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8(화)
어젯밤(정확히는 오늘 새벽이지만)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갔는데 소윤이랑 시윤이가 깨 가지고 한참 난리가 있었다. 아내와 내가 누워 있는 매트리스에 올라오겠다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내려 보내느라 (순순히 내려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그 새벽에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더 큰 녀석이나 덜 큰 녀석이나 졸린 와중에 뜻대로 안 되니 어찌나 울어 젖히는지 울화가 치밀었지만 모른 체하고 잘 참았다.
잔 것 같지도 않은 듯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조용히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씻는 동안 아내가 일어나서 나왔다.
엄마의 부재를 감지하는 센서가 세포 어딘가에 내장되어 있는 게 분명한 소윤이, 시윤이는 귀신같이 엄마가 방에서 탈출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함께 따라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출근하면 엄마랑 다시 들어가서 자? 알았지? 지금 너무 이른 시간이야"
라고 얘기하면서 출근하긴 했지만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역시나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내 예상대로였다. 그래도 아내는 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 누워서 뒹굴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케아에서 목장 모임 겸 점심 식사를 한다던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때마침 시윤이가 잠들어서 좋았는데 가려고 했던 곳이 유모차는 입장 불가인 데다가 썩 친절하지 않아서 빈정이 상했다고. 어찌 됐든 어른은 총 네 명에 애들은 소윤이, 시윤이 이렇게 둘이었는데 어른들은 각각 두 명씩 떨어져 앉고 시윤이가 탄 유모차는 가게에서 정해준 곳에 위치시키고 나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래 오늘 퇴근하고 이케아에 갈까 했었다. 내 방 마련의 꿈을 간절히 품고 있지만 실현할 수 없는 환경에 허덕이는 나를 가엽게 여긴 아내가 그럼 내 방까지는 아니어도 옷방에 딸려 있는 컴퓨터 책상 주변(?)을 내 공간으로 만드는 데 적극 힘을 보태겠다고 했고 그 첫걸음으로 편한 의자를 사라고 했다. 이런저런 브랜드를 알아보다가 그냥 가까이 있는 이케아에 가서 앉아 보고 거기 있는 걸로 사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리하여 오늘 이케아에 가려고 했는데 아내가 거의 오후 3시까지 이케아에 머물렀다.
"여보. 오늘 어떻게 할 거야?"
"오늘은 힘들 것 같아. 너무 힘들다"
"그래. 다음에 가자"
나도 뭐 별로 급한 것도 아니었다.
정신없이 퇴근 이후의 삶(밥 먹이기, 놀기, 씻기기 등)에 열중하고 있는데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아내랑 나는 같은 공간 안에 있었지만 보안유지를 위해 그런 것 같다)
[여보. 이케아 혼자 가보고 올래?]
[왜?]
[그냥 애들하고 가면 어차피 정신없어서 차분히 못 보니까]
[여보는 가고 싶은 게 아니었어?]
[나도 가고 싶긴 한데. 애들이랑 같이 가는 거 기다리다가는 시간이 계속 갈 것 같아서]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소윤이가 어젯밤 엄마, 아빠 옆에 눕지 말고 바닥으로 내려가라는 아내와 나의 말에 엄마, 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는가 봐 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낮에 아내에게 했다길래 자려고 누운 소윤이에게 그건 아니라고 설명하고(사실 소윤이도 알고 있긴 했다) 풍부한 사랑 표현을 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고 나는 이케아로 향했다. 혼자 가면 무슨 재미인가 싶기도 하고 약간 귀찮기도 해서 망설였는데, 우와. 대박. 너무 여유롭고 좋았다. 평일 밤이라 사람도 없었고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소윤이, 시윤이가 있다면 그곳이 남대문 시장통이었을 텐데 홀로 카트를 밀며 여유롭게 구경하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했다. 미리 봐 둔 의자와 책상 위에 놓을 스탠드, 아내가 부탁한 커튼봉, 충동적으로 고른 미니 탁상시계를 구매했다.
짧았지만 여유와 재미가 가득했던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바로 의자부터 조립했다. 원래 이런 가구류 조립하고 그런 거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은 재밌게 했다. 내 방도 아니고 그저 내 공간, 아니 공간도 과하다. 그냥 뭐랄까 두 팔로 휘저으면 안에 들어올 만큼 코딱지만 한 내 자리(?) 생기는 건데 그것도 좋다고 신나서 의자를 조립하는 나 자신이 조금 처량해 보였다. 아내는 내가 퇴근하자마자
"나 오늘 설거지 안 할래. 여보가 해 줘"
라고 부탁했었다.
"여보. 또 알지?"
안타깝게도 알고 말았다. 몰랐어야 하는데.
곳곳에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도 버려 달라는 아내의 압박이었다. 의자 조립을 마치고 드라마 [남자친구]를 보겠다는 아내에게 의자를 선사했다. 아내가 남자친구를 보는 동안 재활용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설거지도 했다.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의자 때문인가 곧 마련될 내 자리 때문인가.
빨리 저 작은방을 다 치워버리고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아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기대하고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