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4(목)
아내가 어제 커피를 한 잔도 못 마셨다면서 자기 전에 무척 아쉬워했다. 아쉬워했다기보다는 마시고 싶었지만 너무 시간이 늦어서 내일을 기약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마 아내는 오늘 밖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면 분명히 커피를 사서 마셨을 거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배달 앱을 켰다. 아내에게 커피를 배달해 주려고 봤는데 괜찮은 카페는 아직 다 문을 열기 전이었다. 평소에 아내가 그나마 괜찮다고 했던 카페 중에서는 10시에 문을 여는 카페가 가장 빨랐다. 10시가 되자마자 주문을 했다. 어차피 커피 한 잔은 배달이 안 되니 휘낭시에 두 개도 함께 보냈다. 하나는 애들 먹을 거, 하나는 아내 먹을 거.
비대면 주문이라 문 앞에 놓고 가기 때문에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야 했다.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 혹시라도 한참 있다 발견하면 애써 주문한 아이스 라떼의 얼음이 다 녹아 버릴 테니 꼭 말해야 했다. 전화를 했는데 온라인 모임 중이라 받지 못한다며 메시지가 왔다. 아내에게 다시 한번 주문 내역을 캡처해서 보냈다.
“헐!!!!! 이거 뭐임????? 맙소사 맙소사ㅠㅠ 기도 모임에 집중할 수가 없네”
아내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역시 난 커피 기술자다. 커피 한 잔으로 아내의 마음을 사는 기술자.
시윤이는 겉포장을 보더니
“아빠는 엄마가 힘들 때 왜 이런 걸 보내 주시지?”
라고 말하고는
“이상하다? 왠지 아빠가 샌드위치도 같이 보내 주실 거 같은데?”
라며 헛된 기대를 품었다고 했다. 저번에 샌드위치 보내 줬던 기억이 아직 남았나 보다. 서윤이의 눈을 피해 휘낭시에를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퇴근 시간 무렵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러 나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놀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을 집에서 먹을 수 없어요”
라고, 아내가 외식을 선언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로 놀이터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내도 아이들 노는 구조물 위에 올라가서 허리를 숙이고 서윤이를 쫓아다녔다.
저녁은 돈까스를 먹었는데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세는 대단했다. 점심에 뭘 먹었냐고 물어봤더니 밥 대신 씨리얼을 먹었다고 했다. 배가 고플 만했다. 아내가 주문을 하면서
“너무 많으려나?”
라고 물어봤고 나도
“뭐 남으면 싸 가면 되지”
라고 대답했는데, 남기는커녕 사장님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을 절감하는데 크게 한몫을 하고 왔다.
요즘 우리 집에서 시윤이가 제일 까부는데, 밉지 않게 잘 까분다. 물론 이건 아내는 동의하지 않는 나만의 관찰일지도 모른다. 시윤이 윗옷이 엄청 짧길래 아내에게 왜 그런지 물어봤는데 모르고 입혔는데 나중에 발견해서 그냥 그러고 나왔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진짜 유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롭탑처럼 배꼽이 슬쩍슬쩍 보였다. 시윤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뛰어다녔다. 엄청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 셋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