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6(주일)
부지런히 준비하고 집을 나서기 직전 큰 잘못을 한 소윤이를 훈육해야 했다. 컸다고, 말 좀 잘한다고 말로 따박따박 반항하며 대드는 소윤이와의 훈육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결국 예배 시작할 시간에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그냥 12시 10분 예배드릴까?"
"그럴까?"
교회에 가기 전에 카페 윌에 들러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시간에 맞춰 예배에 가려는데 또 소윤이를 훈육해야 할 일이 생겼다. 또 차 안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냈고 결국 아까만큼은 아니었지만 예배에 조금 늦게 됐다. 누나가 훈육받는 동안 시윤이가 잠들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였다.
집에서 나오기 전,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여보. 나 오늘은 정말로 축구하러 안 가도 돼"
"왜?"
"아니 그냥. 여보가 너무 힘들까 봐"
"맨날 똑같지 뭐. 난 괜찮은데"
"아니 이번 주에 너무 힘들어 보여서. 다른 날도 진심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진짜 진심이야"
"괜찮아. 갔다 와"
"진짜라니까. 언제든 말해"
진짜였다. 혹시 아내가 속으로 '오늘은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마 말 못 하고 있을까 봐, 몇 번이고 그렇게 말한 거였다.
"여보. 이거 운동복 챙기는 건 일단 챙겨 놓는 거야. 오해하지 마.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니까"
"뭐래. 갔다 오라니까"
입술에서 나가는 단어와 문장과는 반대로 내 몸은 운동가방에 운동복과 축구화를 꾸역꾸역 처넣고 있었다.
"여보. 일단 준비하는 거야. 언제든 말해"
소윤이는 새싹꿈나무에 보내야 했는데 역시나 오늘도 문 앞에서 실랑이가 있었다.
"소윤아 얼른 들어가야지"
"싫어어어어. 안가아아아아"
"아빠 그럼 선생님한테 그냥 안겨주고 간다?"
"안 돼에에에에에에"
"그럼 얼른 인사하고 헤어지자. 아빠 금방 오잖아"
"싫어어어어어어어"
결국 강제로 선생님 손에 넘겨드리고 내려왔다. 시윤이는 자서 예배 시간에는 평안했다. 너무 평안했나. 아내는 괜찮았는데 나는 자꾸 졸았다. 평소보다 늦은 예배를 드린 탓에 내 목장 모임 시간이 바로 이어졌다. 애들 밥을 먹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일단 먹여 보기로 했다. 목장 모임 시간이 임박했지만 나도 함께 식당에 가서 밥 먹이는 데 동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 식당에서 아내 혼자 애 둘을 밥 먹이는 건 무리였다. 막 잠에서 깬 시윤이는 의외로 땡깡 피우지 않고 잘 받아먹었다.
운동 가방은 차에 있었고 밥 다 먹이고 차에 갔다 오기에는 너무 늦고. 나 혼자 목장 모임에 가고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차에 갔다가 다시 와서 나에게 가방을 전해주고 가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고. 이미 목장 모임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라 일단 내가 시윤이를 데리고 목장 모임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함께 주차장에 가서 차를 타고 조금 더 교회 가까이 이동한 후, 나에게 가방을 전해주고 시윤이를 데리고 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시윤이를 데리고 목장 모임을 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쪼르르르 달려왔다.
"아빠"
"어. 소윤아. 엄마는? 차 가지러 갔어?"
"네"
아내가 차를 가지러 간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있었다. 금방 아내가 도착했다.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아내는 운동 가방을 건네고 난 두 아이들을 건네고. 아내가 읽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난 눈빛을 보냈다.
'여보. 진짜야. 언제든 연락해'
추울까 봐 히트텍까지 껴 입었는데 생각보다 따뜻해서 축구하는 내내 땀을 뻘뻘 흘렸다. 평소에 자주 차를 얻어 타던 집사님이 먼저 가셔서 누구 차를 얻어 타야 하나 살펴보다가 그나마 방향이 비슷한 한 집사님께 부탁을 드려서 그 차에 올라탔다. 아이폰은 그 명성에 걸맞게 날씨가 좀 추워지니 자기 멋대로 꺼졌다가 켜졌다가 그러는지 정상이 아니었다. 집 근처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휴대폰이 켜졌고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서?"
"집 앞인데? 여보는 어딘데?"
"여보 내가 보낸 카톡 못 봤어?"
"어. 폰이 자꾸 지 맘대로야"
"아 아무것도 못 봤구나. 난 여보 축구하는 데 갔다가 여보가 없길래 다시 가는 중이야"
"아 진짜?"
"어. 오늘 엄마 아빠 만났거든. 그래서 일산 갔다가 여보한테 갔는데 없더라"
"아. 그랬구나"
"난 시윤이 깨우느라 엄청 고생했어"
"그래서? 지금은 안 자?"
"어. 나의 노력으로"
그렇게 엇갈린 우리는 지하 주차장에서 재회했다. 아내는 엄마, 아빠 찬스로 소윤이랑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찬스로 나는 축구 찬스로 다들 기분이 좋았다.
"여보. 괜찮아?"
"어. 오늘은 엄마, 아빠랑 있었으니까"
"다행이다. 고마워"
생각해보니 이번 주부터 수요 축구는 휴식기간이라 오늘도 못 뛰었으면 좀이 쑤실 뻔했다. 다 같이 자러(아내랑 나는 재우러) 들어갔는데 소윤이는 아내의 '엄마가 섬그늘에'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잠들었고 시윤이는 계속 뒤척뒤척거렸다. 아내가 빨래를 널어야 한다며 (그건 표면적 이유였고. 이번 주는 더 이상 강시윤 때문에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게 아마 진짜 이유였을 거다) 나에게 시윤이를 부탁하고 나갔다.
소윤이가 더 어렸을 때도 느꼈는데 애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사실 다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시윤이도 엄마가 있을 때는 안 잘 것처럼 말똥말똥, 움직이더니 엄마가 나가고 아빠가 옆에 눕자 바로 엄지손가락을 입에 꽂고 자려는 노력을 했다. 아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시윤이는 아내가 나가고 나서 5분도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아내가 지난주 울산에 다녀오고 나서(울산 홈스쿨을 보고 나서) 이번 주 고된 시간을 겪으며 부모로서 아이를 기르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했다는 얘기를 했다. 잠자리에 누운 소윤이에게 [그의 생각]이라는 찬양을 불러주면서 성실이라는 가치를 곱씹게 됐다고 했다.
매일, 똑같이, 똑같이 힘들게, 때로는 버겁게, 가끔은 피하고 싶어도 내 앞에 떡하니 와 있는, 반복되는 그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양육자의 사명이자 정도라고 생각했다면서.
성실이 사랑을 만드는 것인지 사랑은 성실을 낳는 것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내 말을 듣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건 사랑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랑이 감정이라면 성실은 현실이자 실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