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전투 육아를 위한 일보후퇴

21.10.02(토)

by 어깨아빠

평일이라면 퇴근하고 주로 하는 것들을 아침부터 많이 했다. 책도 읽고 우노도 하고. 블록은 처음에 서윤이가 꺼내 달라고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더 신나서 했다. 아내는 내가 나가기 전에 소윤이 공부도 좀 해야겠다고 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좀 늦어졌다(평소에는 서윤이 덕분에 제대로 봐 주지 못 할 때가 많으니, 아내가 소윤이와 함께 공부하는 동안 서윤이는 내가 맡아 달라는 의도였다). 늦어진 것은 둘째 치고 서윤이가 생각만큼 나에게 오지 않았다. 자꾸 엄마 옆에 가서 앉으려고 식탁 의자에 올라가고, 올라가서 방해(방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하고.


점심에 친구가 근처에 올 일이 있다며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전에도 몇 번 와서 연락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른 곳에 있거나 일이 있었다. 아내에게는 어제 이야기를 했다. 짧고 간단한 만남이지만 미리 이야기를 해 주고 안 해 주고의 차이는 크다. 다만 이번에는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만나기로 결정하고 얘기했다. 물론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오히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가지 말라며 난리였다. 자기들도 같이 가겠다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안다. 아주 잠깐이고 금방 올 거라는 걸. 그래도 주말에는 아빠와 떨어지는 게 어색하고 싫은가 보다. 시윤이는 서윤이를 동원해 가며 나를 막았다.


“서윤아아. 빨리 아빠 막아아”


2시간 정도 친구와 시간을 보냈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집에 돌아왔더니 서윤이는 자고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먹을 점심으로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고. 서윤이가 없는 평화로운 오후를 잠시 즐겼다.


“여보. 서윤이 깬 거 같은데?”

“그래? 소리 들려?”

“어. 선풍기 누르면서 놀고 있는데?”

“진짜?”


좀 더 혼자 놀게 뒀어야 했는데 궁금해서 참지 못했다. 베란다 창문 쪽으로 가서 커튼을 살짝 젖히고 뭐하나 보려고 했는데, 단박에 걸렸다. 이래서 요즘 다들 웹캠을 설치하는 건가. 동생네도 설치했는데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꼬물거리며 노는 걸 몰래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해 보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지난 번에 가서 친구를 사귀었던 그 공원에 가자고 했다. 혹시나 오늘 가면 또 만날지도 모른다면서. 내일 만만하지 않은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서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으니 그냥 동네에서 노는 것으로 대신하자고 부탁했다. 여기서 ‘무리하지 말자’는 건 애들이 아니라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빠가 내일 꽤 힘들지도 모르니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체력 소모를 줄여야 할 거 같다. 그러니 오늘은 아빠를 배려해 근처에서 간단히 놀자’


라는 의미였다. 동네에서 놀든 조금 멀리서 놀든 노는 방식은 비슷하다. 킥보드 타고 뛰고 놀이터 있으면 놀이 기구도 좀 타고. 그래도 본진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소모되는 체력이 있다. 얼른 본진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고.


아내는 쿠키를 예약해 놔서 그걸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다 함께 같이 갈지, 아내와 서윤이만 갈지 아내와 얘기를 나누는 걸, 소윤이가 들었다. 소윤이는 엄마와 서윤이만 가고, 아빠는 자기들이랑 놀이터에서 놀자고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내심 혹시나 소윤이와 시윤이가 같이 갔다 와서 놀자고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고 나는 소윤이, 시윤이와 킥보드, 자전거를 챙겨서 놀이터로 나왔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나와서 노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아내와 서윤이도 금방 돌아왔다. 소윤이는 그새 또 부쩍 큰 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못 하던 꽤 위험한 동작과 놀이를 가뿐히 해냈다. 놀이터가 성에 차지 않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시윤이는 여전히 누나처럼 잘 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마다 가끔씩 속상해하면서도 나의 도움을 받아 가며 잘 놀았다. 서윤이는 미끄럼틀의 재미에 맛을 들여서 계속 탔다. 중간에 서윤이보다 몇 개월 늦지만 훨씬 큰 아이 같은 친구의 관심도 받았지만, 서윤이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얼었다. 서윤이도 엄청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애들이 다 나 닮았나.


아파트 단지 안에서 ‘동네 복면가왕’ 행사를 했다. 말 그대로 동네 주민이 가면 쓰고 나와서 노래 부르고 대결하는 행사이자 공연이었다. 시작 시간이 되자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와 어른이 하나 둘 모였다. 어찌 보면 엄청 허술한 동네 행사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모여서 공연 같은 걸 보는 게 너무 어려워진 시대라 그 자체를 향한 갈급함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도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서윤이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유모차에 앉아 있던 서윤이가 울며 꺼내 달라고 하자마자 바로 귀가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들어오자마자 씻기고, 아내는 국수를 삶았다. 저녁은 콩국수였다. 안타깝게도 서윤이는 콩국수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싫어하는 음식이 거의 없는데 콩국수는 입에 안 맞나 보다. 국물도 싫고, 면도 싫다고 했다. 삶은 달걀만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잘 먹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애들을 재우다가 ‘재움’을 당한 아내가 뒤늦게 나왔다. 어제는 서윤이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주말의 밤을, 오늘은 아주 만끽했다. 물론 오늘도 마무리는 서윤이의 울음소리였지만 이미 즐길 만큼 즐기고 난 뒤라 괜찮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