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도 좋고 여유도 좋고

21.10.24(주일)

by 어깨아빠

아침에 나름 부지런히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차에 탔을 때 시간이 꽤 늦어서 당황스러웠다. 애들 아침도 밥이 아니라 삶은 계란과 미숫가루로 대신했는데. 일어난 시간 자체가 좀 늦었나 보다.


서윤이는 지난주처럼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서 손가락 빨다가 알아서 잠들었다. 마스크를 씌워서 갔는데 자기가 혼자 벗고 손가락을 빨았다. 아내와 나에게는 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기쁨이고 즐거움이고 전율하게 만드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티는 안 내고 우리 둘만 주고받는다. 어쨌든 효녀 서윤이 덕분에 2주 연속으로 아주 편하게(?)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갔는데 아직 어린이 예배는 끝나기 전이었다. 여러 명의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한 명, 두 명 나오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오지 않았다. 먼저 나오는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걸 보고 대충 짐작은 했다. 뭔가 만들기를 한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시윤이는 진작에 끝내고 누나를 기다린 것 같았고, 소윤이는 시윤이가 옷을 입고 준비를 마친 와중에도 여전히 작품 활동(?)에 집중했다. 선생님이 소윤이의 겉옷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이럴 때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건지 고민스럽다. 적당히 눈치를 보고 다 못 끝냈어도 나오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괜찮으니 끝까지 하라고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지. 소윤이가 눈치 없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눈치 보는 사람이 되는 건 또 싫은데. 너무 이중적인 바람인가.


예배를 마치고 지난주에 가지 못했던 단골 국수 가게에 갔다. 찬양과 설교를 들으며 푹 자고 일어난 서윤이는 기분이 좋았다. 밥과 돈까스를 서윤이 그릇에 덜어 주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알아서 잘 먹었다. 많이 흘리지도 않고. 오히려 시윤이가 먹는 게 영 지지부진했다. 대낮인데도 엄청 피곤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어제 토한 것도 이상하긴 했다. 뭔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는데 그렇다고 콕 집어서 어디가 안 좋다고 얘기할 만한 건 또 아니었고. 아무튼 이상했다.


어제 축구하느라 애들을 외면(?)한 게 미안해서 오늘은 점심 먹고 바로 공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 바쁜 아침에 자전거까지 챙겨서 트렁크에 꾸역꾸역 실었다. 어느 공원으로 갈지 고민하는데 형님(아내 오빠)네가 우리 동네 카페에 온다고 했다. 같이 볼 거냐고 아내에게 물었다고 하길래 그렇게 하자고 했다. 카페에 오는 김에 조카를 보는 건지 조카를 보러 카페에 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점심 먹고 시간이 좀 남아서 동네에 있는 숲길을 좀 걷기로 했다.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쌀쌀한 듯 따뜻했다. 그늘은 서늘하고 볕은 따뜻하고. 길이 좀 험해서 유모차를 끌기가 쉽지 않았지만 앉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아기띠를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내리겠다고 떼를 쓸까 봐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소윤이, 시윤이와 숲길을 걷는 즐거움, 나무와 꽃의 신비를 함께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자연을 즐기길 바라는 시간에 지루하다고 하지 않아서 좋다.


서윤이는 오늘도 아들이라고 오해 아니 확신에 찬 판결을 받았다. 첫 번째 판결은 식당에서 이뤄졌다. 소윤이가 서윤이에게 살뜰히 밥을 떠 먹여 주는 걸 보고 옆에 계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누나가 동생을 엄청 잘 챙기네”


두 번째 판결은 숲길에서 벌어졌다. 우리가 차에서 내릴 때 옆에서 할머니 세 분도 차에서 내리셨다. 처음에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애국자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차례로 보시고는 ‘너무 귀엽다’, ‘너무 예쁘다’라고 칭찬을 건네시고는 말을 이으셨다.


“아들 둘에 딸 하나죠? 얘도 아들 맞죠?”

“아, 딸이에요”

“그래요?”


서윤아. 이것도 다 추억이야. 니가 언제 성별을 바꿔서 살아보겠니.


형님네와 만나기로 한 카페도 바로 근처였다. 야외에 앉을 자리가 있는 카페인데 사람이 엄청 많아서 깜짝 놀랐다. 집에서 가깝지만 실내에서 소리가 너무 울려서 그렇게 좋아하는 카페는 아니다. 나만 안 좋아하고 나름 인기가 좋은 카페인가 보다. 우리도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코를 박고 크로플을 먹어 치운 뒤에 주변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도토리도 줍고 강아지풀도 뜯고. 엄마나 아빠나 삼촌이나 숙모를 대동하지 않고 둘이 잘 놀았다.


서윤이에게는 설탕이 함유된 과자를 주며 유모차 착석 시간을 지속시켰다. 아내 말로는 서윤이가 먹었던 과자 중에 가장 달 거라고 했다. 과자 한 봉지를 다 비웠다. 유모차에서 내려 줬는데도 돌아다니지 않고 내 옆에 딱 붙어서 과자를 받아먹었다.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꼭 지켜야 하는 일정이 하나 남아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어제부터 ‘내일은 꼭 자전거를 타자’고 했다. 나도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삼촌과 숙모를 만났으니 그걸로 대체된 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굳은 약속이었다. 대신 가기로 했던 공원에 가지 않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호소(?)에 삼촌과 숙모도 동행했다. 형님네는 잠깐 있다가 갔다.


놀이터에서의 시간이 한층 더 수고스러워졌다. 서윤이의 능력치가 상승하면서 활동 범위가 넓어졌고,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안 되는 시기라 딱 붙어서 쫓아다녀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건 놓치면 안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꽤 오래 찬바람을 잔잔하게 맞아서인지, 집에 돌아오니 은근히 노곤했다. 아이들은 피곤하지도 않은지 집에 오자마자 자석 블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꺼내줬더니 서윤이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자기 나름대로 가지고 놀았다. 오빠가 자기 블록을 가지고 가려고 하면


“아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앙칼지게 굴었다. 언니에게는 별로 그런 모습을 안 보이는 것 같다. 소윤이가 훨씬 부드럽게 서윤이를 잘 다루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시윤이는 그냥 막 뺏어올 때가 많다) 언니를 오빠보다 어른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블록을 하는 동안 난 저녁 준비를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블록을 가지고 노는 틈에 누워서 잠시 눈을 붙였다. 진짜 아주 잠시. 방에 들어가서 누웠으면 조금 더 잤을 텐데, 아마 아내도 오래 안 자려고 그랬을 거다.


저녁은 아이들만 먹었다. 아내와 나는 애들을 재우고 먹기로 했다. 여유롭고 오붓한 시간을 향한 욕구가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있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보낸 ‘바쁨’도 즐거웠지만, 아내와 즐길 ‘여유’도 꼭 있어야 한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내가 준비를 했다. 좀 늦어서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저녁과 함께 마음껏 수다를 곁들일 수 있는 주말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여보.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


맞아, 여보. 월요일은 언제나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지.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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