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10(화)
그냥 문득 아내가 밤에 한 번 나갔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나가서 만날 사람도 없고 10시만 되면 다 문을 닫아서 갈 데도 마땅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일탈이 그것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고 했다. 같이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덕분에 아내도 이불 빨래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직 집안일의 쓴맛을 안 봐서 그런지 아직은 좋아한다고 했다.
난 아내가 오늘 다른 날에 비해 여러모로 괜찮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기분 좋을 때 나가라는 뜻도 담아서 밤 외출을 제안한 거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렇게 만만하고 괜찮은 하루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뭔가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끊이지 않는 촘촘한 육아의 순간들을 쳐내다 보니 ‘오늘도’ 힘이 쫙 빠졌다고 했다. 아이가 셋이고 각자 다른 시기를 보내고 있는 데다가 처한 위치(출생 순서)도 달라서, 일률적인 방식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세밀하게 잘 나눠서 관찰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의 힘을 더 써야 한다.
어쨌든 아내는 밤에 나가긴 했다. 퇴근할 무렵에 저녁 준비를 아직 못했다고 카톡을 보냈길래, 들어가는 길에 저녁으로 먹을 걸 사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아내는 간단하게 계란 카레를 만들고 있으니 그냥 와도 된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랑 잠깐 나갔다 오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지금? 어디?”
“아, 그냥. 애들이 어디라도 나가고 싶다고 하길래. 잠깐이라도 나갔다 올까 했지”
“여보. 그럼 애들 저녁을 일찍 먹일래? 내가 저녁에 데리고 나갔다 올게”
“진짜?”
“어, 애들이랑 잠깐 나갔다 오지 뭐”
“알았어. 그럼 애들한테 제안해 볼게”
집에 도착했을 때, 저녁 식탁이 막 차려졌다. 일찍 먹일 시간까지는 안 됐나 보다. 아내한테는 얼른 나가라고 떠밀려다가, 이 시국에 혼자 어디 가서 저녁 먹는 게 오히려 쓸쓸하겠다 싶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내가 서윤이 밥을 먹여줬는데 서윤이는 오늘도 먹다 말고 자기가 떠먹겠다면서 울며 짜증을 냈다. 아내는 서윤이에게 가볍게 훈육을 했고 난 그걸 웃으며 보고 있었다.
“아빠. 오늘은 웬일로 웃고 있어여?”
“뭐가?”
“왜 이놈 이렇게 안 해여?”
“아, 그냥 귀여워서”
“평소에는 안 귀여웠어여?”
“아니. 평소에도 귀여웠지. 귀여워도 가르쳐야 할 게 있으니까 그런 거지. 아빠가 너네 혼낼 때도 너네 엄청 귀여워. 귀여워도 가르쳐야 할 건 가르쳐야 하니까 그러는 거지. 아빠처럼 너네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르치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서윤이는 어느새 턱받이를 하고 밥그릇과 숟가락을 모두 자기 품에 안고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우리(나,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먼저 집에서 나왔다.
“여보도 얼른 나가. 뭐 하지 말고”
“알았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산책은 산책인데 어디를 걸어야 할지 막막한 산책이었다. 고민해도 뾰족한 답은 없으니 역시나 언제나처럼 동네를 좀 걷다 오기로 했다.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 줬다. 오늘은 좀 많이 걸었다. 애들도 좀 걷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다. 소윤이는 조금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진짜 통증을 호소했다기보다는 ‘걷는 게 힘들다’는 표현에 가까웠다. 워낙 운동량이 적으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아동 발달학적으로는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약간 숨이 차고 힘들 정도로 매일 걸으면 아이들의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엄청난 각오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소윤이의 각오와 결단이 아니라 아내와 나의.
서윤이는 계속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약간 졸린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요즘은 유모차에 앉아 있다가도, 자기도 내려가겠다며 의사 표시를 할 때가 많은데 오늘은 얌전했다. 졸려서 의욕이 안 생겼나 보다. 한 시간 정도를 걷고 돌아왔다.
다들 엄청 졸려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나도 졸려 보였다. 소윤이에게 양치질은 스스로 하라고 하고 그 사이에 시윤이를 씻겼다. 그러고 나서는 둘의 자리를 바꿔서 시윤이는 양치를 하라고 하고 소윤이를 씻기고.
“소윤아. 나가서 옷 갈아입고 시윤이 옷 좀 꺼내줘. 서윤이 옷도 부탁할게”
소윤이와 시윤이를 내보내고 서윤이를 씻기면서 소윤이에게 부탁했다. 야무진 소윤이는 동생들 옷을 착착 찾아서 시윤이 옷은 시윤이에게, 서윤이 옷은 화장실 앞에 갖다 놨다.
“소윤아. 고마워. 우리 소윤이 없었으면 아빠 어떡할 뻔했냐 진짜”
자러 들어가서는 진짜 금방 잠들었다. 셋 모두 눕자마자 잠든 느낌이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엄마의 부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알아서 자기 자리에 누워서 순식간에 잠들었다.
아내는 10시가 조금 넘어서 돌아왔다.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자정을 넘겨서 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안타깝다. 신데렐라도 12시까지는 자유였는데.
“여보. 복숭아 껍질 먹었나 보네?”
“아, 복숭아도 먹었는데?”
“아, 그래?”
“애들 텐텐 하나씩 줬나 보네?”
“그거 내가 먹은 건데?”
“아, 그래?”
“이거 오늘 입었던 거 아니야? 빤 옷이랑 섞여 있네. 애들이 여기다 벗어놨구나”
“아닌데? 그거 내가 그냥 그쪽으로 밀어 놓은 건데?”
“아, 그래?”
여보. 애들은 잘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