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0(월)
시윤이가 우는소리에 잠에서 깼다. 짜증을 내면서 우는소리가 아니라 아파서 우는소리였다. 바로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울음소리는 물론이고 표정에서도 아픔이 느껴졌다. 왜 그런가 사정을 들어 봤더니 조카의 바운서를 소윤이가 마구 흔들었고 시윤이가 거기에 광대 쪽을 부딪힌 거였다. 큰 부상은 아니었고 가벼운 충돌 정도라 다행이었다. 소윤이에게 어느 정도의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소윤이에게 직접 사건(?)의 경위를 들었다. 미필적 고의 정도의 과실로 판단이 됐다. 바운서는 장난감이 아니니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넘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보다 더 들뜬 느낌이었다. 좋을 때는 ‘신났다’라고 표현이 가능했고, 안 좋을 때는 ‘버릇없다’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과한 흥분이었다. 여러 차례의 주의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집도 아니고, 연휴고 해서 최대한 ‘본격 훈육’의 단계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다.
아침 먹고 나서는 (내) 엄마, 아빠가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를 모두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동생네 부부와 우리 부부만 거실에 앉아 있었는데 어찌나 평화롭던지. 아이 셋과 함께 하는 쉼표 없고 빽빽한 일상의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싫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는 아득한 옛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도대체 그때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까’ 싶은, 아이들 없던 시절의 아내와 내가 그리웠다. 이제 그런 장기적인(?) 평화와 고요함은 바라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다. 그저 하루, 이틀 정도만 오붓하고 싶고, 고요하고 싶지만 둘이 가서 하나를 맡기는 것과 둘이 가서 셋을 맡기는 건 무게감이 너무 다르다.
거실 창문으로 놀이터를 볼 수 있어서 한 번씩 내려다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도 잘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시간 넘게 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
매제가 소윤이 머리를 잘라줬다. 4번, 5번 척추 정도까지 길었던 머리를 겨드랑이 정도 길이까지 잘랐다. 아내는 슬쩍 단발은 어떻겠냐며 물었지만 내가 반대했다. 소윤이의 묶은 머리를 좋아한다. 서윤이도 머리를 잘랐다. 도대체 서윤이가 자를 머리가 어디 있나 싶겠지만 원래 빈약한 이들의 관리가 더 세심한 법이다. 앞, 옆에 비해 뒷머리만 너무 자라서 사진 각도에 따라 변발처럼 찍힐 때가 있었다. 뒷머리를 좀 짧게 만들고 숱도 쳤다. 이거야말로 첫 휴가 나온 군인의 군복에 잡힌 칼 각과 같은 거다.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랄까. 아내와 나는
“오, 깔끔해졌네”
라며 감탄했다.
아주 늦은 점심까지 먹고 돌아왔다. (내) 엄마와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가 모르는 소윤이의 비행(?)이 좀 있었던 것 같았다(엄마와 동생이 명확히 말해 주지는 않았다). 소윤이에게 집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했다. 소윤이에게 정확히 듣고 싶다고 얘기했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헤어지는 걸 무척 아쉬워했다. 집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모 집에서 하룻밤 더 잔다는 사실에 괜히 더 서운해했다. 그렇다고 울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헤어지는 게 서운할 뿐, 놀기는 실컷 놀았기 때문에.
지인의 집에 들러서 무화과를 좀 받아야 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무척 피곤했다. 평소에 일할 때나 휴일에 놀 때나 가장 취약한 시간이었다. 낮에 운전하느니 차라리 밤에 운전하는 게 낫다고 얘기할 정도로, 대낮의 운전은 너무 졸리다. 게다가 연휴 내내 쌓인 피로까지 자꾸 들썩거렸다. 이번에도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잠들었다. 차 안에 졸음의 기운이 가득했다. 갖은 수를 써 가며 졸음을 쫓아냈다.
집에 도착해서 소윤이에게 아침과 낮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라고 했다. 아침에 시윤이가 바운서에 부딪혔을 때나 낮에 놀이터에 나갔을 때, 둘 다 핵심은 비슷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굴고 심하게는 짜증까지 냈다. 물론 소윤이가 충분히 속상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도 파악이 됐지만, 속상하다고 해서 그만큼 무례해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이 안 된다. 속상한 건 속상한 것대로 만져 주고, 무례한 건 무례한 것대로 다뤄 주고.
시의성 면에서 다소 애매하긴 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양가 모두)를 만났을 때, 소윤이의 태도를 바로 잡기 위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소윤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엄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얼마든지 일탈(?)의 통로가 되어도 좋고 잠시 통제에서 자유로워지는 도피성이 되어도 좋다. 다만 최소한의 선은 지키길 바랄 뿐이다. 소윤이에게 이걸 충분히 설명했다. 소윤이와 이런 훈육의 시간을 가진 건 매우 오랜만이었다. 소윤이도 시윤이처럼 아내하고 있을 때는 조금 다르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아주 세밀하게 훈육할 일은 거의 없다. 다르게 보자면, 이제 아내와 나의 가르침이 침투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는 거다. 그래서 이런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소중히 쓰고 있다. 양쪽 부모님들은 소윤이와 시윤이를 매우 가엾게 여길 때도 많으시겠지만.
이제 휴일이 끝나고 내일 출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아직도 이틀이나 더 쉴 수 있다는 게 어색했다. 그러면서도 참 다행이었다. 알람을 맞추고 자지 않아도 되는 날이 아직 이틀이나 더 남았다니.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빠의 휴무를 나만큼이나 기뻐했다. 내가 쉬는 날이면 꼭 두 가지를 물어본다.
“내일 뭐 할 거에여?”
“내일 날씨는 어때여?”
정해진 건 없었다.
“소윤아, 시윤아. 글쎄. 오후에는 비가 그친다고 하니까 어디라도 나가자”
밤에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명절에 시간 맞추기도 어려울뿐더러 코로나 때문에 더더욱 모이기가 어렵다. 시간 맞는 친구들하고 잠시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내) 부모님 댁 근처였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동선이었지만 그래도 갔다. 아이들 재우는 게 늦어지면 그냥 못 간다고 할 생각도 있었는데 절묘하게 딱 시간이 맞았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30분 후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이제 책 다 읽고 누움. 서윤이 울음 한바탕 하고”
자러 들어가서 불 끄는 데까지만 30분이다. 그러고 나서 또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르고. 아내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이틀이나 남았기 때문에 상쇄시킬 시간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