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5(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전부터 소윤이는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했다. 도서관이야 근처에 널리고 널렸지만 소윤이랑 시윤이 둘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는 건, 특히 시윤이 때문에 극강의 난이도를 가진 육아활동이라고 아내는 얘기했다. 가려면 나도 함께 가거나 아니면 소윤이만 데리고 가야 했는데 마땅히 시간이 나지 않다가 오늘 비로소 그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아침 먹고 아내랑 소윤이는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나는 시윤이랑 뭐 할까 고민하다 그냥 집에 있는 건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목적지는 정하지 않고 일단 나가기로 했다.
"아빠랑 도서관 가고 싶은데"
"그래? 그럼 아빠랑 갈래?"
"엄마랑 아빠랑 가고 싶은데"
"그럼 시윤이는?"
"시윤이는 집에 있고"
"아. 그건 안 되잖아. 나중에 할머니한테 시윤이 맡기고 그렇게도 한 번 가자"
아내는 시윤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조금 걸으면 잠들지도 모른다며 희망을 줬다.
"에이. 설마 자겠어. 평소에는 더 늦게 자잖아"
"아니야. 유모차 태우고 밖에 나가면 자주 자"
괜히 기대다가 실망할까 봐 애써 아닌 척하면서도 아내의 말을 내심 믿었다. 12시가 조금 안 돼서 다 함께 집을 나섰다. 시윤이를 먼저 유모차에 태워서 복도에 세워 놓고 소윤이 신발도 신기고 옷도 입히고 그러고 있었다. 시윤이는 유모차가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한지 울음소리를 내는데 소윤이는 자꾸 이것저것 요구하고, 시간 끌고 그랬다.
"소윤아. 시윤이 울잖아. 복도에서 울면 시끄러워. 얼른 나와"
부산스럽게 소윤이를 챙기며 유모차에 누워 있는 시윤이를 힐끔 확인했는데, 맙소사. 잠들어 있었다.
"여보. 여보. 빨리빨리빨리"
"왜?"
"시윤이 자. 빨리빨리빨리. 난 빨리 움직여야 돼"
아내와 소윤이는 도서관으로 나랑 시윤이는 스타벅스로. 세상에 이게 웬 호사란 말인가. 의외로 그 시간에 나처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아빠는 없었다. 1층 구석 자리에 앉은 한 엄마는 우리랑 같은 종류의 유모차를 커다란 이불 같은 걸로 가려 놓고 있었다. 그 심정 잘 알 수 있다. 얇디얇은 가녀린 천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걸로 밝은 빛도 차단하고, 시끄러운 소음도 막아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일 게다.
안타깝게도 내가 커피를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분의 딸이 울며 유모차에서 등장했다. 그분도 커피와 케이크를 받아온 지 얼마 안 됐었다. 2층에도 커다란 웨건을 비슷하게 큰 천으로 가린 한 엄마가 있었다. 그분은 한창 자유가 무르익은 느낌이었다.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폈다. 기쁘고 즐거운 순간이니 사진도 한 장 남기고. 시윤이는 그렇게 1시간 조금 넘게 잤다.
1시간이 뭐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대수였다. 시윤이는 일어나서도 내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시윤이가 무릎 위에 앉고 나서는 더 이상 뭘 할 수 없었지만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마침 아내도 도서관에서 나와 카페로 올 거라고 했다. 소윤이가 아빠랑 시윤이 있는 카페로 가고 싶다고 했다면서.
거의 바로 홈스쿨 모임 하러 가야 해서 아내가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도 사 오기로 했다. 올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안 오길래 왜 안 오나 하고 있던 차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맙소사]
[왜?]
[소윤이가 잠들었음]
카페를 잔뜩 기대했다던데 잠에서 깨 카페가 아니라는 걸 알면 분명 또 잔뜩 떼를 쓰며 울 게 분명했다.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깨면 그때 설득을 하든 설명을 하든 하기로 하고 홈스쿨 모임 장소로 출발하기로 했다. 나랑 시윤이가 있는 곳으로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왔다. 조심스럽게 시윤이를 카시트에 앉히는데 소윤이가 눈을 뜨고 꿈뻑거렸다. 몇 꿈뻑거리는가 싶더니 다시 스르르 눈을 감길래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는데 깜짝 놀란 듯 파다닥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빠. 여기 어디야?"
"어. 이제 홈스쿨 교회 가려고"
"카페는?"
"어. 카페는 지금은 못 가고 이따 가야 할 것 같은데"
"아니야. 아니야. 카페 가기로 했잖아아아아아아"
역시 울음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소윤이를 진정시켰다. 이건 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냥 때가 안 맞았을 뿐. 미리 교회에 도착해서 애들 김밥을 먹였다. 소윤이는 뭔가 기분이 틀어져 있었는지 계속 삐딱한 태도를 취하다가 도가 지나치고 선을 넘어서 나랑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 (대화라고 쓰고, 훈육이라고 읽고, 훈육이라 읽고 기싸움이라고 표현해 본다) 시윤이는 시윤이대로 울음 시한폭탄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툭하면 울었다. 울고 나서 나한테 오기라도 하면 좀 나을 텐데 무조건 엄마만 찾아댔다.
부모교육 마쳤을 때, 이미 아내와 나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는데 소윤이랑 약속한 그놈의 카페를 꼭 가야만 했다. 약속이었으니까. 일단 저녁을 먹기로 하고, 가 본 적이 있는 돈까스 가게에 갔다. 소윤이는 매우 협조적이고 호조의 상태였으나 역시 시윤이가 문제였다. 밥을 시원하게 먹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나마도 지 먹을 거 다 먹고 나서는 나가겠다고 난리 난리 생난리 부르스를 피우는 바람에 결국 내가 먼저 데리고 나갔다. 밥 다 먹고 나서는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갔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약속 이행을 위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려고 했으나
역시 강시윤이가 장애물이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이래도 으앙 저래도 으앙 안아도 으앙 앉혀도 으앙 빵을 통째로 줘도 으앙 잘라서 줘도 으앙. 으앙 으앙 으앙 으앙.
아침에 시윤이 데리고 카페 갔을 때, 시윤이가 잠들고 나 홀로 기쁨을 만끽했을 때, 그때. 오늘의 운을 다 당겨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에는 질량 보존의 법칙, 조직에는 돌아이 총량 보존의 법칙, 육아에는 육아노동 총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하나 보다.
내가 아침에 편히 있었는지 육아노동의 총량을 맞추기 위해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계속 시윤이를 그렇게 울리나 보다. 하아.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고 다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입장할 때부터 헤롱헤롱거렸다. 내가 책을 읽어주고 그대로 소윤이 옆에 누워서 소윤이를 재웠다. 아내는 매트리스 위에 눕고.
"아빠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 주세여"
"그럴까?"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어 가며언 아기는 호..."
"아빠. 부르지 마세여"
"왜?"
"아빠는 엄마만큼 목소리가 안 예뻐서 싫어여"
"아. 그래?"
"엄마한테 불러달라고 할 거에여"
"그래 그럼"
"엄마. 엄마"
".........."
아내는 답이 없었다. 소윤이가 매트리스 위에 올라가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엄마가 섬그늘에 불러주세여"
"어? 어. 어. 엄..마..가..서...엄..그...느...ㄹ"
"엄마? 왜 안 불러여?"
".........."
"소윤아. 엄마 잠들었나 봐"
"그냥 아빠가 불러주세여"
"알았어"
아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고 그다음 소윤이, 마지막으로 시윤이. 가장 나중에 잠든 시윤이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않았으니까 금방 다시 나왔다.
분명히 하루를 시작할 때는 좋았는데 끝날 때가 되니 내 안의 모든 것이 비워진 이 느낌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