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05(화)
밤새 잠을 많이 설쳤다. 자다 나 혼자 깨기도 했고, 서윤이 때문에 깨기도 했고, 꿈도 많이 꿨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내와 나 사이에 서윤이와 시윤이가 누워 있었다. 좁아서 불편했나. 잠은 설쳤지만 덕분에 원래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깼다. 얼른 일어나서 조촐하지만 성의가 담긴 엄마의 아침 생일상을 차리라는 아이들의 깊은 뜻이었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냉장고에서 하나 둘 반찬을 꺼냈다. 내가 한 반찬은 미역국과 야채전 두 개 뿐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담음새를 예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 반찬도 식판에 따로 떠 놨다. 가리개 같은 건 따로 없어서 키친타월로 덮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생일상을 바라보며 양파즙을 마셨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아침 먹는 사진을 보내줬다. 아이들이 미역국을 아주 잘 먹었다고 했다.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뿌듯했다.
몇 년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생일이라고 특별한 일상을 살지는 않는다. 아이들 공부 봐 주고, 집안일 하고, 고장 난 프린터기 대신 직접 손으로 글씨 연습장 만들고. 낮에는 장모님이 잠깐 오셔서 같이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 간다고 했다.
퇴근하면서 꽃집에도 들렀는데, 아내와 아이들보다 내가 더 먼저 집에 도착했다. 그다음으로는 장인어른이 도착하셨다. 아내와 아이들도 곧 도착했다. 아내의 얼굴에 생일의 기쁨은 하나도 없고 지침과 힘듦이 가득했다. 시윤이는 만나자마자 까부는 게 느껴졌고. 아내는 나에게 눈빛으로 얘기했다.
‘얘네 엄청 까분다. 말 안 듣고. 어휴’
할머니와 함께할 때의 흥분과 그에 따르는 청각 상실(엄마 말만 선택적으로 안 들리는), 해가 지면 찾아오는 졸림과 피곤함, 대형 쇼핑몰에 가면 유발되는 정신없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아내의 피로도를 확 상승시킨 듯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바로 가셨고, 아내가 들어오면서 돈까스를 포장해 왔다. 밥을 먹고 나서 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를 했다. 어제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함께 가족사진도 찍고. 많이 더웠다. 사진 찍으면서 남은 체력이 급격히 소진됐다. 소윤이는 집게핀(지난 번에 나와 데이트 할 때 샀던 건, 아내가 지난 여행 때 잃어버렸다), 시윤이는 머리끈을 아내에게 선물했다.
“오늘도 아빠랑 자자. 오늘 엄마 생일이니까”
애들을 안 재운다고 아내가 뭔가 특별한 일을 더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뿐. 오히려 어수선한 식탁과 그릇이 쌓인 싱크대를 보며 마음이 더 심란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생일인데 애들 재우다가 허무하게 자정을 넘겨 버리기라도 하면, 그건 너무하니까. 시간의 흐름을 그저 관찰하는 것뿐이어도, 깨어 있는 게 자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게 아내의 생일이 평범하게 지나갔다. 그래도 어제를 공식 행사일로 지정하고 밖에서 밥 먹은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이었으면 시간에 쫓기고 체력에 쫓겨서 너무 힘들었을 거다.
뭔가 더 열렬히 신나게 생일을 축하해 주지 못한 게 아쉽지만, 또 어쩌면 이제 이게 아내와 나의 새로운 현실이자 일상일 거다. 평범한 듯하지만, 잊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새삼 표현하는 기회의 날로 삼으면 딱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