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3(수)
오랜만에 형님(아내 오빠)네가 집에 오기로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모이는 비밀 회동이었다. 아내의 친구가 연어를 보냈는데 그걸 좀 나눠 줄까 어쩔까 하다가 집에서 모이기로 한 거다.
“애들을 부지런히 먹여서 재워야겠네”
아내는 진작부터 은밀한 계획을 세웠다. 철저한 보안 유지가 생명이었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상관은 없긴 했다. 다만 ‘삼촌과 숙모가 오기로 했지만 너희는 자야 한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할까 봐 차라리 비밀에 부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퇴근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저녁은 연어 솥밥이었다. 옷을 보니 어제 잘 때 입었던 내복 그대로였다. 하루 종일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그걸 생각하면 불쌍했는데 세 녀석 앞에 놓인 연어 솥밥을 보니 하나도 안 불쌍했다.
“와, 얘들아. 너네 진짜 행복한 거야. 알아? 너네처럼 이렇게 솥밥 자주 먹는 애들이 없을걸?”
“왜여?”
“음, 그냥 솥밥을 어디서나 흔하게 먹지는 않아. 번거롭기도 하고. 너네 친구들 중에 솥밥 자주 먹는 것 같은 애 없지?”
“네. 근데 왜 엄마는 이렇게 자주 해여?”
“그만큼 엄마가 너네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거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해 준 사람의 보람이 차고 넘치게 잘 먹었다. 예전에 연어 덮밥으로 줬을 때는 생연어 맛이 영 어색했는지 잘 안 먹더니, 익힌 연어는 입에 아주 잘 맞았나 보다.
“엄마. 연어는 비싼가?”
“연어? 글쎄. 싸지는 않지”
“아, 아쉽다. 맨날 연어 솥밥 먹으면 좋은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고수까지 넣어서 먹었다. 재료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자녀를 보는 기쁨이 무척 크다. 나는 그렇다. 먹고 입고 거하는 것에 감사해야 다른 일에도 감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양질의 솥밥을 먹은 아이들은 빠르게 잘 준비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형님네는 이미 도착했지만 올라오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잠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어른들이 먹을 연어 덮밥을 준비하려고 할 때, 아내도 애들을 재우고 나왔다. 방 문을 열고 나오지 않고 베란다를 통해서 나왔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소윤이는 아직 안 잔다고 했다. 덕분에 형님네의 입성이 조금 더 늦춰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형님네도 들어왔고, 어른들의 비밀스러운 연어 덮밥 밀회가 시작됐다. 중간에 베란다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기 때문에 눈치 빠른 소윤이는 삼촌과 숙모가 왔다는 걸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일단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없었다.
회동은 꽤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형님네가 가고 아내와 나도 금방 자러 들어갔다. 오늘도 시윤이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난 시윤이가 ‘엄마 옆’을 찾아 올라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침대가 편해여어”
이게 시윤이의 이유였다. 소윤이도 그랬다. 바닥보다 침대가 편하다고 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시윤이는 내가 옆에 누웠을 때도 바닥(엄마 옆)으로 내려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시윤이는 아내와 내가 들어갔을 때 잠에서 살짝 깼다. 아내와 나는 이때다 싶어서 조금 괴롭혔다(?). 간지럼도 태우고 뽀뽀도 퍼붓고. 시윤이는 부스스한 눈으로 웃으며 아내와 나의 장난을 받았다. 소윤이에 비하면 훨씬 애교가 많은 시윤이는 이런 잠결에도 특유의 애교 미소를 내뿜는다.
아내는 피곤했는지 금방 잠들었다. 나는 잠이 안 와서 휴대폰을 좀 보고 있었다. 다들 조용해서 나만 깨어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
“엄마하. 엄마하”
시윤이였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봤다.
“엄마하. 엄마하”
시윤이는 몇 번 더 엄마를 불렀다. 잠든 엄마가 대답이 없자 시윤이는 다시 속삭였다.
“엄마하. 저허 손가락 빨아도 돼여허?”
아, 이 정직하고 순수한 영혼이여. 잠든 아내를 대신해 내가 시윤이의 상대가 되었다.
“시윤아. 손가락 빨아도 돼”
“네헤”
시윤이는 얼마나 떳떳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손가락을 빨며 행복하게 잠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