?”
“그냥. 매일 이렇게 아무 일도 없이 지내는 게 감사하져”
소윤이는 습관적인, 배운 대로 대답하면 티가 나는 편이다. 오늘 소윤이의 감사는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그게 진짜라면, 단연코 귀한 생각이었다. 소윤이에게도 그 생각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생각인지 칭찬을 잔뜩 얹어 다시 한번 알려줬다.
아빠도 매일 이렇게 맛있는 저녁을 너네랑 먹을 수 있는 게 제일 감사하다. 언젠가 이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는 날은 분명히 올 테니까.
서윤이는 오늘도 한 번씩 부르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와줬다. 이게 뭐라고 엄청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내가 꽉 안아도 좋아할 때도 너무 좋다. 꽉 안아주다가 귀에다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서윤아. 서윤아”
라고 속삭이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
“사랑해”
라고 하면 그제야 움직이는 것도 너무 좋다.
아내는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어서 애들을 재우고 늦은 시간까지 모임을 했다. 중간에 서윤이가 한 번 깼는데 내가 들어가서 달래며 눕혔더니 순순히 자기 자리에 가서 누웠다. 끝까지 엄마만 찾지 않고 내가 달래줘도 잠드는 것도 너무 좋다.
그냥 다 좋다.
이런 게 아빠 감성인가. 하루 종일 시달림에서 자유로웠던 아빠 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