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1(월)
어제 잠들기 전에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뭐지? 아플 거 같은데?’
역시나. 새벽 내내 잠을 설칠 정도로. 체기에서 시작된 몸살 증세였다(어제 너무 늦게까지 아내랑 야식 먹고 논 게 원인이었을 거다). 오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아내가 애들 밥 먹이는 건 물론이고 크고 작은 일을 다 하는 동안, 나는 방 안에서 요양을 취했다.
잠을 더 자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환자인 건 마찬가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픈 아빠의 모습이 어색한 눈치였다. 예전에 비하면 골골대는 빈도가 높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아빠는 ‘크고 튼튼한’ 사람이다.
아내가 불쌍했다. 쉬는 날 애들 보는 것도 모자라 남편 수발까지 들어야 하다니. 점심에는 나 먹으라고 죽도 따로 끓여줬다. 무의미한 질문이지만 미안한 마음에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무의미한 질문이 돌아왔다.
“그럼.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어”
아프긴 했어도 아무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오후에는 나가려고 했다. 아내는 몸이 안 좋으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쉬는 날인데 집에만 있으라고 하기가 미안했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가까운 곳에라도 잠깐 나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특히 소윤이는 몇 번 물어봤다.
“아빠. 괜찮아여? 안 힘들어여?”
“어 괜찮아”
실제로 아침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푹 쉬면 좋겠지만 못 나갈 정도는 또 아니었다. 막상 나가서 애들이랑 놀다 보면 의외로 힘들지 않을지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아픈 걸 느낄 틈이 없을지도 몰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가기 전까지 집에서 온갖 이불을 바닥에 다 펼쳐 놓고 캠핑을 왔다면서 놀고 있었다.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를 따라다니며 꽤 잘 어울렸다. 나름대로 놀이를 이해하고 있는 건지, 깔아 놓은 이불 안에서만 눕고 앉고 그랬다. 시윤이는 어제처럼 엄청 까불거렸다. 정상이 아닌 몸으로 소파에 누워서 애들 노는 걸 보면서 요양을 취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가 형님(아내 오빠)네가 오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세 녀석이 방에서 놀고 있을 때 형님네가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인터폰으로 삼촌과 숙모라는 걸 확인하고는 반갑게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형님네가 오고 나서 서윤이를 재웠다. 이미 잘 시간이 한참 지났을 때라서 그랬는지 ‘자러 가자’는 나의 말에 순순히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눕혔을 때도 바로 잘 준비(손가락 빨기)를 시작했다. 몇 번 나에게 장난을 걸긴 했지만 금방 잠들었다. 자러 들어오기 전에 거실에 앉아 있을 때도 꼭 내 무릎을 찾아서 앉았다. 다소 어색한 누군가가 방문했을 때 주로 나타나는 ‘안전한 아빠 찾기’ 현상이랄까. 이때의 오묘한 뿌듯함이란.
서윤이를 재우고 나온 뒤에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다. 삼촌과 숙모가 왔으니 원래 가기로 했던 가까운 공원 대신 놀이터에 나가는 걸로 합의를 봤다(합의가 아니라 통보를 포함한 설득에 가까웠지만). 형님과 내가 함께 나갔다. 날씨가 엄청 좋았다. 약간 으슬으슬한 기운이 있어서, 볕이 강한 양지에 있을 때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위아래로 긴 옷을 입었는데 볕이 드는 곳에 있을 때는 땀이 삐질삐질 났다. 땀을 좀 흘리면 몸이 더 빨리 호전될 것 같아서 땀 흘리는 걸 즐겼다.
아무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니어도 계속 애들 따라다니면서 놀아 줄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곳에 앉아서 아이들을 지켜봤다. 대신 형님이 아이들 가까이 머물렀다. 덕분에 아이들도 굳이 아빠를 찾지 않았다. 요즘에는 놀이터에 나와도 별로 재미를 못 느낄 때가 많은 소윤이도 오늘은 의외로 꽤 오랫동안 잘 놀았다. 삼촌이 있어서 그랬나.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에는, 잠에서 깬 서윤이를 데리고 아내와 (아이들) 외숙모도 나왔다. 서윤이도 유모차에서 내렸다. 평소 같았으면, 더군다나 몸이 정상이 아닌 오늘 같은 날은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서윤이의 보호자가 많았다.
서윤이랑 비슷해 보이는 남자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의 몸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뒤에 선 부모들이 아이의 언어를 대신 번역해서 송출했다.
“00야. 인사해 봐. 아이 예쁘다 해야지”
뭐 이런 식이다. 그 남자아이의 부모도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서윤이에게 얘기했다.
“형 하는 거 볼래? 형 타는 거 볼래?”
아내와 나는 눈을 맞추며 무음의 웃음을 나눴다. 익숙한 일이었다. 형 취급, 오빠 취급, 남동생 취급받는 건. 나는 못 들었는데 그러고 나서 그분이 다시 얘기했다고 했다.
“아….오빤가?”
내가 보기에도 아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가끔은 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부모의 눈인가 보다. 열에 아홉은 의심 없이 아들로 취급받는다. 분발하자. 서윤이의 모발아.
형님네는 가고 우리는 장보기를 명분으로 삼아 조금 더 밖에 있다가 들어왔다. 몸 상태는 비슷했다. 뭔가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아내는 밖에서 뭐든 포장해서 가자고 했지만 그냥 ‘뜨근한 국물’이면 됐기 때문에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쟁여뒀던 즉석 설렁탕을 먹기로 했다.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거실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서 잠들었다. 하루 종일 틈만 나면 잤는데 계속 졸렸다.
아내는 여전히 괜찮다고 했지만 해가 지는 만큼 아내의 체력도 소진되는 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아내가 했다. 뭐가 됐든. 밥도 씻기는 것도.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얘기했다.
“여보.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설거지 하지 마요”
느낌이 왔나 보다. 이런 게 부부인가. 아내의 간곡한 호소가 있었지만 내 상황에서 건네는 최소한이자 최선의 도움이었다. 하루 종일 그랬던 것처럼 겨우겨우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힘은 있었고. 아내가
“여보. 설거지 하는 거 아니지?”
라며 카톡을 보냈다. 들릴까 봐 일부러 베란다 문도 닫고 했는데. 너무 조용하니 다 들렸나 보다. 설거지를 마치고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하고, 샤워하고 나와서는 핫초코에 커피믹스를 타서 마셨다. 단 게 엄청 먹고 싶었다.
“여보. 하루 종일 너무 고생했네”
“고생은 무슨. 괜찮다니까. 여보는 좀 어때?”
“낫는 느낌이야. 약 먹고 자면 괜찮아질 거 같아”
“내일은 괜찮아야 할 텐데”
자기 전에 쌍화탕과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나도 나지만 마지막 휴일에 체력을 비축해도 모자랄 판에 내일 쓸 체력까지 당겨 쓴 것 같은 아내가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