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4(화)
퇴근하는 길에 아는 분 아버님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에 따로 ‘조문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이 없어서 알아봤더니 조문은 가능하다고 했다. 조문을 가는 건 당연한데 어떻게(어떤 인원 구성으로) 가느냐가 문제였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는 건 뭔가 내키지 않았다. 일단 아이들이 ‘조문’의 개념을 전혀 모르니 그에 맞는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니 조심스러웠다. 일단 아이들은 놓고 가는 것까지는 아내하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어디에, 누구에게 맡기느냐가 문제였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고 나 혼자 다녀오는 게 첫 번째 방안이었다. 나의 지인이었으면 당연히 그렇게 했겠지만 ‘우리 부부의 지인 부부(?)’에 가까운 사이라 아내도 함께 가는 게 맞기는 했다. 장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아내와 나만 다녀오는 게 두 번째 방법이었다. 이게 가장 괜찮아 보였다. 아내가 장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가능한지 여쭤봤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조문을 다녀오는 길에 나만 우리 집에서 내리고 아내는 처가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자고 오기로 했다. 애들을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난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차를 따로 써야 하는 문제도 있고 그래서 나만 우리 집에서 자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날 만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할머니, 할아버지 집 방문이라니. 저녁을 먹으며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당부 혹은 강력히 권면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너희가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엄마, 아빠가 장례식장에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부탁드리는 거야. 시간도 많이 늦었고. 그치?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놀려고 하지 말고 할머니가 자자고 하면 바로바로 말 잘 들어. 알았지? 할머니, 할아버지 내일 출근도 하셔야 하고 무엇보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절제하는 연습을 해야지. 어제처럼 그렇게 하면 안 돼. 알았지?”
사실 어제는 좀 심한 편이기는 했다. 밥 먹기 전에 너무 군것질을 많이 한 탓에 둘 다 저녁 먹는 태도가 아주 불량했다. 평소에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불성실한 식사 태도였다. 어른 아니 나도 안 되는 절제를 일곱 살, 다섯 살에게 요구하는 가당키는 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어리니까 더 빨리 연습할 필요도 있다. 아무튼 오늘은 아이들에게 미리 말을 해 뒀다. 지키든 안 지키든 아빠의 말이 한 번이라도 생각이 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다.
어제 백신을 맞은 아내는 오늘 왼팔을 거의 쓰지 못했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게 힘들 정도로 아프다고 했다. 저녁도 바깥 음식을 사 먹었다. 아이들만 집에 있는 밥과 반찬을 줬다. 서윤이는 요즘 반찬만 집어먹는다. 그냥 반찬만 집어먹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입이 가득 차고 넘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마구 넣는다.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그냥 그대로 두고 서윤이에게 맞춰 주고 있다. 오늘도 메추리알만 입에 잔뜩 넣고 남은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내나 내가 떠먹여주면 또 잘 먹는 것도 같고.
저녁을 먹고 다 씻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다음 집에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닌 밤중에 할머니 집에 가는 것만으로도 잔뜩 들떴다. 아파트 입구를 나서자마자 서윤이가 꽥하는 소리를 냈다. 평소에 손을 빨다가 너무 깊숙이 넣으면 그런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뭐지? 손 빨다가 낸 소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했다. 처음 그 소리를 낸 뒤로는 손을 안 빨고 있는데도 비슷한 소리를 냈다. 표정도 뭔가, 아주 미세하게 이상했다. 역시 아내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다. 걱정이라기보다는 ‘이게 무슨 소리일까’하는 심정으로 서윤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꽥이 아니라 꾸에에엑 소리를 내면서 서윤이가 토하기 시작했다. 조금 넘긴 정도가 아니라 먹은 걸 전부 토해내듯 꽤 한참 토했다. 혹시라도 위급한 조짐이 보이면 바로 뒤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토가 끝나길 기다렸다. 다행히 특별한 일 없이 끝났다. 다시 아파트로 들어와서 주차장에 차를 댔다. 아내가 뒤처리를 하는 동안 내가 다시 집으로 올라가서 갈아입힐 옷을 가지고 왔다.
서윤이는 거의 토하는 일이 없는 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날 이랬으면 ‘밥을 너무 급하게 먹었나보다’, ‘손가락이 너무 깊이 들어가서 올라왔나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거다. 오늘은 거기에 괜한 걱정이 하나 더 붙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신나서 뛰던 서윤이가 현관 앞에서 미끄러지면서 뒤로 넘어졌다. 맨바닥에 뒤통수를 박았고. 강도가 그렇게 세지는 않았다. 그 정도 충격을 받으며 넘어지는 건 평소에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던 일이 괜히 토와 연결이 됐다.
‘혹시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다행히 서윤이는 의심 징후를 보이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잠도 들었고. 현상은 평상시와 같았는데 은근한 걱정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아이들의 울음, 토, 열은 부모들로 하여금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대표적인 재료다.
처가에 도착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아내는 서윤이를 안고 올라가서 방에 눕히고 나온다고 했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고.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아까 아빠가 한 말 잊지 말고. 알지? 잘 자”
“아빠. 잘가여. 내일 보자여”
장례식장에는 상을 당한 지인분의 아이들도 있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가 무겁거나 침울하지도 않았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떠들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장례식장과 꽤 잘 어울리고 그나마 아이들 덕분에 슬픔이 많이 중화되는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왔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도 했다(아이들끼리도 친한 사이라 만났으면 좋아했을 거다).
조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가 이미 11시 30분이었다. 난 내리고 아내는 처가로 가야 했다. 밤늦은 시간에 운전을 맡기려니 걱정이 많이 됐다. 아내의 실력을 의심해서 그런 게 아니라 술 먹고 운전대를 잡는 미친 아니 사람이 많은 시간대라 그랬다.
“여보. 천천히 가. 조심하고. 천천히 가 천천히.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고”
“알았어. 여보는 이제 자유시간인가?”
“11시 30분에 자유는 무슨. 지금이 7시면 몰라도”
“그런가? 알았어. 잘 자고. 도착하면 연락할게”
“그리고 여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전화 좀 해 줘”
“왜?”
“아 혹시라도 못 일어날까 봐”
“왜?”
“애들 없으니까 아침에 알람 소리에 깨울까 봐 걱정 안 해도 되잖아. 마음 편하게”
휴대폰이 꺼진 적은 있어도 알람이 울리는데 못 듣고 계속 자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내를 통해 하나의 장치를 더 마련한 거다.
혼자 문을 열고 들어오니 집에 넓었다. 애들이 북적북적할 때는 그렇게 이사 욕구를 샘솟게 하더니 아무리 거구의 몸이라도 혼자 들어오니 집이 광활해 보였다. 매트리스도 이불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잠든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셋 다 어찌나 보고 싶은지. 평소에 집에 같이 있어도 어차피 방에 눕히면 자러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 보면서. 사람 마음이 그렇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안 보는 것과 그냥 못 보는 건 천지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