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훈육이 불가능한 이유

21.09.10(금)

by 어깨아빠

서윤이의 낮잠 거부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난 아직 실감하지 못하지만 아내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렇다. 재우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서윤이의 거부 반응도 점점 심해지고. 오늘은 아내가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줬다.


서윤이는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소리를 빽빽 지르며 울고 있었다.


“자기 싫어어어억!!!! 눕기 싫어어어어억!!!!”


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윤이는 태세 전환이 빛과 같이 빠르다. 그렇게 울다가도 자기가 원하는 말, 소리가 들리면 바로 울음을 거두고 최대한 불쌍하게 대답을 한다.


“서윤아. 밖에 나가서 물 마시고 올까?”

“으응. 흑”

“나갈까?”

“응. 흑”

“네 해야지”

“으응(끄덕끄덕)”


서윤이는 ‘네’를 ‘고개 끄덕이기’로 알고 있다. 록밴드 콘서트의 관객처럼 머리를 흔들며 대답을 한다. 서윤이는 거실에 나가서 물도 마시고 바나나도 먹고 들어와서야 잤다고 했다.


아내의 하루에 그나마 가장 평안한 시간이 서윤이 잘 때인데, 이제 그마저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아내와 나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썰물의 때처럼 점점 낮잠의 시간이 빠져나가고 있다는걸. 소윤이 때도 그랬고, 시윤이 때도 그랬고, 서윤이 때도 그럴 거다. 하나님은 우리 아이들에게 풍성한 머리카락과 잠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기 10초 전쯤 아이들이 전화를 했다.


“아빠”

“어, 소윤아”


사실 누구 한 명의 이름만 부르기가 애매하다. 세 녀석이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아빠. 어디에여?”

“아빠? 이제 5초 있으면 아파트 들어가”

“그래여? 5, 4, 3, 2, 1. 아닌데?”

“짜잔. 안녕”


선루프를 열고 손을 흔들며 들어갔다. 길에 선 사람들이 나를 좀 이상하게 쳐다봤다.


“아빠. 집에 올라올 때까지 끊지 말고 계속 통화하자여”

“그래, 알았어”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차례대로 안아주고 마지막으로 아내도 안아…주지는 못하고 가볍게 뽀뽀만.


오늘따라 소윤이와 시윤이가 낮에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많이 말하는 느낌이었다


‘애들이 오늘 기분이 좋았나 보네’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알 길이 없다. 당사자이자 관찰자인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 정확하다. 아내의 몸짓과 음성에서 측정되는 ‘지침’의 정도도 평소보다 양호해 보였다.


서윤이가 저녁상을 다 차리기도 전부터 식탁 의자에 올라가서 난리를 치길래, 아기의자에 앉혔다. 식탁에는 숟가락과 젓가락만 있었다. 서윤이는 숟가락을 가지고 식탁을 두드리기도 하고 엉덩이를 들고일어나서 멀리 있는 걸 집어 오기도 하면서 밥을 기다렸다. 그러다 실수 반 고의 반의 느낌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서윤아. 아니야. 숟가락 던지면 안 돼. 알았지?”


서윤이는 숟가락을 들고 있던 오른손을 바닥 쪽으로 추욱 늘어뜨리며 나를 쳐다봤다. 눈치를 보는 거였다.


“서윤아. 식탁 위에 올려놔. 알았지?”


서윤이는 식탁 위로 숟가락을 던졌다.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나타내는 자기 나름의 표현이었다.


“서윤이 안 된다고 했지. 서윤이는 내려가”


서윤이를 의자에서 꺼내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 서윤이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듯 서럽게 울며 고개를 매트에 파묻었다. 훈육의 목적도 약간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사실 그냥 서윤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랬다. 조그만 것이 나름대로 성질을 내고 빽빽거리는 걸 보는 게 어찌나 재밌는지.


장난을 섞어 시작했지만 새삼 ‘인간의 고집과 악한 마음’을 보게 된다. 서윤이에게 몇 번이나


“아빠 앞에 와서 서세요. 안 그러면 서윤이는 오늘 저녁을 못 먹어요”


라고 얘기했지만 서윤이는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막이 존재하는 것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현관으로 가서 울고 구석으로 가서 울고. 잘 타일러서 오게 하면 내 근처까지는 왔다가도, ‘앞에 곧게 서라’고 하면 다시 멀어졌다.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


‘당신의 말을 듣기는 하겠지만 완전히는 아니에요. 그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내 자존심이니까요’


서윤이의 자존심은 밥 앞에서 무너졌다. 서윤이가 아직 구석에서 얼굴을 파묻고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을 때, 저녁 준비가 끝났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식탁에 가서 앉았다.


“자, 이제 기도하고 밥 먹자”


서윤이한테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에 와서 섰다.


“서윤이 밥 먹을 거야?”

“으응”

“네 해야지”

“으으응(끄덕끄덕. 격렬하게)”

“서윤아. 숟가락 던지면…크흡”


근엄하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서윤이의 표정과 몸짓, 태도에 웃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서윤이는 ‘이 아빠가 왜 이러지’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이는 무사히 아기의자에 앉아 저녁 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저녁을 다 먹었을 때쯤, 난 집에서 나왔다. 교회에 다녀왔을 때, 아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이때가 비로소 ‘진짜 아내를 다시 만난 느낌’이 든다. 하루, 아니 일주일 간의 길고 긴 전투를 마치고 흙을 툭툭 털어낸 뒤 고생했다며 악수하는 심정이라면 이해가 쉬울까. 아내랑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서윤이가 깼다. 요즘 이 시간에 자주 깬다. 열심히 크느라 엄마, 아빠가 모르는 성장통이 있는 건지. 서윤이 소리에 소윤이도 깨서 나왔다. 그러고 보면 시윤이가 제일 안 깬다. 뭔가 잠을 향한 거부감도 제일 적어서 잠이 오면 자고, 자기 싫어도 못 버티고.


소윤이와 서윤이는 짧게나마 소파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 들어갔다. 서윤이가 깼기 때문에 아내도 함께 들어갔고, 물론 그걸로 아내와 이별이었다.


“아빠는 왜 안 자여?”

“아, 아빠는 좀 더 놀려고”

“뭐하게여? 앉아서 핸드폰 보려구여?”

“어. 잘 자. 내일 재밌게 놀자”

“네, 아빠”


금요일 밤이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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