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0(수)
아내는 요즘 당근 거래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오늘도 휴대폰 케이블 하나 사러 구파발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게 오늘의 유일한 외출이었으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하루 종일 힘들었다. 왼쪽 날개뼈 있는 곳이 아침부터 뻐근하더니 뭔가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머리까지 아팠다. 얼마 전에 아내도 나와 똑같은 통증을 호소했던 적이 있었다. 아내는 병원까지 다녀왔던 것 같다. 하루 종일 통증에 시달리며 ‘그때 아내도 진짜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퇴근하고 나서 아내에게 통증을 알렸다. 겪어본 통증이니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 아내는, 아주 깊이 공감하고 이해했다. 애나 어른이나 감정을 거절당했을 때, 마음이 상하는 거다. 반대로 얘기하면 감정만 잘 받아 줘도 만 냥 빚을 갚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고.
서윤이는 혼자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하니 미리 앉혀 놓았다고 했다. 아마 빨리 밥 달라고 난리였겠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 하루의 일을 이것저것 얘기했다. 그중에 낮에 서윤이 밥을 먹였다는 얘기도 했는데, 소윤이가 고개를 저으면서
“아빠. 이제 두 번 다시는 서윤이 밥 못 먹이겠어여”
라고 하소연했다. 무슨 일인가 들어 보니, 점심에 서윤이에게 주먹밥을 먹였는데 그걸 소윤이와 시윤이가 만들어 준 거다. 아내가 양푼 그릇에 밥과 재료를 담아 줬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장갑을 끼고 동그랗게 말아서 서윤이 입에 하나씩 넣어 줬다. 그게 그렇게 힘들었다고 토로한 거다. 아내가 찍어 놓은 동영상을 보니 더 생생한 소윤이와 시윤이의 반응이 담겨 있었다. 주먹밥 하나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좀 깨달았을 거다.
아이가 셋이 되니 좋은 게 이런 거다. 엄마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은 결코 놀이가 아니라는 걸 여러 기회를 통해 알게 된다. 처음에는 ‘설거지 놀이’로 시작하지만 ‘전투 설거지’를 배우게 되고, ‘밥 먹이기 놀이’로 시작하지만 ‘극한 먹이기’를 배우게 되고, ‘빨래 개기 놀이’로 시작하지만 ‘빨래 지옥’을 배우게 된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가사 노동력 착취 수준의 강도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다. 가족의 일원으로 땀과 수고를 보태는 것은 책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충분히 할 수 있고, 해냈을 때의 뿌듯함(마치 엄마와 아빠에게 엄청 큰 도움을 준 것 같은. 실제로 그럴 때가 많고)을 느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의 과거가 떠오른다. (내) 엄마가 이걸 보면 코웃음 아니 비웃음을 지으실지도 모른다.
아내가 나갔다 오면서 사 온 아이스 라떼를 한두 모금 홀짝거렸는데 엄청 맛있었다. 평소에 아내가 커피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한 모금 한 모금을 소중히 마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마시지는 않았다. 아내가 얼른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조금이라도 커피의 맛이 좋을 때 나머지 커피를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무지하게 늦게 나왔다.
아내는 애들 재우고 나와서 내 옆에 앉아 한참 유튜브를 봤다.
“여보. 거기가 늑간인가 봐. 늑간 통증이래”
라면서 내 아픈 부위와 관련된 영상을 한참 봤다. 왜 아픈 건지, 어떻게 마사지를 해야 하는지.
“여보. 내가 보고 마사지 해 줄게”
너무 고마웠지만 왠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좋은 전문 지식과 정통 마사지법을 익힌다고 해도 아내의 ‘안마 가능 시간’이 매우 짧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단기 속성 학습을 마치고는 나에게 호기롭게 엎드려 보라고 말했다. 잠깐이어도 타인의 손을 통해 안마를 받는 건 언제나 시원하다. 심지어 소윤이와 시윤이가 해 주는 안마조차도.
그나마 오늘은 바닥에 엎드린 나를 누르는 식의 마사지라 조금 더 오래 지속됐다. 한 5분? 그래도 아내는 여전히 깊은 공감을 했다. 얼마나 아프냐, 얼마나 힘들겠냐, 내일도 힘들겠다 등등. 만약에 아내가 들은 체 만 체 했으면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서윤이에게 뭔가 욕구불만(?)이 있다. 한참 아빠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하더니 요즘에는 나에게 붙어 있는 시간이 너무 잠깐이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내 손을 붙잡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서윤이를 잡고 막 안고 뽀뽀하고 그러고 싶은데 이 녀석이 그걸 받아주지를 않는다. 매우 유감이다.
자려고 아내와 방에 들어갔는데 서윤이가 우리 소리에 깨서 눈을 떴다.
“서윤아. 아빠 옆으로 올래?”
“이잉”
“그럼 엄마 옆으로 올래?”
“응”
어차피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자는 거라 엄마 옆이 아빠 옆이고 아빠 옆이 엄마 옆이거든?
사이에 누운 서윤이를 막 괴롭혔다. 손 잡고, 발 잡고, 뽀뽀하고, 볼 만지고. 당연히 서윤이는 손 잡으면 손 빼고, 발 잡으면 발 빼고, 볼 만지면 손으로 막고 그랬다. 오히려 뽀뽀는 순순히 응했다.
이래서 아내가 맨날 나한테
“여보는 좀 (콩깍지가) 심해. 서윤이한테는 좀 심한 거 같아”
라고 얘기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