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2(화)
예상했던 대로 몸은 많이 좋아졌다. 80% 이상 회복됐다고 느낄 만큼. 아내도 아침부터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정작 가장 상태 확인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내였을 텐데.
점심 먹고 오후가 되니 다시 몸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시 나빠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푹 쉬지 못해 마지막 남은 병균이 발악을 하는 느낌이었다. 퇴근하는 길에 약국에 들러서 약을 지을까 하다가 하루만 더 지나면 말끔히 나을 것 같아서 굳이 들르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겼다. 같은 층에 여섯 집이 있지만 냄새의 근원이 우리 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느 때처럼 세 녀석이 강아지처럼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퇴근하는 아빠의 품을 갈구했다.
“아빠. 오늘 저녁 뭐게여?”
“글쎄?”
“한 번 맞춰 봐여. 냄새로”
“음, 부대찌개?”
“땡”
“그럼 뭔데?”
“어묵탕이에여”
그러고 보니 아이들 옷이 외출복이었다. 아마도 장을 보러 나갔다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아내는 저녁 준비에 열심이었다. 아내의 얼굴과 몸짓의 민첩성을 살피며 아내의 상태를 가늠했다. 당연히 힘들어 보였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는지 뜨끈한 국물이 아주 잘 넘어갔다. 고개를 박고 연달아 숟가락질을 하는 날 보며 시윤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쉴 틈 없이 계속 저렇게 드시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피곤해 보였지만 기분도 매우 좋아 보였다. 밥을 먹으면 씻어야 하고 씻으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잠자리를 정리해야 하고 잠자리를 정리했으면 책을 골라야 하고. 자기들이 알아서 다음 순서를 밟을 때도 많지만 여전히 아내나 내가 장면의 전환을 이끌어야 할 때도 많다. 아내는 오늘도 힘겨운 목소리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수시로 다음 행보를 상기시키고 행동을 종용했다.
“얘들아, 이제 좀 얼른 하자. 엄마도 이제 너무 힘들다”
아내의 진솔한 토로였다. 사실 나는 흠칫 놀랐다. 아내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지쳐 있었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에게 들어 보니 오전에 아이들과 공부를 할 때부터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반응이 별로였다고 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별로일 때, 아내가 좀 괜찮으면 그러려니 하면서 긴 호흡으로 잘 넘기기도 하지만 아내도 마찬가지로 별로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은 후자였다. 그걸 시작으로 여러 가지 일이 사사건건 아내의 마음을 자극했다고 했다.
어제의 정신적, 육체적 소진도 분명 한몫을 했을 거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는 단골 제과점에서 산 쿠키를 꺼냈다. 냉장고에 넣어 둔 아이스 라떼도 꺼냈다. 밀가루와 카페인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는다. 적어도 아내에게는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