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4(월)
언제나 기분 좋은 월요일 휴일이었지만 아주 평범하게 집에서 보냈다. 날씨가 꾸물꾸물해서 그랬는지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들이를 향한 갈망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차분히 연휴를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는지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나가자고 보채거나 그러지 않았다.
내일이 아내의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여야 했다. 저녁에는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밥 먹고 와서 애들 재우고 끓이려면 너무 늦어질 거 같아서 오후에 미리 끓였다.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머리를 굴려가며 동선과 계획을 짜는데, 서윤이가 눈에 걸렸다. 졸렸는지 자주 칭얼거리고 삐져서 울고 그랬다.
“서윤아. 아빠랑 들어가서 낮잠 자자”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다. 막 울고 ‘깍깍’ 고함을 치면서. 서윤이의 매력은 금방 태세를 바꾼다는 거다. 까마귀가 귀 옆에서 우나 싶을 정도로 크게 깍깍거리던 녀석이 금방 자리에 누워 손가락을 빨았다.
“서윤아. 낮잠 자자?”
“응”
서윤이를 재우고 나와서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만 끓이기에는 뭔가 아쉬워서 냉장고 야채실에 있는 자투리 야채를 몽땅 꺼냈다. 팽이버섯, 애호박, 양파, 송이버섯, 부추 등. 다 잘게 썰어서 부침가루를 부어 반죽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미역국도 야채전도 성공적이었다. 그때 이미 구상을 마쳤다. 아내의 생일 첫 끼를 어떻게 차려 놓고 출근할지.
저녁은 밖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내일 퇴근하고 외식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까, 마침 휴일인 오늘 아내의 생일을 기념하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 아침에는 어디서 먹을지 식당 찾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구나. 월요일이라 휴무인 곳이 많았다. 아내의 생일을 기념하는 시간인 만큼 아무 데나 가서 먹을 수는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 근사한 곳을 찾기에는 우리의 규모가 너무 거대했다.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었지만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일단 정했다.
저녁 영업은 다섯 시부터 시작이었다. 혹시나 사람이 많으면 오래 기다려야 할까 봐 엄청 일찍 출발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인기가 많은 곳은 아니었는지 우려했던 인파는 전혀 없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이르기도 했다. 주변 동네 산책을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한때 연예인이 많이 살았다는 단독 주택 마을이 있어서 거기를 걸었다. 예쁘고 좋은 집이 많았다.
“우와. 소윤아, 시윤아. 이런 집 진짜 좋다. 그치? 꼭 숙소 같다”
“와, 아빠. 우리도 이런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자여”
“그럴까?”
“네.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당 있으면 좋겠어여”
“그러게. 진짜 좋긴 하겠다. 근데 이런 집은 엄청 비싸. 오고 싶다고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건 아니야”
아내는 아이들에게 ‘질투’에 대해 설명하며 걸었다. 아직 우리(아내와 나)도 잘 안되지만 부러움과 욕망이야 자연스러운 감정이니 어쩌지 못한다고 해도, 그걸 건강하게 흘러 보내거나 유쾌하게 즐기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잘 안되지만.
으리으리한 남의 집을 즐겁게 구경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됐다. 다행히 손님이 막 붐비고 그러지는 않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빈자리가 없었다. 나름 부지런을 떤 보람이 있었다.
“여보. 세 개 시키면 될까?”
“응? 세 개?”
“왜? 너무 조금인가?”
“하나 더 시켜야 하지 않을까?”
파스타는 칼국수가 아니므로 가게에 따라 폭탄처럼 많은 양이 나올 리가 없다. 게다가 우리 모두 배고팠다. 다 함께 점심을 걸렀다. 세 개 가지고는 턱도 없을 거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고, 역시나 적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샐러드도 잘 먹었다. 그야말로 ‘풀떼기’인데 우걱우걱 맛있게 먹었다. 서윤이는 자기 몫의 식전 빵을 모두 먹고 언니, 오빠의 빵을 가리키며 자기가 먹겠다고 했다. 착한 언니와 오빠는 흔쾌히 서윤이에게 빵을 나눠줬다. 그 뒤로 나오는 음식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까지, 모르는 사람도 점심 굶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먹었다. 매운맛이 나는 파스타만 아이들의 집중포화에서 살아남았다.
“여보. 좀 먹어”
“어, 먹고 있어. 괜찮아. 얼른 여보나 좀 먹어”
나는 서윤이,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챙기느라 바빴다. 서로 먹으라고 난리였고.
“엄마랑 아빠는 왜 맨날 자기는 안 먹으면서 서로 먹으라고 그래여어?”
“너네 먹이느라 못 먹으니까 그런다 왜”
즐거운 저녁 식사였다. 오물오물 부지런히 입을 움직이며 받아먹는 서윤이를 보며, 짜장면 먹을 때처럼 소스를 입 주위에 잔뜩 묻혀 가며 먹는 시윤이를 보며,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사 주는 사람 뿌듯하게 만드는 소윤이를 보며 기분 좋게 먹었다.
갑자기 비가 왕창 쏟아졌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나왔는데 왜 이렇게 피곤했는지 모르겠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아내도 그렇다고 했다. 애들이 힘들게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날씨 때문인가. 아무튼 비도 많이 오고 몸도 피곤하고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카페에 잠깐이라도 가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 것 같았다. 특히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려고 하는 서윤이의 모습이 떠오르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커피랑 케이크는 사서 집에 가서 할까?”
“그럴까? 그러자 그럼”
소윤이와 시윤이도 크게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생일 축하는 내일도 할 예정이었지만, 어쨌든 오늘이 공식 기념행사(?)를 치르는 날이니까. 대신 자그마한 조각 케이크를 샀다. 집에 도착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불을 끄고, 소윤이는 아내를 위한 편지를 전달했다.
“엄마아. 저는 준비를 못했어여어. 미안해여어”
시윤이의 무안함(?) 혹은 미안함이 느껴졌다. 괜찮다며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 주기는 했는데,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요즘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은 아빠랑 자자. 알았지?”
생일은 아니었지만 생일 축하를 받았으니, 이 정도 혜택은 있어야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충분히 이해했지만 서윤이는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울었다. 물론 내 말을 듣고 그런 건 아니고 재우려고 방에 들어가서 불을 끄고 엄마가 인사를 건네자, 그렇게 됐다. 서윤이는 또 매력을 발산했다. 그렇게 길지 않았다. 다른 날에 비하면 조금 길기도 했고, 날마다 조금씩 길어지는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짧게 끝났다.
애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몇 번이나 휴대폰을 얼굴 위에 떨궜다. 아내가 맨날 흑암의 시공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십분 이해가 됐다. 그래도 굳은 의지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왔다. 소윤이는 여전히 안 자고 있었지만, 인사와 뽀뽀를 건네고 나왔다.
“여보. 내일 내가 아침 차려 놓고 나갈게”
“진짜?”
“어. 반찬은 뭐 없겠지만”
“왜. 콩나물도 있고 고추나물도 있고 많지”
“아무튼. 밥도 다 따로 담아서 얼려 놨으니까 그거 먹으면 돼”
“여보. 고맙네. 미역국도 미역국이지만 내일 아침 뭐 먹을지 고민 안 해도 돼서”
이것이 육아인의 삶이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미역국도 고맙지만, 끼니 고민 한 번을 삭제해 준 게 더 고마운 거다. 뭐가 됐든 아내에게 즐거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