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5(월)
밤새 끔찍한 꿈을 꿨다.
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갔는데 서윤이만 두고 혼자 돌아왔다. 서윤이를 두고 온 걸 깨닫자마자 호흡이 멎을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서 아까 그곳에 도착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윤이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몇 칸씩 휙휙 건너뛰며 지하 2층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서윤이는 청색 원피스를 입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서윤아 아빠가 미안해’를 반복해서 외치며 서윤이를 꽉 끌어안았다.
여기서 깼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알람이 울리기 20분 전이었다.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했다. 요즘 잠을 푹 못 자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느낌’이다.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오늘은 서윤이 찾으러 가느라 더더욱 피곤했다.
아내와 아침에 통화하면서 ‘오늘은 별일 없어’라고 물었더니 ‘별일 있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냐고 했더니 ‘홈스쿨 달려야 해’라고 했다. 주말에 열심히 놀았으니 밀린(?)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내는 한 달에 월급을 두 번 받는다. 나의 대표님이 주시는 월급과 나라에서 주는 수당, 이렇게 두 번이다. 나라에서 주는 수당이 나오는 날이 오늘이다. 아내는 밀렸던 정산(내 용돈에서 빌려서 쓴 ‘생활비 계정’의 비용을 다시 돌려주는 일)을 완료했다고 알려줬다. 환한 웃음과 함께 페이스 아이디를 해제한 지 5초 만에 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뭐지. 왜 이렇게 조금이지. 제대로 계산한 거 맞나’
몇 번을 확인했지만 누락되거나 모자란 건 없었다. 대체로 이렇다. 아내가 틀리는 일은 매우 드물다. 10월에는 아내의 생일도 있고 그래서 지출이 좀 많았나 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는데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내 용돈 계좌를 들여다보는데 하나가 눈에 밟혔다.
‘00김치찌개’
옳다구나. 그럼 그렇지. 이걸 빼먹었구만. 체통을 지키는 척하며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00는 정산 된 건가?”
외통수를 던진 장기꾼처럼 당당했다. 바로 아내의 답장이 왔다.
“00?ㅁㅁ오빠 만났을 때?”
하아. 그랬구나. 아내와 먹은 게 아니었구나. 친구와 먹은 거였구나. 그랬구나.
퇴근해서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댔다.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잠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전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아빠 도착했어여?”
“어? 어어. 도착했지”
“근데 왜 안 내려여?”
“어? 아빠 보고 있어? 아, 아빠 뭐 좀 할 게 있어서. 이제 내릴 거야”
어떻게 알고 딱 맞춰서 베란다에 나오는 걸까. 현관문을 열 때까지 통화를 끊지 않고 소윤이와 대화를 했다.
시윤이가 걱정스러웠다. 오늘 저녁에도 너무 피곤해 보였다. 일찍 일어나고 낮잠은 안 자니까 그 시간쯤이면 피곤한 게 당연하지만, 뭔가 평소보다 너무 심한 느낌이었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라 아내도 비슷하게 느꼈다. 저녁 먹는 것도 영 시원찮고. 낮에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고 하니 정말 그저 피곤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고 나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올까 고민을 했다. 10시 영업제한만 아니었어도 나갔다 왔을 텐데 10시까지 있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럼 나가서 뛰고 오기라도 할까 싶었는데 이것도 접었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나 얼른 자연드림에 좀 갔다 올게. 물도 없고 내일 애들 먹일 것도 없고 해서”
“그래”
아내가 나가면서 얘기했다.
“여보. 오늘은 설거지 진짜 하지 마. 원래 그럴 생각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진짜 하지 마”
“알았어”
오늘은 아내 말을 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