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하는 아빠

21.09.09(목)

by 어깨아빠

어제 아내와 방에 들어갔을 때 서윤이가 막 깼다. 정확히 말하면, 귀엽다고 막 만지고 그러면서 깨웠다. 깬 김에 아내와 나 사이에 눕혔다. 그렇게 아침까지 아내와 나 사이에 누워 있었다. 방향만 바꿔서 침대 끝자락에 누워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다칠만 한 높이는 아니라서 그걸 걱정한 건 아니었고 잠이 깰까 봐 걱정이 됐다. 안전한 곳으로 옮길까 하다가, 그건 또 그것대로 잠이 깰 위험이 있으니 그냥 그대로 두고 나왔다.


방 문을 닫자마자 높은 음역대에서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진짜 무슨 공습경보가 울리는 것처럼. 아무래도 내 기척에 잠이 깼나 보다.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아내와 서윤이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나름 개운했는지 서윤이는 날 보고 환하게 웃었고, 안아달라면서 달려오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긴 했다. 아내가 화장실 가면서 잠깐 아빠한테 가 있으라고 했더니 또 나한테 쪼르르 달려왔다.


강서윤의 아주 큰 매력이다. 극을 따지지 않고 자석에 붙는 철가루 같은.


아내는 바쁠 거라고 했다. 오전에는 언제나처럼 집안일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쳐내야 하고, 아이들의 해야 할 일도 관리해야 하고. 오후에는 신경 써서 이끌어야 하는 온라인 모임도 해야 하고. 거기에 오늘은 미용실에도 가야 했다.


나와 시윤이가 머리를 잘라야 했는데 미용실이 처가 근처라 주로 주말에 간다. 이번 주 토요일에 예약을 했는데, 그날 나와 소윤이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그다음 주 토요일까지 기다리기에는 시윤이와 나의 머리 상태가 너무 지저분했다. 오늘로 예약을 바꿨다. 아내는 미리 처가에 가서 기다리다가 시윤이와 미용실에 갔고, 난 퇴근하고 바로 미용실로 갔다.


내가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 시윤이는 막 머리를 자르고 나와서 차에 탄 뒤였다. 아내와 시윤이는 다시 처가로 가서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 온라인 모임을 마치고 왔기 때문에 애초에 늦게 왔다고 했다. 거기에 퇴근이 빠르셨던 장인어른을 만나 함께 세차도 하느라 실제로 할머니 집에 들어간 건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별로 못 놀았다’, ‘조금밖에 못 놀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딱 좋았다.


아이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나의 미용실 체류 시간은 무척 짧았다. 순식간에 머리를 자르고 처가로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의 표정이 울상이었다. 아내와 나의 마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보면 ‘아니, 도대체 왜 그래 왜’라면서 짜증을 내기 딱 좋은 그런 표정이었다. 물론 오늘은 그러지 않고 소윤이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고 받아주기 위해 애를 썼다(적극적인 공감 표현이 안 될 때는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시윤이는 씻고 있었다.


서윤이만 아빠를 열렬히 반겼다. 충성도 높은 강아지처럼 어제나 그제나 오늘이나 같은 모습으로.


소윤이와 시윤이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차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별 방법이 없다는 걸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나와서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카페에 앉아서 함께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만 같이 있는 건데, 그거라도 좋은가 보다. 1분이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더 있고 싶은가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차를 타고 서윤이만 아내 차를 탔다.


“아빠아. 왜 이쪽으로 왔어여?”

“어? 이쪽으로 가야 되니까”

“아니이. 그 뭐냐아. 음 이렇게 쭈욱 긴 선에서는 옮기면 안 되잖아여어”

“아, 그렇지. 아빠가 못 봤네”


‘실선에서는 차선 변경 불가, 점선에서는 가능’이라는 교통 법규를 말하는 거였다. 아마 아내가 알려줬을 거다. 시윤이는 그 뒤로 점선과 실선이 바뀔 때마다


“아빠아. 돼여어”

“아빠아. 안 돼여어”


를 얘기해 주며 나의 법규 위반을 단속했다.


“아빠. 아까 거기는 80까지인데 왜 90을 넘었어여?”

“아, 아빠가 엄마랑 통화하다 보니까 모르고 그랬네”


소윤이는 규정 속도위반 단속.


덕분에 아주 철저하게 기본 교통 법규를 준수하며 집까지 왔다.


서윤이는 오는 길에 잠들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들지 않았다. 서윤이는 잠들었고 아내는 늦은 밤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기 때문에, 소윤이와 시윤이만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시윤이보다는 소윤이가 아쉬워했다.


집에 도착해서 애들이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고작해야 한 20분 남짓한 시간이 엄청 피곤했다. 고지가 앞에 보이는데 가까워지지 않는 느낌이랄까. 너무 신기한 건 애들이 방 문을 닫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피곤이 녹는다는 거다.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 행복하고, 좋고, 귀하다. 정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 퇴근을 코앞에 둔 그 시간은 너무 피곤하다.


얘들아, 아빠 지금 엄청 행복해. 그렇지만 피곤하고 힘들지. 기쁜데 눈물이 나는 거랑 비슷하달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