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없이 시간만 보낸 외출

21.10.06(수)

by 어깨아빠

아내가 아직도 생일 선물을 못 골랐다(제시하는 총알이 너무 부족해서 그런가). 이런저런 후보군 중에 신발이 있었다. 집 근처 쇼핑몰에 평소에 눈여겨보던 브랜드 매장이 있어서 가 보기로 했다. 아내는 상황이 된다면 아이들 저녁을 먹여서 나오기로 했고, 나는 퇴근을 거기로 하기로 했다. ‘상황이 되면’ 저녁을 먹여서 나오라고 하긴 했지만, 그동안 아내가 저녁을 먹이고 나온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하는 것만 해도 벅찬데, 그보다 더 이른 시간에 아예 먹여서 나오기까지 해야 한다니. 생각해 보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네.


“여보”

“어, 여보. 어디야?”

“아, 난 이제 나가려고. 여보랑 나는 김밥 사 가려고 하는데 괜찮아?”

“어, 그래. 애들은?”

“애들은 샌드위치 먹고 싶대서 그거 사 가려고”

“알았어”


약속 장소에 내가 더 빨리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대로 앉아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한 20여 분 기다렸더니 아내와 아이들도 도착했다. 서윤이가 카시트에 앉아서 ‘압빠아’를 연호했다.


푸드코트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녁부터 먹었다. 서윤이는 아내가 싸 온 주먹밥을 먹였다. 서윤이가 기분도 제일 좋아 보였고 가장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좀 졸려 보였다. 아내가 주는 주먹밥을 받아먹는 서윤이의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더 부쩍,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내와 나처럼 서윤이를 감상할 때가 많다. ‘막내가 이래서 막내구나’라는 걸 많이 느낀다.


샌드위치를 먹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가 덜 찼는지, 서윤이의 주먹밥도 계속 받아먹었다. 그러고 나서도 배가 안 찼다고 해서 어묵도 사 줬다. 배가 안 찬 건 나도 마찬가지라 내가 먹을 어묵도 함께 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먹여줬고 나는 내가 들고 먹다가 아내도 한 입 주고 그랬다.


“자, 여보. 먹어”

“어? 난 소시지 부분이 먹고 싶은데”


아내가 먹기 좋게 올려주다가 빵만 올라오고 소시지는 그대로였나 보다. 무슨 음식을 먹더라도 한 입의 완성도와 모든 재료의 참여 및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아내에게, 소시지 없는 (부분의) 핫도그를 먹는 건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아내가 빵과 소시지를 균형 있게 먹을 수 있도록 조치해서 먹여 주고, 다시 또 내가 먹었다. 아내에게 또 한 입 주려고 핫도그 밑부분을 잡고 밀어 올렸다. 빵과 소시지를 한꺼번에 올리기 위해 힘을 쏟았는데, 피유우우웅 하고 빵과 소시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급히 손을 뻗어 잡아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아, 아깝다”

“여보. 나 주려고 했어?”

“어, 여보가 소시지 부분 먹고 싶다며”

“나 이제 안 줘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정작 아내의 신발은 별 소득이 없었다. 매장에 전시된 신발이 별로 없었다. 마음에 드는 건 아내 발에 맞는 크기가 없거나, 크기가 맞는 건 마음에 드는 색상이 없거나. 10분 정도 살펴보고 신어 보고 나왔다.


신발 매장으로 가는 길에 호두과자와 옥수수빵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냄새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고 싶어 하길래 사 준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그냥 사 주고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옥수수빵을 골랐다. 호두과자는 많이 먹어 봤고 옥수수빵은 신기해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너무 뜨거워서 신발을 구경하고 나와서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소윤이는 몇 입 먹더니 바로


“호두과자가 더 맛있다”


라며 혹평(?)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옥수수빵을 먹는 동안 유모차에 앉은 서윤이랑 놀려고 했다. 서윤이에게 뽀뽀를 하려고 얼굴을 가까이 댔는데,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여보. 서윤이 똥 싼 거 같은데?”

“그래? 두 번이나 쌌는데”

“아닌가. 여보가 맡아 봐”


아내가 기저귀를 살짝 들춰 보더니 옅게 인상을 쓰며 맞는다는 표시를 했다. 근처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처리를 했다.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들어갔고 난 소윤이, 시윤이와 밖에서 기다렸다.


“여보. 혼자 괜찮아? 나도 같이 들어갈까?”

“아니야. 급하면 부를게”


아내가 나를 부르기 전에, 서윤이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어어어어, 서윤아아아아아. 아니야아아아. 만지면 안 돼에에에. 서윤아아아아아”


잠시 후 아내가 나를 불렀다.


“여보오오오오”


얼른 들어가서 서윤이가 엄한 곳에 손을 뻗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았다. 아내가 서윤이를 챙기는 동안 서윤이의 기저귀와 물티슈를 치우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의자에 앉아서 여전히 옥수수빵을 먹고 있었다. 옥수수빵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소윤아, 시윤아. 잘 잡아. 떨어뜨리지 않게”


라고 말했더니 소윤이가 이렇게 받아쳤다.


“아빠. 근데 떨어뜨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맛이에여”


소윤이 입에는 정말 별로였나 보다. 시윤이는 그래도 잘 먹던데. 잠시 후 서윤이를 데리고 나온 아내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2시간 정도 늙어 있었다.


신발을 구경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차를 탔고 서윤이만 아내 차를 탔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샀는데 그때 서윤이가 ‘압빠아’를 애타게 불렀다. 목청도 좋아서 까랑까랑하니 잘 들린다.


“압빠아아아아아. 압빠아아아아아악”


별로 한 것도 없고 영양가도 없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시간만 늦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자다가 나왔다.


“아아아. 하아아”

“왜? 여보?”

“아니. 불편하게 누워 있었나 봐. 뻐근해서”

“아”


자고 싶지 않으니 잠들기 불편한 자세로 누웠을 테지만, 불편한 자세 따위는 쉽게 묵살해 버리는 곳이 저 신비의 방이다.


깨려고 하는 자 잠들 것이요, 자려고 하는 자도 잠들 것이라.


필면즉생 필면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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