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축구의 무게

21.10.23(토)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어나서 소윤이에게 약간의 슬픈 소식을 전했다.


“소윤아. 혹시 엄마가 오늘 아빠 축구하러 가는 거 얘기해 주셨어?”

“아니여? 오늘 아빠 축구하러 가여?”

“어”

“언제여? 지금 바로여?”

“아니. 그건 아니고 이따가 오후에. 점심 먹고 나서”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돼여?”

“아 그건 안 될 거 같아. 날씨가 너무 추워서”

“같이 가고 싶은데”


잠시 후 시윤이에게도 같은 내용을 전했고, 시윤이의 반응도 비슷했다. 같이 가고 싶은데 같이 가면 안 되냐고. 소윤이도 시윤이도 몇 번이나 물어봤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날씨가 따뜻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가 지기 시작하면 추워질 것 같았고, 소윤이와 시윤이 말고는 아이가 아무도 오지 않을 게 분명해서 막상 가도 심심할 것 같았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도 있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너무 빠듯할 것 같았고. 토요일에 축구를 하러 가는 건 아빠가 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괜히 더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이었다(그렇게 미안하면 안 가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은 사절할 생각이다).


오전에는 우노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소소한 걸 하면서 놀았다. 오후에 축구하러 나간다는 생각 혹은 미안함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그전에라도 애들을 데리고 밖에 나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때를 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점심에 짜장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다. 짜장 라면 사는 걸 핑계 삼아서 모두 집에서 나왔다.


간단하게 장을 보고 오는데 붕어빵 가게가 눈에 띄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오랜만에 보여서 반가운 마음도 한몫했는지 큰 고민 없이


“소윤아, 시윤아. 우리 붕어빵 먹자”


라고 얘기했다.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붕어빵 한 봉지 사 먹는데 번호표까지 받아서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이나마 뛰며 놀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외출을 해도 맨날 유모차에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게 태반이었던 서윤이도 오늘은 땅을 밟았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낮은 턱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즐거워했다. 소윤이 때도, 시윤이 때도 그랬지만 계단(혹은 계단 비슷한 것)만 보면 올라가려고 하니까 유모차에서 내려 주기가 겁이 난다.


집에 돌아와서 짜장 라면을 거하게 끓여 먹었다. 생각한 것만큼 소윤이와 시윤이가 많이 먹지 않아서 나만 배가 부르게 먹었다. 아내도 배부르게 먹었다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하찮은 양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때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축구하는 데 같이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만 아니었으면 데리고 갔을 법도 했다. 그만큼 날씨가 따뜻하고 좋았다.


축구하러 나올 때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나왔다. 아내가 단골 쿠키 가게에 간다고 해서 거기 내려 주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올 때는 버스를 탄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버스를 타고 싶어 하니까 그러기도 했고 축구하러 가야 하는 남편을 굳이 또 집까지 다시 데리고(?) 가기가 미안하니까 그런 것도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쿠기를 산 아내와 아이들을 근처에 있는 단골 카페에 내려줬다. 이 과정에서 아내와 아주 작은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축구하러 가는 마당에 뭐 잘났다고 뿔을 내기를 뿔을 내냐는 생각이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지니 선명해졌다. 축구장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전화해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놀이터라고 했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 시간을 맞추느라 끝까지 있지 않고 조금 일찍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밥을 먹고 있었는데 모든 게 예사롭지 않았다. 아내의 표정이나 기운,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운, 집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기운. 유일하게 예사로운 건 강서윤 뿐이었다.


“압빠아아아아아악. 압빠아아아아아아아아”


소윤이는 밥을 다 먹고 내려왔고 시윤이는 아직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식사를 마친 소윤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당연히 소윤이가 뭔가를 잘못해서 데리고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시윤아. 누나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여. 저는 잘 모르겠어여. 딱 생각 나는 건 별로 없어여”

“그래?”


급히 온라인 모임을 준비하고 시작했다. 온라인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시윤이가 나에게 얘기했다.


“아빠. 저는 왠지 잠들 거 같아여”


시윤이는 믿음대로 잠들었다. 그 졸리고 피곤할 시간에 한 시간이 넘도록 가만히 앉아서 나름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게 시윤이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시윤이가 거의 잠들려고 하길래 아내가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씻겼다. 여차하면 방에 눕혀서 재우려고 했다. 그래도 씻고 나오니 정신이 좀 생겼는지 끝날 때까지 자지는 않았다.


“여보. 시윤이 아까 토했어”

“진짜? 씻을 때?”


열이 나거나 아픈 느낌은 아니었다. 저녁을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그런가 싶었다. 아내는 뜬금없이


“시윤이는 아무래도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아”


라고 얘기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까 저녁 먹을 때 아내가 너무 힘들고 시간이 촉박하니까 아이들을 너무 지나치게 채근했다고 했다. 아내 스스로의 평가였다. 그러다 보니 시윤이가 너무 급하게,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은 게 아닌가 싶다면서. 소윤이를 방에 데리고 들어갔던 것도 소윤이에게 사과하려고 그런 거라고 했다. 시윤이에게는 시간이 없어서 미처 못하고 모임이 끝나고 나서 사과를 했다. 화와 짜증 같은 감정 배설을 최대한 안 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해 버렸다면 주저하지 않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부모가 참된 부모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만 잘 해도 다른 웬만한 흠결은 상쇄하지 않을까 싶다.


시윤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유독 지치고 힘이 없고 느렸다.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싶어서 시윤이에게 다양하게 많이 물어 보기도 하고 열이 나는지 확인도 했는데 그런 징후는 없었다. 너무 졸린 게 가장 확실해 보이는 원인이었다.


서윤이는 자기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모임에 집중하는 동안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엄청 기분이 좋았다. 마치 노래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말을 흥얼거렸다(실제로 음정이 존재하는 읊조림이었다). 서윤이 때문에 아내와 나의 모임 집중도도 떨어졌다. 자꾸 서윤이 보고 웃느라.


아내는 애들 재우고 나오고 나서는 좀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미안했다. 역시 토요일 축구는 가벼운 일탈이 아니다. 그래도 다음 주에는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축구를 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벼운 마음도 있다. 뭔가 빚을 털어내는 느낌이라. 그리고 혹시 다음 주에는 주일에 축구를 할지도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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