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애 셋 정도야 뭐 껌이지, 엄청 질긴 껌

21.10.03(주일)

by 어깨아빠

예배가 끝나고 내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아내들은 없이, 아이들은 함께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아내는 교회에 가면서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좀 떨리지 않아?”

“나? 괜찮은데?”

“그래? 아무렇지도 않아? 막 떨리고 그러지 않아?”

“어, 그냥 ‘좀 힘들겠구나’ 이 정도?”

“여보. 언제든지 서윤이는 놓고 가도 돼”

“에이, 괜찮아. 어차피 잠깐일 텐데 뭐”


기왕 나가는 거 깔끔하게(?) 서윤이까지 데리고 나가야 아내에게도 보다 완벽한 자유시간이 될 테니 혼자 애 셋을 모두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기껏해야 2-3시간 정도였다. 아내에게 말한 그대로였다. 힘들 건 각오했지만 두렵거나 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말에 같이 있다가 아내가 갑자기 서윤이 재우러 들어가면, 그게 더 불안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큰 전투(?)인 만큼 각오를 단단히 해서 그런가. 아무튼 오후의 단독 육아를 위해 그 바쁜 아침에 애들 점심으로 먹일 주먹밥까지 싸서 나왔다. 설거지를 못 하고 나온 게 영 불편했지만 도저히 시간이 되지 않았다.


짧지만 완전한 자유의 시간을 얻은 아내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설였다.


“여보. 시내에 나가. 혼자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래. 날씨 좋으니까 밖에서 바람도 쐬고”

“그럴까?”


막 신나서 가는 게 아니라 떠밀려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아무튼 예배를 마치고 아내를 지하철역에 내려줬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


만남의 장소는 한강이었다. 점심시간쯤이었는데 사람이 꽤 많았다. 친구들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도 돗자리를 펴고 근처에 앉았다. 친구들은 각각 아들 둘, 아들 하나를 데리고 왔다. 나도 나지만 친구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한강까지 나오는 게 쉽게 마음먹고 실천할 만한 일은 아니다. 남편 없이 아내 혼자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테고, 아내 없이 남편 혼자 나오는 건 더더욱 그럴 테고. 자기 애들을 데리고 나와서 챙기는 모습이 어설프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다들 능숙했다. 친구들이 그래도 ‘바람직한 남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들 애들 점심은 싸 왔는데 정작 자기 먹을 건 안 싸 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한 명이 편의점에 가서 핫바와 삼각김밥을 사 왔다.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정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제 크게 손이 가거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에게는 서윤이의 행보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는데, 다행히 내내 기분이 좋았다. 적당히 돌아다니기도 했고, 쉴 때는 내 무릎 위에 앉아 얌전히 있었다. 친구들은 서윤이를 보며 ‘어떻게 이렇게 얌전하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원래 남의 아이가 얌전해 보이는 법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서윤이가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헤집고 이런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정말 얌전한 편인 것 같기도 하고.


극한으로 치달을 만큼 힘들거나 정신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여유롭게 앉아서 서로의 삶을 나눌 만큼 한가롭지도 않았다. 친구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무엇보다 서윤이가 너무 잘 있어 줘서 수월했다. 딱 세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헤어졌다. 다들 일정이 있어서 일어난 건데, 일정이 없었어도 그 정도 시간이 딱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헤어지며 날이 추워지기 전에 또 한 번 이렇게 만나자는 얘기를 했다.


아내는 연남동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곤란을 겪었다고 했다. 연남동으로 간 것도 그냥 나의 제안에 따른 거고, 거기서도 어디에 들어가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고 했다. 겨우 골라서 간 곳은 사람이 많아서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우리가 아내 근처로 갔을 때 아내는 카페에 있었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서 아내가 바로 나왔다.


밤에 아내에게 들어 보니 너무 갑작스럽고 오랜만이라 그런 게 맞는다고 했다. 그냥 ‘자유의 시간’ 자체를 즐기면 됐는데, 괜히 뭔가 맛있는 걸 먹어야 하고, 좋은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려서 여유롭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젊은이’가 너무 많아서 쪼그라들었다고 했다.


“여보. 요새는 다들 크롭탑처럼 입고 다니더라. 위에를 엄청 짧게”

“여보도 좀 걷어 올리지 그랬어”


내가 다 아쉬웠다. 아내의 자유시간이 다소 허망하게 날아간 것 같아서. 하긴. 하루 종일, 1년 365일을 아이 셋과 함께 보내는 아내에게 혼자 있는 자유의 시간이 어색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다음에 이런 시간이 또 생긴다면, 그때는 좀 더 제대로 누리기를.


저녁에는 처가에 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밥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나도 아내에게 갑작스럽게 들은 거라 애들한테 말해 주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차에서 잠들었고 소윤이는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놀라며 물었다.


“아빠. 왜 할머니 집 근처로 왔어여?”

“아, 오늘 할머니 집에서 저녁 먹으려고”

“아싸”


고작 3시간 정도였는데, 혼자 애 셋 데리고 있었던 게 피곤하긴 했는지 소파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졌다. TV나 볼까 하고 틀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있으니 보고 싶은 걸 틀지 못하고, ‘동물의 왕국’에서 멈췄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재밌게 보는데 난 눈이 감겼다.


“여보. 나 잠깐 누울게”


그러고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내가 깨워서 일어났다. 엄청 달콤하게 잤다고 생각했다.


“여보. 저녁 먹어. 지금 저녁 먹고 있는데 먹을 거면 일어나서 나와요”


잠결에도 아내의 배려(?)가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있으니 나와서 먹어도 되고 자는 게 더 좋으면 그냥 계속 자라는 뜻인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나가지 않고 계속 잤으면 그대로 뒀을 것 같다. 충분히 달콤하게 잤다고 생각하며 겨우겨우 잠을 떨쳐냈다.


집에 올 때 너무 늘어지지 않게 하려고 진작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다 씻겨 놨는데, 그래도 꽤 늦어졌다. 대신 집에 와서 엄청 편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손만 씻기고 바로 눕혔다. 서윤이는 차에서 잠들었고 그대로 눕혔다. 이럴 때(서윤이는 이미 자고, 소윤이와 시윤이만 재워야 할 때)는 아내가 같이 들어가지 않기도 하지만 오늘은 함께 들어갔다. 애교 많은 아들 시윤이가 진작에


“엄마아. 나 오늘 엄마 끌어안고 잘 거다여어”


라고 선언했다.


아들의 애교에 자비롭게 동행한 숙면의 방에서, 아내는 길을 잃고 말았다. 많이 피곤했는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왔다. 연휴의 마지막 밤인 만큼 아내와 수다나 떨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아내가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서윤이가 깨서 울었다. 내가 들어가서 안아줬더니 바로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손가락을 빨았다. 엄마를 찾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조금 토닥였더니 금방 또 잠들었다. 금방 잠든 건 다행이었지만, 왠지 불안했다. 깊이 잠든 게 아닌 것 같았고 다시 금방 깰 거 같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서윤이를 다시 방에 눕혔다. 눕히자마자 눈을 뜰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않길래, 문을 닫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오, 안 깨네?”


라고 말하자마자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이.


결국 아내가 들어갔고 그게 아내와 나의 마지막이었다. 아, 또 한참 있다가 아내가 잠깐 나오기는 했는데 그때는 나도 자러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효녀 막내딸이 엄마 수면 부족으로 쓰러지지 말라고 효도하네.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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