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8(목)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에 다녀왔다고 했다. 잊고 있다가 퇴근하면서 아내와 통화를 할 때 기억이 났다.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아내는 여전히 집에 오는 중이라고 했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거의 바로 모임 시간이라 따로 저녁을 먹을 시간은 없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저녁은 먹고 왔다고 했다.
오는 길에 시윤이와 서윤이는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시윤이는 그저 졸린 상태였지만 서윤이는 계속 울었다. 무조건 엄마만 찾았다. 엄마가 언니, 오빠 씻기느라 화장실 들어가면 왜 자기를 두고 가냐고 울고. 아빠가 안아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면서 울고. 엄마가 나오면 얼른 안아달라고 울고. 아빠가 안아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면서 울고. 싫다고 해도 내가 가서 안고 좀 달랬으면 진정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모임 시간이 임박했을 때라 그럴 수가 없었다.
난 모임에 먼저 참여하고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아내는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시윤이는 여전히 안 자고 있다고 했다. 사실 모임의 주제가 육아와 관련된 거라 비록 아이들하고 시간은 못 보냈지만 내내 아이들 이야기, 부모로서의 성찰과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종의 부모 교육에 가까웠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아내는 장모님이 싸 주신 엄청난 양의 일용할 반찬을 정리도 하고 쉬기도 했고, 난 일기를 썼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따로 저녁은 먹지 않았지만 아내가 사 온 빵을 먹었다. 심리적으로 밥은 너무 거하니까 빵을 먹은 건데 과연 몸에서는 뭘 더 거하게 느낄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자러 들어가기 직전에 아내와 잠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한 갈래는 처치홈스쿨 이야기, 또 한 갈래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 특히 시윤이 이야기. 시윤이가 요즘 부쩍 짜증이 많아졌다는 얘기는 얼마 전에도 들었는데, 오늘은 그 정도가 좀 심했다고 했다. 이게 한순간만 부왁 하고 터뜨리는 게 아니라 틈만 나면 내내 징징거린다고 하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아내는 터지려고 하는 감정을 겨우겨우 막아냈다고 했다.
시윤이가 짜증이 늘고 예민해진 것, 며칠 전에 팬티에 똥을 지린 것, 배가 아픈데 변비 증상으로 똥을 잘 못 싸는 것, 아내가 아이들(대부분 서윤이) 동영상 찍으면 앞에 와서 자기도 찍어 달라고 하는 것, 꿈을 많이 꿔서 자고 나서도 피곤하다고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교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아내에게
“요즘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많이 없는 것 같아여”
라는 얘기도 했다고 했다. 사실 전에 비해 크게 줄거나 부족하지 않다. 이 또한 시윤이의 마음 상태를 보여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시윤이에게 집중해서 ‘의지적으로’ 사랑을 쏟고 표현했더니 눈에 띄게 말랑말랑해져서 아내도 나도 잠시 방심했다. 거기에 하루하루 클수록 ‘어제보다 더 사랑받는 오늘’을 사는 서윤이에게 본능적으로 눈길과 손길이 먼저 흘렀다. 아내도 나도 인정했다. 어쩌면 시윤이가 세 자녀 중에 가장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자녀일지도 모르겠다.
시윤이의 잘못된 태도와 행동에 관해서는 여전히 단호하고 차분하게 가르쳐야 하지만, 사랑을 표현하고 부어주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안 된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바탕이 되려면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해야 한다. 작은 돌 위에 쌓은 큰 돌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사랑이 큰 돌이 되어서 가장 아래에 깔려야 한다. 내일부터는 다시 우리 둘째에게 조금 더 마음과 시간을 쏟기로 했다. 난 일단 퇴근하자마자 자석처럼 서윤이에게 향하는 본능을 좀 억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내가 자러 방에 들어갔는데 고맙게도 시윤이가 살짝 깼다. 소윤이가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있었고 시윤이와 서윤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내와 나는 잠에 취한 시윤이를 사이에 두고 누워서 아닌 밤중의 애정표현을 쏟아부었다. 시윤이는 싫지 않은 듯 엷은 미소로 가만히 받았다.
“아, 오늘은 엄마랑 아빠가 시윤이 옆에서 자야겠다”
그렇게 누워서 한 3분쯤 지났는데 시윤이가 아내에게 속삭였다.
“엄마. 저 침대로 올라가도 돼여?”
“어? 그래. 올라가서 자고 싶으면 올라가서 자. 누나 있는데 괜찮아?”
“네”
그러더니 침대로 올라 가려다가 머뭇거렸다. 아마 아내와 나의 마음을 살피는 듯했다. 자기 때문에 옆에 누웠는데 자기가 쏙 빠지면 엄마나 아빠가 속상해하지는 않을까를 생각한 것 같았다.
“시윤아, 괜찮아. 올라가도 돼”
시윤이는 매트리스 위로 갔다. 그야말로 ‘편한 자리’ 찾아 간 거다. 이런 데서는 또 의외로 미련이 없다. 반대로 소윤이는 이런 거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소윤이는 불편해도 ‘엄마 옆’을 고수하는 성격이고, 시윤이는 아무리 엄마 옆이어도 불편한 건 못 참는 성격이고.
이러니 아내와 내가 교육과 훈련을 멈출 수가 없다. 셋 다 다르고 그때 그때 다르고 날마다 새롭고. 특별히 우리 아이들은 어디 보내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엄마와 아빠의 사정권 안에서 지낸다. 아이들이 뭔가 문제(까지는 아니더라도)가 생겼다면 그건 다 아내와 내가 먹이와 원료를 준 탓일 거다. 그러니 애들을 바꾸고 싶으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어쨌든 시윤이가 자기 발로 떠나갔으니 난 서윤이 손을 잡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