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새벽 배웅

21.11.01(월)

by 어깨아빠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내 알람 소리가 아닌,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한 소리였다. 다른 직장에 다닐 때, 해보다 빨리 출근하고 달보다 늦게 퇴근하던 시절에 나를 깨우던 그 소리였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알람 소리로 잘 쓰지 않는 소리. 그 소리가 어딘가에서 내 고막을 날카롭게 찔렀다. 내 휴대폰이 아니면 아내 휴대폰이지 뭐.


‘뭐지. 아내가 어제 친구들이랑 잘 때 설정한 알람을 안 껐나’


시간도 ‘5시 50분’이었다. 진짜(?) 내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냥 일어나서 여유 있게 준비하고 조금 일찍 나가는 게 이롭지만, 온몸의 세포는 이를 거부하고 1초라도 더 누워 있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그런 시간, 10분. 한 30초 눈을 다시 감았다가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아내가 따라 나왔다.


“여보. 왜 나왔어?”

“여보 아침에 나갈 때 나도 깨면 배웅하려고”

“갑자기? 왜?”

“그냥”


아내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는 정말 몰랐다. 지금도 모르고. 아내가 일어나자 소윤이도 깼다. 방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시윤이도 깼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면서 방에서 나왔다.


“여보. 얼른 들어가. 애들도 다 깨네”

“여보 나가면 다시 들어가야겠다”


과연 아내가 다시 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소윤이와 시윤이가 깬 이상 아내가 편히 자도록 둘 리가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시 자지 않았고, 아내는 아주 조금 더 잠을 청하긴 했지만 질이 아주 낮은, 억지스러운 수면 연장이었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내, 아이들과 통화를 했다. 아내는 시윤이가 낮잠을 자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시윤이는 자기 싫다고는 했지만, 그맘때의 소윤이처럼 아주 강하게 거부하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낮잠 자면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싫어했는데, 시윤이는 싫지만 자라면 어쩔 수 없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아주 늦은 오후에는 세 녀석이 나란히 방에 누워서 자는 사진이 도착했다. 가만히 보니 소윤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보였다. 자는 게 아니라 자는 척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소윤이는 안 자지?”

“둘 다 안 자. 연출이야”


시윤이는 감쪽같았는데 시윤이도 연기였다니. 서윤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해야겠다. 나 30분 쉬게”


비록 애들이 자지 않아도 그 시간만큼은 애들을 가만히 눕혀 놓고 아내도 쉴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는 의미였다. 50분 노동, 10분 휴식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처절한 육아 노동자의 현실인가.


또 한 30분이 흐르고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중간에 떠들어서 10분 연장됐는데 시윤이는 잠들었네”


시윤이는 마지막 10분을 남기고 수면의 세계로 빠졌다. 곤히 잠든 두 동생 덕분에 엄마를 독차지하게 된 소윤이는 신나서 거실로 나왔다고 했다. 바로 오목판을 꺼내서 아내와 오목을 뒀다고 했다. 멀리서나마 시윤이와 서윤이가 너무 빨리 깨지 않길 바랐다.


시윤이의 늦은 낮잠으로 인해 저녁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퇴근하는데 아내가 전화를 해서 ‘오늘은 밖에서 밥을 먹을 거에요’라고 얘기했다. 어차피 일찍 잠들지도 않을 텐데 퇴근이 좀 늦어져도 밖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아이들의 막연한 ‘조금 더’ 욕구도 채워 주자는 의미였을 거다. 아내와 아이들은 쭈꾸미 볶음을 먹자고 했다.


사실 아이들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다. 아니 아예 손도 못 댄다. 너무 매우니까. 대신 주먹밥, 만두 같은 음식을 시켜서 줬다. 서윤이도 마찬가지로 언니와 오빠가 먹는 걸 줬는데 어찌나 잘 먹던지. 쌈을 싸 먹을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입에 넣어주자마자 삼키는 듯한 속도였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서윤이 덕분에 ‘차라리 내가 쭈꾸미가 되어 씹히는 게 덜 고통스럽겠다’ 싶을 정도의 혼돈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에 비하면 오늘은 양반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김과 계란찜 같은 반찬 덕분에 앉아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제법 괜찮은 식사였다.


밤바람이 참 좋았다. 밤 산책은 참 매력이 있다. 육아 퇴근이 한없이 늘어진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보상으로 받으니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 다 그렇다. 다 끝나고 나면 힘들지만 그 과정은 즐거우니 버티는 거다(물론 과정마저 힘들 때도 있지만).


아내는 동네에 새로 생긴 빵집에서 빵을 샀다.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나 매장 안의 느낌은 ‘괜찮은’ 빵집일 것 같았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는 아몬드 크로와상을 꺼냈다. 한 입 베어 먹은 아내에게 물었다.


“어때? 맛있어?”


아내는 백종원 아저씨처럼 진지한 태도로 저작 운동을 하고 삼키더니 얘기했다.


“어. 괜찮네”


아무튼 아내에게는 좋은 일이다. 뭐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뭐가 됐든 아내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니.


(아내가 크로와상을 다 먹지 않고 절반이나 남겼다. 맛이 없지는 않지만 다 먹어치울 만큼은 아니었나)


서윤이는 오늘도 성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쭈꾸미 가게 사장님께서, 서윤이를 살뜰히 챙기는 소윤이를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언니가 아니 누나가 동생을 엄청 잘 챙기네”


심지어 정정을 하시다니. 지난 토요일에도 있었다. 젊은 부부가 서윤이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아이를 안고 지나갔다. 나와 서윤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고. 종알종알 얘기하는 서윤이를 놀라며 쳐다보더니 아이의 아빠가 내게 물었다.


“몇 개월이에요?”

“한 18개월이요”

“아, 그렇구나”


그러고 나서는 안고 있는 아이에게 얘기했다.


“00야. 형이래”


그러고는 멀어졌다. 해명할 틈도 주지 않고.


“서윤아. 너보고 형이래”


서윤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다양한 사례를 모아 보자. 과연 어디까지, 언제까지 남자로 오해를 받을 수 있는지 말이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