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31(주일)
아내가 없는 일상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오늘 아침이었다. 힘들었다기보다는 피할 구석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변함없이 일찍 일어난 세 녀석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자리에 누워 있긴 했지만, 세 남매는 ‘아빠가 일어난 기운’을 귀신같이 감지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없으니 미룰 수가 없었다. 아침을 차려 주는 것도, 교회 갈 준비를 하는 것도.
역시나 소윤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소윤아. 이거 소윤이 타이즈야?”
“아니여”
“이건?”
“제 건 맞는데 이제 작을걸여”
“아, 그래? 그럼 이건?”
“그것도여”
“소윤아. 시윤이 옷은 어디 있지?”
“원래 거기 보라색 통에 있는데 거기 없으면 그 밑에 있을지도 몰라여. 아니면 건조기에. 이따 제가 찾아볼까여?”
“아빠가 찾아볼게. 얼른 밥 먹어”
“소윤아. 서윤이 옷은 여기 있나?”
“거기도 있고 이쪽에도 있어여”
“서윤이 양말은?”
“아마 저 보라색 통에 같이 있긴 할 텐데 별로 없을지도 몰라여”
정성스럽게 고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아빠가 골라준 티’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나가서 차를 태우는 순간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부부가 ‘함께’ 아이를 기르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아내하고 교회에서 만났다. 소윤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부지런히 만들었다. 엄마에게 줄 선물이라고 했다. 시윤이도 덩달아서 만들었다. 종이접기로 이것저것 만든 거였는데 가방에 넣으면 구겨지니까 굳이 손으로 들고 가야 한다고 해서,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고이 챙겼다. 엄마한테 만나자마자 줄 거라면서 들뜬 두 녀석의 웃음만 아니었으면 집에 두고 가라고 했을 거다.
생긴 모양새가 딱 들고 가다가 잃어버리거나 차에서 흘릴 것 같아서 ‘혹시라도 잃어버렸다고 울지 말라’고 얘기하려다가, 괜히 산통을 깨는 것 같아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를 만나는 게 기분이 좋은지 교회에 가는 동안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아내는 교회에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렸다.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잠시 교회 앞에 차를 대고 아이들부터 내려줬다. 소윤이가 바로 내리지 않고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뭘 찾는지 알 수 있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찾다가 뒤로 돌아선 소윤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딸의 슬픈 눈을 보고 ‘아이고, 소윤이가 많이 슬프구나’하고 공감을 해 줘야 진짜 좋은 아빠일 텐데, 바쁜 와중에 그거 못 찾았다고 예배 드리기 전부터 우는 소윤이를 보니 단전에서부터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그나마 교회 앞이라 꾸역꾸역 참아냈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올려 보내고 난 주차를 하고 왔다.
‘추수감사주일’
그래,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이었다. 소윤이를 그렇게 올려 보낸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내 말로는 조금 우울해 하긴 했지만 잘 올라갔다고 했다.
서윤이는 오늘도 혼자 유모차에 앉아 손가락을 빨다가 잠들었다. 마스크를 한 손에 꼭 쥐고. 잠들기 전에 기분이 좋아서 종알종알 소리 낼 때, 잠들려고 손가락 빨 때, 눈이 흐릿해지면서 잠드는 순간에 아내와 나는 수시로 서윤이를 보면서 무언의 희열을 나눴다.
“소윤아. 예배 잘 드렸어?”
“네”
소윤이에게 아까의 슬픔은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다행이었다.
지난주와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윤이가 앉자마자 짜증을 냈다. 배고픈데 빨리 밥을 안 준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르며 그릇을 내던진 서윤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서윤아. 너 소리 지르면 안 돼. 그럼 밥 못 먹는 거야”
“으응”
“네라고 해야지”
“데에에”
“들어가면 앉아서 밥 먹는 거야? 짜증 내지 않고. 알았지?”
“데에에”
그 뒤로는 정말 짜증 내지 않고 잘 먹었다.
오늘은 축구가 좀 이른 시간에 잡혀 있었다. 평소보다 2시간 빨랐고, 1시간 짧았다. 뻔뻔하게 아내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고, 시간 맞춰서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 당당한 뻔뻔함의 근원은 어제와 오늘 아침에 걸친 짧은 독박 육아였다. 아내는 흔쾌히 나의 뻔뻔함을 받아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데리고 있었고, 서윤이는 아내가 데리고 갔다. 소윤이, 시윤이 말고는 나온 아이가 없어서 둘이 좀 심심해 하긴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나중에는 자기들 나름대로 놀거리를 찾아서 즐겁게 놀았다.
“엄마. 욕조에서 목욕하고 싶은데 해도 돼여?”
“목욕? 글쎄”
“너무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돼여?”
“음, 좀 힘들지 않을까?”
“왜여?”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아내의 마지막 변명이 정말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날씨가 너무 춥지 않았다. 두 번째로 날씨가 추우면 따뜻하게 물 받아 놓고 목욕하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 싶었다. 아내도 스스로 느낀 듯했다.
“여보. 힘들지 않을까?”
“뭐 하면 되지 뭐”
사실 베란다에서 욕조 꺼내는 게 제일 불편하다. 아, 다 쓰고 물기 말려서 다시 갖다 놓는 게 조금 더 불편하구나. 아무튼 시간도 이르니 목욕을 하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도 같이 하자고 했다. 같이 목욕을 하자는 게 아니라 물총 놀이를 하자는 말이었다. 원칙적으로 서로를 향한 물총 발사는 금지되어 있지만, 아빠의 허락하에 아빠를 향해 겨누는 건 가능하다. 저번에 한 번 그렇게 해 줬는데 그게 재밌었는지 또 같이 하자고 했다.
언니와 오빠가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가는 걸 보고는 서윤이가 자기도 하겠다며 들썩거렸다. 서윤이 욕조도 꺼내서 물을 받았다. 서윤이도 잘 놀았다. 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엄마와 아빠의 게으름(이 아니라 아이 셋 육아의 분주함)으로 많이 못 씻겨 주고, 물속에 많이 못 넣어 줬지만.
잘 놀던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쏘는 물총 줄기에 제대로 한 번 맞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나가겠다고 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내가 먼저 나가자고 했으면 싫다고 고집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소윤이, 시윤이하고는 눈이 벌개지도록 물총을 쏘며 놀고 나왔다.
애들 다 재우고 아내에게 재밌게 놀고 왔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았다고 했다. 다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했다. 시간이 짧았다는 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1박 2일이 짧았다는 뜻이기도 했고, 체력적 한계로 가용 시간이 짧아졌다는 말이기도 했다. 다들 1시가 넘어가자 눈이 감겨서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게. 다음에는 한 2박 3일 놀아야겠네”
어차피 자주 있는 일도 아닌데 일단 말이라도 시원하게 뱉어 놓는 게 지혜로운 거다. 그때는 소윤이가 더 커서 더 많이 도움이 될 테니 훨씬 낫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