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짐은 거의 축구 선수

21.10.27(수)

by 어깨아빠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아직 마음이 덜 풀렸나 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 송신과 메시지 전송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 듯했다. 아내의 속상하고 억울한 심경을 전하는 메시지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생각해도 여전히 내가 잘못한 일이 분명했다. 아내에게 짧게 답장을 보냈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마음 풀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아침에 나오면서 그 새벽에 축구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퇴근하면 집에 안 들르고 바로 축구하러 갈 생각이었다. 아내에게도 오후쯤 집에 들르지 않고 가겠다고 얘기했다. 애들한테도 잘 말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퇴근하고 부지런히 축구장으로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와 아이들도 밖이라고 했다. 처치홈스쿨 교재를 전달하느라 잠시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소윤이가 말해줬다. 소윤이가 말하는 동안 서윤이는 배경음으로


“아빠아아아아아아악”


을 깔고 있었고, 시윤이는 중간중간 끼어 들어서 하고 싶은 말을 보탰다.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전화를 끊었는데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축구장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였다.


“여보. 애들이 아빠 너무 보고 싶다고 하는데 잠깐 가도 돼요?”

“응. 괜찮아”


잠시 후 아내와 아이들이 축구장에 도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차례로 달려왔고, 뒤늦게 서윤이도 아장아장 걸어왔다(자기 나름대로는 뛰었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축구장 펜스에 달라붙어서 운동장 안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윤이도 신기했는지 나에게 안겨서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손을 뻗었다.


한 5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가서 저녁 맛있게 먹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잘 자”

“네, 아빠. 안녕”

“서윤이도 잘 가”

“네빠아아”


운동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몇 주만 지나도 추워서 벌벌 떨 날씨가 될 게 분명하다. 오랫동안 쉬었으니 마음껏 즐겨야 한다. 오늘은 특히 더 오래하고 싶었다. 한 12시까지 하고 싶었다.


축구를 하고 왔을 때, 아내는 친구들과 줌으로 통화 아니 모임 아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친구들과 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샤워하고 나와서 아내가 사 놓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수다를 마치고 내 옆에 앉더니


“여보는 이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라고 물었다.


“어, 난 괜찮아”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싶은 말은 없어?”

“어, 진짜로 괜찮아. 하고 싶은 말도 없고. 여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도 돼”

“아니야, 나도 이제 괜찮아졌어”


아내의 마음이 진짜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적어도 아내에게는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어제 그 순간(?)부터 계속. 그저 어제 그 말을 괜히 밖으로 냈다는 생각만 했다. 여전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내가 재차 서운한 마음을 얘기하면 진지하게 듣고 진심으로 또 사과하려고 했는데, 아내도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윤이가 낮에 똥을 두 번이나 지렸다고 했다. 요즘 똥 쌀 때 너무 힘들어하더니 그게 싫어서 참다가 그랬는지. 시윤이 말로는 ‘똥이 마렵지도 않았는데 팬티에 묻었다’고 했다. 요즘 너무 피곤해 하고 그러던데 혹시 몸이 좀 안 좋은지 걱정이 됐다. 아내에게 낮에는 이상한 게 없냐고 물어봤는데, 요즘 들어 부쩍 짜증이 늘고 예민해졌다고 했다. 어딘가 또 마음의 구멍이 도드라진 건가. 안쓰러운 우리 둘째.


오늘은 시윤이 옆에 누워서 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