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0(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예전에(대중교통으로 출퇴근 안 할 때)는 장거리 운전하고 난 다음날은 운전대를 잡기도 싫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대중교통으로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어제 잘 때부터 차를 타고 출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내도 그러라고 했고.
아내는 오늘도 소윤이랑 성경 읽기 하는 동안 시윤이를 재웠다며 기뻐했다. 다만 성경 읽어주는 동안 본인도 엄청 졸았다고 덧붙였다. 애나 어른이나 성경 읽으면 잠이 쏟아지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아내는 낮에 장모님이 오셔서 함께 있었다. 차를 가지고 출근한 덕분에 퇴근도 빨랐다.
"여보가 장모님 모셔다 드리게?"
"아니. 그건 좀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
이게 부모와 자식의 차이지.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집에 오시면 나가기 직전까지 자잘한 것이라도 집안일을 하시는 걸 보면 어떻게든 딸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하시는 건데. 자식은 그렇지가 않다. 파주까지 갔다 오면 왕복 1시간은 걸리니까 가까운 지하철 역에 내려다 드리겠다는 게 아내의 심산이었다. 아마 나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다. 장모님이든 우리 엄마든.
소윤아 넌 그러지 마라. 넌 아빠를 꼭 집까지 데려다줘. 편하게 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마 너랑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일 테니까. (사위 놈한테 바래다 드리고 오라는 그 따위 소리는 하지 말거라. 난 내 딸이랑 가고 싶을 예정이니까)
아내와 장모님은 제법 이른 시간에 집을 떠났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기분 좋게 할머니, 엄마를 떠나보냈다. 소윤이가 계란밥을 먹고 싶다길래 후다다닥 만들었다. 점심을 늦게 먹었다고 하더니 시윤이는 두어 숟가락 먹더니 그 뒤로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시윤이는 요즘 한창 잘 먹을 때가 지났는지 영 신통치 않다. 소윤이는 졸음이 가득 찬 상태였는데도 의외로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시윤이가 꽤 늦게 낮잠을 잤다길래 소윤이만 재우고 시윤이는 다시 데리고 나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일찍 재워보자는 심정으로 7시도 안돼서 방에 들어갔다. 소윤이에게 두 권의 책을 읽어주는 동안 시윤이는 손가락을 빨며 옆으로 누워 가만히 있는가 하면 고양이처럼 이쪽저쪽 눈을 부비기도 하는 게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아빠. 오늘은 엄마가 없으니까 이따가 엄마 오면 내 옆에 누우라고 해도 되지여?"
"아. 엄마는 침대 위에서 자는 거잖아"
"으아아아아앙"
"소윤이가 슬프니까 우는 건 괜찮은데 그래도 엄마는 침대 위에서 잘 거야"
"아빠. 그러면 내일은여?"
"내일도 안 되지"
"엄마한테 물어볼거에여"
"응. 물어보는 건 괜찮은데 아마 엄마도 안 된다고 하실 거야"
"엄마한테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옆에 누우라고 하고,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잘 거에여"
"그래. 그럼 엄마한테 내일 물어봐"
소윤이는 책 읽기를 마치고 잠깐 눈물을 흘리고는 이내 잠들었다.
'시윤이를 언제쯤 데리고 나가야 하나'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시윤이는 활력을 상실하고 그대로 밤잠에 돌입했다. 생각보다 많이 빠른 탈출에 나도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언제 깨서 날 호출할지 모르니 놀든, 멍 때리든, 일기를 쓰든
뭐라도 해야 했다. 소윤이, 시윤이가 저녁이 없는 삶을 살수록 아내와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는 오묘한 육아의 세계.
아내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돌아왔고 아내랑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소윤이의 짜증 가득 섞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들어가서 소윤이를 달래 주고 얘기했다.
"소윤아. 아빠는 나가서 일 좀 할 게?"
"노트북으로 뭐 쓰는 거여?"
"응. 아빠 나갈 테니까 소윤이는 자?"
"네"
'소윤이가 정말 많이 크긴 컸구나' 라고 생각하며 아내와 소곤소곤 대는데 방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가 나왔다. 다행히(?) 아내의 귀가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왜왜왜?"
"아빠. 쉬"
"아. 쉬 마려워? 알았어"
오줌을 다 싸고 나서 다시 방으로 들여보냈다. (같이 들어간 게 아니라 들여보냈다)
"소윤아. 자. 아빠 일하고 들어갈 게?"
"네"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아"
"들어가야겠다"
아내보다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길어봐야 애들 안아줄 수 있는 게 10년, 즉 10살 때까지라는데. 그래도 이제 좀 알아서들 잤으면 좋겠다. 악덕 고용주도 아니고 말이야. 한번 퇴근했으면 땡이지 왜 자꾸 호출을 하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