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나왔는데 또 자야 하는 허무한 현실

21.09.15(수)

by 어깨아빠

아내가 할머니 품에 쏘옥 들어가서 안겨 있는 서윤이 사진을 보냈다. 서윤이가 위험한 걸 들고 있어서 달라고 했더니 순순히 주더니만, 막상 주고 나니 억울(?)했는지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내를 보기만 해도 울고 안아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면서 할머니한테 쪼르르르 달려가서 안겼다고 했다. 아내도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 대우는 나의 전유물이었는데.


어제 아내와 헤어질 때 오늘 몇 시쯤 돌아올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오전에 목장 모임이 있으니 그걸 마치고 올지, 아니면 장모님과 점심을 먹고 올지 고민이라고 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저녁 먹기 직전에 올 가능성이 크겠군’


장모님도 오전에 잠깐 일을 하러 나갔다 오시기 때문에, 장모님과 점심도 먹지 않고 돌아올 리는 없었다. 점심 먹고 부지런히 오면 일찌감치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언제나 ‘조금만 더’를 외치는 아이들, 딸이 조금이라도 더 쉬다가길 바라는 마음에 ‘천천히 해’라고 말씀하시는 장모님, 시간이 밀리는 것에 본능적으로 부담을 느끼지만 ‘조금만 더’와 ‘천천히 해’ 사이에서 굳이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아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항상 ‘너무 늦지 않게 와야지’라고 얘기를 한다. 아내의 막연한 부담에 아마 나도 일조를 하고 있을 거다.


아내와 아이들은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공원에도 가고 그랬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보다 아주 조금 먼저 집에 도착했다. 어제 소윤이가 할머니 집에 가면서 ‘이제 아빠를 못 보니까 너무 아쉽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난 ‘어차피 집에 있어도 너희는 자고 아침에도 못 만나니까 똑같지 않냐’라고 대답했고. 막상 오늘이 되니 애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어제 내가 했던 말처럼 집에서 같이 잤어도 보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난 건 아니었을 텐데, 괜히 더 보고 싶었다.


아내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친정이라고 마냥 편히 쉬다 오는 게 아닌지는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친정이 안 편한 건 아니다. 오묘한 시간이다. 편한 순간과 불편한 순간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장모님이 싸 주신 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한창 밥을 잘 먹는 시기였던 것 같은 서윤이가 어느새 식사 때마다 난동에 가까운 소란을 피우고 있다. 막내여서 특별히 의지를 발휘해 더 봐 주고 예뻐하고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달관의 마음과 더불어 ‘니 마음대로 해라’는 마음이 섞여 그냥 둘 때도 많다.


아내는 무척 피곤해 보였지만 아내에게 소윤이, 시윤이 씻기는 걸 맡겼다. 서윤이랑 더 놀고 싶었다. 다시 도도해진 서윤이는 나에게 쉽게 오지 않았지만, 오늘은 쎄쎄쎄로 유혹했다. 두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며 노래를 불러 주니 좋다고 웃어댔다. 다만 쎄쎄쎄가 없으면, 다가옴도 없었다. 서윤이는 소윤이에게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시윤이한테 가서는 장난도 잘 치고 안아주고 그러는데 소윤이한테는 꼭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튕긴다. 이런 일에 관해서는 마음이 잘 상하는 소윤이에게 아빠의 처지도 똑같다고 얘기해 줬다.


“소윤아. 아빠도 똑같아. 소윤이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야”


한 2-3년만 지나면 언니 껌딱지가 되어서 엄청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


애들 씻기는 건 미뤘으니 그릇 씻기는 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방에 들어간지 아주 한참 지나서 다시 나왔다. 자다 나왔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아내가 다시 나와서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서윤이가 또 깨서 울었다. 어디 이가 새로 나는 건지 관절이 아픈 건지 자꾸 깨서 운다. 아내는 절망과 함께 서윤이를 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다시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다시 나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여보. 자자. 계속 자다 나왔지만 다시 또 자자”

“하아”


힘내. 이제 곧 연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