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9(주일)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에 막 잠이 들었다(애들이 일어날 시간까지 깨어 있다가 잤다는 말이다). 잠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소윤이가 깬 게 느껴졌다. 시간을 보니 6시였다. 소윤이 말고는 깬 사람이 없을 것 같았지만, 소윤이는 거실로 나갔다. 잠시 후에는 서윤이가 일어났다. 혼자 자리에 앉아서 아빠, 엄마, 오빠의 모습을 둘러봤다. 그러더니 오빠 옆으로 가서 오빠 얼굴 가까이 자기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정말 자는 건지 확인하는 것처럼. 그러고 나서는 손으로 오빠의 얼굴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엄청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서윤이의 기척을 느낀 소윤이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
“서윤아. 언니랑 나가서 놀까?”
“응”
심심한 소윤이에게는 서윤이도 아주 좋은 친구가 되곤 한다.
그 모습까지 보고 다시 잠들었고, 깼을 때는 나 혼자였다. 주일이라 무작정 늘어져 잘 수는 없었다. 첫 직장에서 행사와 업무 폭풍으로 퇴근 복장 그대로 누워서 쪽잠 자고 출근할 때와 비슷한 수면 시간이었다. 느끼는 피로도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항상 이렇다. 아침에는 의외로 개운한 것 같아서 ‘역시 잠은 질이 중요해’라고 생각하다가 점심시간이 지날 때쯤이면 ‘양 앞에 장사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도 그럴 거라고 각오했다.
거실에는 장모님만 계셨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장인어른까지 빵을 사러 나갔다고 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서윤이가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압빤다아아”
‘아빠다’라고 말하는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프렌치토스트와 빵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점심까지 먹고 짐을 챙겨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걸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충분히 놀아서 그렇기도 했지만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거라 그렇기도 했다.
“아빠아.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서어 너무 좋아여어”
셋 다 엄청 피곤해 보였다. 출발하기 전에 차에서 졸리면 굳이 참지 말고 좀 자라고 얘기해 뒀다. 어차피 오늘도 늦게 자게 될 테니 몸을 생각해서 좀 자라고 했다. 셋 다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소윤이가 그 정도였다는 건 정말 피곤했다는 거다. 다행히 난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아내도 피곤했는지 잤다.
“여보. 나도 지금 좀 자둘게”
“그래. 자”
올해는 동생네 집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가기 전에 잠시 집에 들러야 했다. 집에 갈 때까지는 내가 하고 혹시 그 후에 피곤이 쏟아지면 운전을 교대하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집에 들러서 챙길 짐도 있었고 냉장고에 넣어야 할 것도 있어서 아내가 잠깐 올라갔다 오려고 했는데, 마침 내가 배가 아팠다. 아내에게 해야 할 일과 챙겨야 할 것을 전해 들은 후 내가 올라갔다.
드러날 정도로 피곤이 몰려오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당이 당겼다. 냉동실에 있던 초코하임을 까서 하나 먹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아내가 전해 준 임무를 모두 완수하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소윤이는 깼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소윤이는 고작 30분 자고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느낌이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동생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잤으니까 총 1시간 30분을 차에서 잤다.
동생네 집에는 170일 된 조카가 있어서, 이제 서윤이가 막내가 아니다. 가만히 누워서 울고 바둥거리는 것밖에 못하는 생명체 옆에 있으니, 서윤이는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 있을 때는 그냥 마냥 무조건 막내였는데, 아기 옆에 있으니 다 큰 언니 같았다. 시윤이 생각이 많이 났다. 눈앞에서 잘 놀고 있는 녀석이 생각났다고 하니 좀 이상하지만, 시윤이가 나름대로 얼마나 눈물(?)의 시간을 보냈을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소윤이는 가기 전부터 사촌 동생(내 조카)이 너무 보고 싶다며 고모 집에 갈 날만 손을 꼽아 기다렸다. 아내와 나는 반신반의했다. 항상 말은 그렇게 해도 막상 가면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조카는 뒷전일 때가 많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소윤이는 정말로 조카를 예뻐했다. 이게 조카라서 그런 건지 아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는데 소윤이의 말과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사촌 동생과 고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싶어 했고 사촌 동생도 안아 보고 싶어 했고, 자고 있는 사촌 동생이 빨리 깼으면 좋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놀기도 부지런히 놀았지만 틈이 날 때마다 사촌 동생 옆에 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놀아주고 그랬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늘 그렇기는 하지만 (내) 엄마, 아빠를 만나면 유독 더 심해진다. 170일밖에 안 된 아기가 있는 집에서 그렇게 방방 뛰어대니(말과 행동 모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지난여름 울산에 놀러 갔을 때 누군가가 했던 명언이 떠올랐다.
“태도도 휴가네”
연휴라고 잠시 태도의 기본값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내도 나도 최소한의 선을 넘어갈 때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와 아빠가 보고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서윤이는 그냥 평소랑 비슷했다. 아내와 있는 평일보다는 짜증도 울음도 훨씬 적었다. 다만 누군가 뭘 먹기만 하면 자기도 먹겠다고 달려드는 통에 함부로 입에 뭘 넣기가 조심스러웠다. 아내 말로는 셋 중에 가장 식탐이 강하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본능인가.
아이들은 역시 엄청 늦게 잤다. 아내와 내가 일찍 재우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서 같이 자겠다고 했다. 이것도 (내) 엄마, 아빠를 만날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꼭 할머니에게 재워달라고 하고, 자러 들어가서 거의 1시간 넘게 안 자고 깔깔거린다. 물론 할머니가 여러 재밌는 이야기로 아이들을 웃겨 주니까 그런 거고, 아이들도 그것 때문에 할머니와 잔다고 하는 것일 테고.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서윤이는 요즘 재우러 들어가면 안 잘 거라고 드러누울 때가 있다. 이때도 내가 들어가서 곧게 서라고 하고 자야 한다고 말해 주면 조금 수그러든다. 때가 되면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는 것도, 그 어린 나이(나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개월 수’로 세는 인생)에도 훈육이 되는 것도. 소윤이와 시윤이에 비하면 훈육(맛보기 수준이지만)이 좀 빠른 편이라 더 신기하다. 이렇게 어려도 먹힌다. 역시 훈육의 본질을 똑같다. 사랑은 뜨겁게, 훈육은 단호하게.
(내) 엄마는 1시간 넘게 애들을 재우고(애들이랑 놀고) 나왔다. 아내는 서윤이를 재우다 잠들었는지 카톡에 답이 없었다. (내) 엄마, 아빠, 매제, 동생과 함께 화투를 치게 됐고 현금을 꺼내러 조심스럽게 아내와 서윤이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기척을 느낀 아내가 깨서 함께 거실로 나왔다. 화투를 칠 줄 모르는 아내는 소파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아내는 나온 지 30분도 안 돼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피곤이 폭발하는 시점 없이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늦은 시간까지 놀다 잤다. 언젠가는 이 피곤의 폭탄이 터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연휴가 넉넉히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