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2(주일)
서윤이를 아기띠로 한참 안고 있었다. 예배드리러 가서 처음에는 기분이 좋더니만 나중에는 졸려졌는지 조금씩 칭얼대다가 뭔가 자기 수에 안 맞으니 울음을 터뜨렸다. 일단 아내가 급히 안고 나갔다. 내가 아기띠를 하고 따라 나가서 서윤이를 받았다. 처음에 조금 엄마한테 가겠다고 손을 뻗더니 바로 포기하고 손을 빨며 취침 자세를 취했다. 서윤이는 그렇게 내 품에서 잠들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유모차에 안 눕히고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냥 식당에 갈 때까지 내가 안고 있을까 봐”
“그럴래요?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카시트와 유모차를 오가는 동안 계속 잘지 깰지 판단이 서지 않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이미 많이 자고 난 뒤면 ‘깰 테면 깨라’는 심정으로 막 다룰 텐데(?) 그러기에는 약간 아까웠다. 더 잘 것도 같았다. 교회에서 식당까지는 차로 10분이다. 아내가 운전을 하고 난 서윤이를 안은 채로 조수석에 탔다.
식당에 도착해서 시동을 끄는 순간, 서윤이는 시동이 켜졌다. 꿈뻑꿈뻑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바로 정신을 차렸다. ‘이이’, ‘으으’ 거리면서 활발하게 여기저기를 가리키고 몸을 돌렸다. 자다 일어난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주 푹, 잘 자고 일어났나 보다.
덕분에 밥 먹을 때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요즘에는 이 막내 녀석이 기분과 별개로 자꾸 장난을 친다. 그냥 장난을 치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의 ‘선’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 보는 느낌이다. 하지 말라는 건 조금 더 해 보고, 하라는 건 못 들은 척하고.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위기에 몰리면 씨익 웃고. 오늘도 서윤이는 밥그릇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두어 번 떨어뜨렸다. 담겨 있던 밥과 돈까스도 쏟아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는 듯 결백한 척하지만 표정에서는 ‘긴장’이 느껴진다. 서윤이가 많이 컸다. 긴장도 하고.
커피를 사려고 밥 먹고 나와서 카페로 갔다. 아내만 내려서 사 오려고 했는데 뒤에서 소윤이었는지 시윤이었는지, 아무튼 누가 얘기했다.
“아, 팥빙수 먹고 싶다”
사실 속으로 팥빙수 먹고 갈까 생각도 했는데,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고 있는 서윤이를 보며 생각을 접었다. 배도 부르고 잠도 잘 자고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팔딱거릴 서윤이를 생각하니 팥빙수 생각이 싹 달아났다. 그냥 커피만 사서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얘기를 한 거다.
“여보. 어떻게 해?”
“사실 나도 생각하긴 했는데 서윤이 때문에”
“그래? 서윤이 줄 빵이 있기는 한데”
“그래? 그럼 앉아서 먹고 갈까?”
“그러자 그럼”
다 함께 내려서 카페에 들어갔다. 역시나 서윤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척추의 유연성을 자랑하며 가만히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가 급히 가방에 있던 식빵을 꺼내서 서윤이에게 줬다. 팥빙수도 나왔다. 아내와 나는 커피도 한 잔씩 주문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팥빙수를 사 준 게 뿌듯할 정도로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서윤이는 빵이 입에 안 맞는지 손으로 뜯으며 장난만 치고 먹지는 않았다. 그냥 먹지만 않으면 괜찮았겠지만 자꾸 짜증을 냈다.
“서윤아. 짜증 내면 안 돼. 자꾸 짜증 내면 서윤이는 아빠랑 차에 갈 거에요”
“으아아아아아앙”
서윤이를 데리고 나와서 차로 갔다. 카시트에 앉혀 놓고 얘기했다.
“서윤아”
“으응”
“짜증내면 안 돼여”
“으응”
“네라고 해야지”
“(끄덕끄덕)으응”
“서윤이 여기서 기다리자?”
“으응”
훈육 아닌 훈육의 시간이 끝나자 서윤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서윤이를 카시트에서 꺼내 내 무릎에 앉히고 배 위에 앉혀서 놀았다.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도 금방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여느 주일처럼 피곤이 쏟아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읽어달라, 우노를 하자며 들고 왔다.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얘들아, 아빠 조금만 쉬었다가”
자연스럽게 소파에 누웠는데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눈이 감겼다. 아주 잠깐 눈을 붙였는데 아내가 깨웠다.
“여보. 안방이 너무 시원하고 좋아. 바람이 너무 시원해. 들어가서 잠깐 누워”
“아, 아니야 아니야. 일어나야지”
“딱 20분만 자고 나와”
“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졸음의 숲을 헤맸다.
“여보. 들어가서 조금만 자고 나오라니까”
“아, 일어나야지”
애들한테 미안해서 자지 않았다. ‘아빠와 보낼 주말 오후’를 기다렸을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정신을 차렸다. 책도 읽어주고 우노도 했다. 서윤이가 그림 그리는데 정신이 팔려 있을 때라 방해받지 않고 했다. 애들이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할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세 판 만에 끝났다.
“이제 우노 더 안 해?”
“네”
지지난 주, 지난주 모두 집안 정리한다고 오후 시간을 썼는데 오늘은 정리하는 걸 미뤘다. 이 또한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우노를 끝내고 나서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기들끼리 놀길래 난 운동화를 빨고, 아내는 소소하게 정리를 했다. 밖에 나갔다 와서 저녁을 먹으면 심리적으로 쫓길 거 같아서,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잠시 나갔다 오기로 했다.
아내가 수육용 고기를 사 놔서 그걸로 저녁을 준비했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아내한테는 쉬라고 했는데, 아내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서 책을 읽어줬다. 책을 좀 읽어주고 나서는 아내도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소파 가죽에 수면 유도 성분이 함유된 게 아닌가 싶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나가는 걸 포기할 리는 없다. 또 막상 나가면 피곤한 걸 모르고 잘 걸어 다닌다.
“아빠. 킥보드 타고 나가도 돼여?”
“아, 오늘은 그냥 걸어가자. 다리 운동도 하게”
오늘도 밤공기가 무척 선선했다. 식당의 야외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밥을 먹지 않고 나왔으면 충동적으로 자리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충분한, 너무 시원하고 쾌청한 날씨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좋은 날씨를 함께 만끽했다. 마음껏 뛰고 들어가라고 했더니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앉혔는데 의외로 잠들지 않았다. 잠들 걸 각오하고 태웠는데 잠들지 않았으니 차라리 더 잘 된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씻기고 잘 준비를 했다. 다들 피곤한 상태라 금방 재울 것 같았지만, 늘 변수는 아내다. 애들보다 더 피곤한 아내가 애들보다 더 먼저 잠들었다. 나는 항상 거실에서 시간의 경과와 소음의 발생 정도를 종합해 유추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내도 잠든 거다. 그러다 갑자기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서윤이가 자다 깬 거고 그 소리 덕분에 아내도 깨서 거실로 나왔다. 이걸 서윤이한테 고마워해야 하나.
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방 문을 닫자마자 집에 있는 ‘단 것’을 모조리 찾아 먹었다. 그냥 보통의 날이었는데 왜 이렇게 당이 당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거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했더니 좀 멀쩡해졌다. 오늘 같은 날은 애들이 힘들게 한 것도 없는데.
이건 정말 노화의 증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