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7(월)
모두 자고 있을 때 조용히 빠져나와 집을 나섰다. 보통 아이들이 일어나면 전화를 하는데 홈스쿨 모임이 있는 날이라 오전부터 바빴는지 연락이 없었다. 반찬으로 생선을 구워 간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 여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애들 밥 먹이면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고 바쁘긴 해도 처절한 아침은 아닌 듯 보였다. 홈스쿨 모임이 있는 날에는 보통 아침에 연락하고 나면 홈스쿨 끝날 때 다시 연락이 된다.
"여보. 이제 가려고 차 탔어"
"오늘은 늦게 끝났네?"
"응. 어쩌다 보니까. 여보 시윤이는 내가 중간에 업어서 재웠어"
"진짜?"
"어. 지금 자면 너무 늦으니까"
"고마워"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아내의 고정 자유시간이 있는 월요일에 내가 뭐 엄청 희생하는 것처럼 쓰곤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아내가 집에서 나감과 동시에 두 녀석도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나도 나름의 자유시간을 가지는 거다. 홈스쿨을 시작하면서 중간에 시윤이를 재울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집에 올 때(아주 늦은 오후에) 차에서 잠든 적이 몇 번 있었고, 본능적으로 불안함과 불편함을 표현하는 나의 모습에 아내는 어떻게든 시윤이를 재워 보려고 한 거다. 아내의 선택은 어부바. 요즘은 낮잠을 언제, 얼마나 잤느냐에 상관없이 뒤통수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퇴근시간 조금 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소윤이었다. 저 너머로는 강시윤의 거칠고 격한 울음소리가 들렸고.
"아빠"
"어. 소윤아"
"아빠. 시윤이 이렇게 우는데 시윤이 만날 수 있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시윤이가 너무 우니까. 만날 수 있겠냐고"
"당연히 집에 가면 만날 수 있지"
"아니. 시윤이가 많이 울어서 만날 수 있어?"
"그럼. 집에 가면 당연히 만나지"
"아. 그래?"
"시윤이는 왜 이렇게 울어?"
"몰라하"
"엄마는?"
"엄마는 시윤이 안아주고 있지"
"소윤이는 뭐 하고 있어?"
"난 그냥 있어"
말하는 내용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말투는 꼭 옆집 아줌마처럼 능청이 넘친다.
조금 늦게 퇴근한 데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복귀했다. 시윤이는 방금 막 씻었는지 얼굴과 머리카락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기분은 엄청 좋아 보였다.
"아빠"
"어. 소윤아"
"우리 밥도 다 먹고 씻고 있어여"
화장실에서 소윤이가 손을 씻으며 나에게 말해줬다. 아내는 역시 지쳐 있었다. 내내 난타전을 벌이고 겨우겨우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마지막 라운드의 복서처럼. 톡 건들면 픽 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시윤이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랑 엄청 잘 놀았다. 뛰어다니고 웃고 그야말로 기분 좋음 그 자체였다. 소윤이도 기분이 좋기는 했는데 가득 찬 졸음으로 인한 이성의 마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소윤이는 아내더러 나가지 말라며 슬슬 떼의 불을 지피고 있었다. 시윤이는 여전히 나랑 잘 놀고 있었다. 거실에 있던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앞도 안 보이는 상태로 좋다고 웃으며 걸어가길래 아내한테도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막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예 앞을 가리고, 눈을 감고 앞으로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로, 시윤이는 겁도 없이 걸어갔다. 몇 발자국 걷다가 아기 소파에 발이 걸려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고 시윤이는 손을 짚을 겨를도 없이 이마부터 땅에 떨어졌다.
쿠웅.
여태껏 들었던 소리 중에 가장 큰 충격음이 발생했고 이후 이어지는 시윤이의 울음도 그동안 듣던 울음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으에에엥. 으아아아아앙"
말은 못 해도 진짜 아프다고 외치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왼쪽 이마가 금세 부어오르고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시윤이의 거친 울음은 멈추지 않았고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아내를 잡아 두려던 소윤이도 자기 뜻이 먹히지 않자 시윤이의 울음에 화음을 쌓았다. 아내가 나갔지만 소윤이는 일부러 더 크게 울었고 시윤이는 나에게 안겨서 울다가 자기 자리에 눕혀 놓으니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다. 소윤이는 누워서도 계속 울길래 (눈물은 나지 않는, 억지로 우는 마른 울음이었다) 한참 기다리다가 물어봤다.
"소윤아. 계속 울 거야?"
"아니"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울고 자자"
소윤이도 시윤이도 금방 잠들었다.
아내가 어제 얘기하기를, 오늘(월요일)은 영화를 보든 서울을 나가든 뭔가 좀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고 했다. 하필 다른 월요일보다 아내의 출가(?)가 좀 늦었고 아내는 일단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늘 뭐 하려고?"
"글쎄. 영화는 마땅히 보고 싶은 게 없더라"
"그럼 서울이라도 나갔다 와"
"서울?"
"어. 망원동이나 합정은 금방 가"
나의 계속되는 성화(?)에 아내는 합정에 있는 앤트러사이트에 갔다.
"여보. 좋긴 좋다"
"그래. 나가면 기분 난다니까"
그래 봐야 두 시간 남짓이지만 아내는 서울 바람을 코에 잔뜩 넣고 돌아왔다. 대신 고된 하루의 후폭풍으로 매우 피곤한 모습이었다.
"여보. 졸려?"
"어. 왜 이렇게 졸린가 했더니 하루 종일 시윤이를 안고 있어서 그런가 봐"
"그러게. 힘들지 힘들어"
"여보. 내일은 이케아에서 목장모임한대"
이 말의 숨겨진 의미는 이거였다.
'차는 내가 써야 해'
오늘은 책 한 페이지를 채 못 넘기고 계속 졸았을 정도로 피곤했는데 내일도 대중교통 출퇴근이 예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