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도 다시 돌아오는, 소중한 시간

21.09.05(주일)

by 어깨아빠

새싹꿈나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잠시 주변 산책로로 산책을 나갔다 왔다고 했다. 소윤이를 배웅하는 선생님의 인사가 좀 특이했다.


“소윤아. 올 때는 괜찮았어?”

“네, 괜찮았어여”


소윤이는 웃으며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왔다. 소윤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산책로에 나무가 우거졌는데 바닥에 송충이가 잔뜩 있었다고 했다. 앞서가던 소윤이가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니까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며 오셨다가 소윤이와 같은 심정으로 기겁을 하셨다고 했다. 결국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송충이를 발로 이리저리 헤쳐 주셨다고 했고. 소윤이는 시윤이와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했다고 했다.


소윤이는 지렁이, 송충이 이런 걸 엄청 무서워한다. 극도로 무서워한다. 물론 도시의 아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보통 사람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시윤이도 비슷하다. 우리 집에 그런 사람이 한 명 있다. 아주 작은, 좁쌀 만한 벌레라도 온몸을 떨며 기겁을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물론 나는 벌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창조와 출생의 신비, 유전자의 신비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예배드리고 점심 먹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나른하다. 커피로 카페인을 공급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커피는 그저 심미의 만족일 뿐, 정신 각성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집에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앉게 되고 눕게 된다.


“아빠아. 아빠랑 뭐하면 좋을까여어?”


시윤이는 노골적으로 ‘아빠랑’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소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소윤이는 오목을 두자고 했다. 룻기 필사 선물로 자석 바둑을 건넨 게 수요일이었다. 평일 낮에는 함께 둘 사람이 없고(아내에게는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일) 저녁에는 먹고 씻고 자기 바쁘니 시간이 없고. 어제 할아버지와 오목을 둔 게 첫 개시였다.


아내가 함께 있으니 오목을 두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시윤이가 소외된다는 거였다. 아직 오목을 두기 어려운 시윤이에게는 ‘아빠와의 시간을 누나만 누리는’ 일이었다. 이런 게 참 어렵다. 그렇다고 소윤이의 바람을 무작정 외면하기도 그렇고. 착한 시윤이는 대체로 누나에게 잠시 아빠를 양보할 때가 많다.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시윤이가 나름대로 혼자 자동차 놀이를 하면서 아빠를 기다리려고 하는데, 서윤이가 방해를 한다. 시윤이가 줄 세워 놓은 자동차를 이리저리 헤집어 놓는다던가 자기 마음대로 자동차를 막 집어 간다던가.


일단 소윤이랑 오목을 몇 판 뒀다. 역시나 시윤이는 서윤이의 방해로 몇 번이나 서러움을 토로했다. 대신 오목을 끝내고 나서는 시윤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노를 또 몇 판 했다. 이때는 또 서윤이를 잘 달래야 한다. 언니와 오빠가 모두 아빠랑 ‘무엇인가’를 한다는 걸 알면 자기도 끼겠다고 와서 참견을 한다. 너무 여러 번 무작정 따돌리면 서운해하기 때문에 적당히 참여시키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방해가 안 되도록 해야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욕구(?)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충족시킨 뒤에는 우리의 할 일을 했다. 오늘은 신발장 정리를 하기로 했다. 있는지도 모를 오래된 신발과 ‘일단 안 보이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처박아 뒀던 각종 잡동사니들을 버리기로 했다. 역시나 양이 어마어마했다.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알콩달콩 잘 놀았다. 서윤이도 처음에는 껴서 잘 놀더니 나중에는 재미가 없었는지 아내와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자꾸 칭얼거렸다. 좀 불쌍했다. 너무 오랫동안 엄마의 품에도, 아빠의 품에도 안기지 못하긴 했다(그래봐야 2시간이지만 평소에 비하면 엄청 긴 시간이긴 하다).


저녁을 조금 일찌감치 먹이고 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주말인데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지난주에 이어서 엄마와 아빠의 대청소를 기다려 준 게 고맙고 미안했다. 아내는 간단하게 주먹밥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먹였다.


밤공기가 무척 선선하고 상쾌했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왔다는 걸 확실하게 느낄 만한 공기였다. 수시로 등장하는 지하주차장의 출입구를 조심해 가며, 차가 오가는 차도를 건너 가며 나무와 풀 대신 가게와 사람을 구경하는 산책이지만, 그래도 풍경과 감촉이 너무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저 멀리까지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또 멀리까지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를 반복했다. 코로나 시국이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게 앞에 마련된 야외(?)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무슨 음식이든, 밖에서 바람을 맞으며 먹으면 너무 맛있을 것 같았다. 연인, 부부가 둘이 앉아서 먹는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여보. 우리도 이런데 앉아서 이렇게 먹어야 되는데”

“그러게. 진짜 좋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멀찌감치, 횡단보도 앞까지 열심히 킥보드를 내달려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근데 지금은 저런 게 부러워도 또 나중에는 얼마나 애들이랑 같이 오고 싶겠어”

“맞아. 진짜 그럴 거 같아. 그래서 난 요즘 너무 좋아”


점점 나이가 들긴 하나 보다. 아니면 육아의 연수가 쌓여서 그런 건지. 자꾸 노인네 같은 생각이 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시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기 위해 경쟁하듯 발을 굴렀다.


밤에는 온라인 모임이 또 있었다. 예정에 없던 모임이 급하게 생긴 거였다.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애들 저녁먹이면서 ‘지금은 배가 안 고픈데’라고 말하는 게, 이제는 어떤 정형화된 빌드업 과정이다. 내가 사랑하던 아르바이트생 오빠가 사실은 엄마가 숨긴 나의 친오빠라는 아침 드라마의 클리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온라인 모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아내는 배고픔을 호소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온라인 모임은 생각보다 늦게 끝났다. 원래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냐는 아내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내는 냉동실에 있는 납작만두’나’ 구워 먹자고 했다. 흔쾌히 동의하고 기다리는데 아내가 비빔면을 꺼내며 이것도 먹겠냐고 물어봤다.


“여보 먹고 싶으면 먹어. 그럼 나도 먹지”


라는 회피성 발언을 통해 비빔면까지 완성시켰다. 과연 라면에 비해 만두와 비빔면의 조합이 어떤 면에서 ‘그러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던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내와 나는 철 지난 드라마를 정주행하기로 하고 1화를 켰다. 한 20분쯤 봤을까. 서윤이가 울기 시작했다. 점점 서럽게 점점 크게. 교향악의 절정처럼 그렇게 울었다. 공간적으로도 무척 가까워졌다(문 앞까지 걸어 나왔다). 아내가 없는 척하고 내가 안고 달래다가 다시 눕혀봤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뒤집어진 매미 같은 자세로 더 크게 울었다. 결국 아내가 투입됐다.


“여보. 나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글쎄”


마음속으로는 힘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일말의 기대를 갖고, 아내가 있던 자리를 그대로 보존했다. 아내의 젓가락, 베어 먹고 남은 만두, 아내의 비빔면 그릇, 그리고 일시정지된 화면까지. 애틋한 마음으로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는 아직 멀쩡하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카톡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몇 번의 오고 감이 끝이었다.


내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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