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는 금요일

18.12.14(금)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후쯤 애들을 데리고 집 앞에 나갔다. 소윤이는, 대부분 녹긴 했지만 길 옆으로 조금씩 남아있던 눈을 밟기도 하고 그 사이 시윤이는 유모차에서 잠들어서 짧게나마 아내와 소윤이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오전 내내 징징거리던 시윤이는 자고 잠깐이라도 바깥바람을 쐬니 아내는 살 것 같다고 했다. 설령 그 '잠깐'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들 진짜 죽을리는 없지만, 적어도 '죽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우는데는 그 '잠깐'이 아주 유용한 거다.


시윤이는 지가 무슨 봉선화도 아니고 툭하면 운다. 점점 자기 의지가 강해지고 주장이 세지면서, 하지 말라거나 안 된다고 하는 말에 울음으로 대응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되면 남은 자(아내와 소윤이)의 슬픔 또한 가중된다. 시윤이 깨고 나서는 소윤이도 말을 잘 안 들어서 아내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단골 카페 사장님에게 둘을 맡겨놓고 잠시 한살림에 뭘 사러 간다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애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했는데 원래 아내랑 같이 가려다가 아내는 집에서 저녁 준비도 하고 집도 치우고 한다고 해서 집에 들어가서 옷도 안 벗고 그대로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시윤이의 폐렴, 모세기관지염 증세는 거의 다 사라진 상태고 오히려 소윤이의 코가 지난번보다 더 부었다고 했다. 소윤이나 시윤이나 특별히 말을 안 듣거나 징징거리지 않고 오히려 잠깐 외출하는 느낌으로 굉장히 기분 좋게 다녀왔는데도 뭔가 힘들었다. 역시 애 둘을 홀로 데리고 다닌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틈이 없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아내의 일상에 존경을 표할 수 밖에 없다) 병원 소파에 잠깐 앉으면서 나도 모르게


"으아"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는 어디 가시고"

"아. 집에요"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서 서로 역할 분담한 겁니다'라고 덧붙이지는 않았다.


집에서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갈 때도, 병원 지하주차장에서 병원까지 올라갈 때도 시윤이는 안고 소윤이는 손을 잡고 걸어갔다. 소윤이는 당연하다는 듯 안아달라는 소리 한 번 없이 손을 잡고 잘 따라와 줬다.


"소윤아. 주차장에서 집까지 갈 때는 아빠가 소윤이 안아줄까?"

"그럼 시윤이는여?"

"시윤이는 손 잡고 걸어가면 되지"

"왜여?"

"그냥 소윤이는 계속 걸어갔으니까"


소윤이는 소리 없는 함박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소윤이는 웃었지만 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첫 딸을 향한 아빠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행동을 금방 후회했다. 소윤이는 한 팔로 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는 동안 이미 팔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이 한 15층만 됐어도 중간에 내려놨을 거다. 다음부터 양 팔을 다 쓸 수 있을 때 말고는 함부로 소윤이를 안아주겠다는 약속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몹시 지쳐 보였다.


오늘 하루는 물론이고 이번 주의 피로가 모두 누적되어 한계치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병원 갔다 오니 시간이 훌쩍 흘러서 나는 바로 교회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내의 부지런함 덕분에 내가 집을 떠나기 전 웬만한 일은 다 마친 상태였고 30분 안에 잠자리에 돌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늦은 오후에 양껏 낮잠을 잔 시윤이가 오늘도 안 자고 버티느냐 마느냐였지만 아내나 나나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빨리 잘 리가 없다는 걸.


예배 중간 아내에게 카톡을 해보니 오늘도 한 시간 반 걸렸다는 답장이 왔다. 이번 주에 하도 많이 시달려서 그런지 오히려 담담한 어투였다. 얘기하고 결정해야 할 게 있어서 아내랑 앉아서 얘기하는데 내가 얘기하면 계속 틱틱거리고 생각이 잘 안 난다며 대화의 리듬을 깨는 아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에게 살짝 짜증이 났다.


그러던 와중에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설거지를 하러 간다길래 내면의 깊은 짜증이 솟구쳤고 대화를 종료하고 나도 내 할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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