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9(주일)
남의 집이고 은율이네는 좀 더 멀리 있는 교회로 가야 하니 쉴 새 없이 부지런을 떨었다. 효과는 미미했을지언정.
아기띠는 아예 가지고 오지도 않았지만 많은 아기 엄마 및 지인이 있어서 아기띠 하나 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내가 시윤이를 안아서 재우고 난 소윤이랑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아빠. 나 어린이 예배 가서 시언이 오빠랑 예배드리고 싶어여”
“가는 건 상관없는데 엄마, 아빠는 같이 못 가. 그래도 괜찮아?”
“같이 가면 안 되여?”
“어. 가서 시언이 오빠랑 예배드릴래?”
“아니여”
“아빠. 화장실”
“들어오기 전에 엄마랑 갔다 왔잖아”
“배 아파여”
“소윤아 진짜 못 참을 거 같아? 갔다가 그냥 오면 안 돼”
“못 참을 거 같아여”
“그래. 가자”
“아빠”
“응?”
“안 나와여”
“하아. 뭐야. 힘줘봐. 이따 또 오자고 하지 말고”
“들어갔어여”
원래 시언이네랑 밖에서 밥을 먹으려다가 그냥 교회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시윤이는 계속 자고 있어서 일단 아내랑 나, 소윤이의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때 깨웠다. 밥을 잘 먹지는 않았다. 주일 오후에 이뤄지는 부모교육을 참관하는 게 울산 방문의 주요 목적 중 하나였고, 점심 먹고 나서 부모 교육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비는 시간이 생겼다. 그때 부모 교육의 강사이자 처치 홈스쿨의 실질적 대표이신 이송용 선교사님과 따로 얘기할 시간을 가졌다.
나랑 하준이랑 선교사님 그리고 아이들은 선교사님이 묵고 계신 게스트룸으로 갔다. 아내랑 한나는 빵과 커피를 사 오겠다며 나갔다. 궁금한 것도 이것저것 여쭤보고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동안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내는 소식이 없었다. 뭐지. 아내의 이번 울산 방문 테마가 함흥차사인가. 한창 대화를 나누는데 선교사님이 퀘퀘한 냄새가 난다며 용의자로 시아(하준이 한나 둘째 딸)를 지목하셨다. 시온이(하준이 한나 막내딸)는 들어오자마자 똥을 싸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됐다. 용의자로 지목된 시아는 알리바이, 아니 기저귀가 확실했다. 범인은 강시윤이었다.
와. 냄새.
바로 싼 게 아니었는지 양쪽 엉덩이에 눌어붙은 잔해를 오른손을 이용해 능동적으로 떼어 냈다. 흐윽.
아내와 한나가 돌아왔다. 빵과 커피, 샌드위치를 각각 세 곳에서 사느라 늦었다고 하는데 거짓말은 아니었겠지만 왠지 기쁨이 충만했을 것 같았다. 선교사님과 대화를 마치고 부모교육 장소로 이동하기 전 시윤이는 한번 더 똥을 쌌다. 하아. 1장소 2똥이라니. 혹독하구만.
부모교육 듣는 동안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았다
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소윤이만 유독 소란스러운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윤이는 크게 울지 않는 이상 아직 그 정도 소란스러움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부모교육이 거의 끝나갈 때쯤 소윤이의 졸음도 극에 달했다. 집에 가야 한다고 하니 가지 않고 더 놀고 싶다며 울기 시작했다. 이때는 꼭 졸려서라기보다 정말 헤어지기 싫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시언이 오빠랑, 은율이랑 더 놀고 싶다며 우는 소윤이의 마음이 이해됐다.
나중에 아내가 말하기를, 소윤이가 우는 걸 보니 자기도 슬펐다고 했다. 아내에게도 매일의 일상과 현실을 가장 가감 없이 나눌 수 있는 두 친구와의 이별이 퍽 서운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카톡을 많이 하고, 통화를 많이 해도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갑자기 애들이 아파서 하루 더 휴가를 내야 할 것 같다고 뻥을 쳐볼까 하는 생각을 3초 정도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부도덕한 짓은 너무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시 고쳐 먹었다.
"소윤아. 그래도 가야 돼. 우리 한참 가야되거든"
진짜 그랬다. 여태껏 가장 적게 걸린 게 4시간 30분 정도였고 평균 6시간은 걸렸었다. 소윤이도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서운하지만 친구, 오빠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아내와 나도 여러 명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탔다. 그때 시간이 7시 조금 안 됐을 때라 소윤이는 타자마자 잘 것 같았고 시윤이도 금방 잠들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애들 저녁은 그냥 굶기기로 했다. 장거리 운전을 대비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샀다. 아내가 사러 갔다.
"여보. 아이스아메리카노 벤티로"
아내는 우리(아내와 나) 저녁으로 샌드위치를 사 왔다. 애들은 굶겨도 본인들은 챙겨 먹는 불량 부모인가.
예상대로 소윤이는 출발하자마자 고개를 떨궜고 시윤이는 꽤 버텼다. 꽤 버텼어도 자기가 3시간, 4시간을 버틸 것도 아니고 결국 잠들긴 했다. 둘 다 잠들었으니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오후의 나른함을 보내고 난 뒤라 그런가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한 데다가 웬일인지 아내도 자지 않고 계속 말 상대를 해준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화장실 이용과 주유를 목적으로 한 10여분 휴게소에 들른 것 말고는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규정 속도를 약간 상회하는 속도로 쉬지 않고 달렸더니 무려 3시간 40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가끔 주말에 신림동 엄마 아빠 집에 갈 때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도착했더니 살짝 잠에서 깬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아내가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논개처럼.
3박 4일 내내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긴 했지만 덕분에 즐거웠다. 아내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에게 말했다.
"여보. 난 이번에 하나도 안 힘들었어. 너무 좋았어. 왜 그렇지? 애들을 별로 안 봐서 그런가"
왜긴. 나갔다 하면 연락두절이었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나도 좋았다. 겉으로는 별로 안 그래 보여도 늘 만남이 고픈 나에게 충분히 욕구를 해소할만한 3박 4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