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5(금)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고, 마침 오늘 저녁에는 교회에 가지 않아도 돼서 그러기로 했다. 가는 김에 시윤이 머리도 하기로 했다.
아내는 대중교통을 타고 가겠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제 자기 직전까지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아내가 차를 가지고 가면, 집에 올 때 두 대(내 차, 아내 차)로 와야 한다. 아내는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 기름값이 아깝다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세 번 정도 갈아타야 했다. 혼자 가라고 해도 ‘어우 너무 힘들겠는데’ 하면서 차를 끌고 가도 이상하지 않을 여정을, 아이 셋을 데리고 도전하겠다니. 걱정스러웠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가 대중교통 타는 걸 좋아하는 게 다행스러웠다.
시윤이 미용실 예약 시간에 맞추려면 아침 먹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과연 아내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내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정문까지 나왔는데 시윤이 쉬 마렵다고”
아내의 카톡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건 뭐라고 설명해야 찰떡같은 비유가 될까. 아침에 시간이 좀 늦어서 급히 준비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차 열쇠를 안 가지고 온 걸 깨달았을 때랑 비슷한 느낌일까.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떤 깊고 오묘한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느낌이랄까. 올라가서도 소윤이의 사소하지만 눈에 걸리는 행동과 태도 때문에 2차 위기를 겪었다고 했다. 아내는 ‘마음 지키기가 어렵다’고 표현을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괜찮아? 어디야?”
“나. 지금 지하철”
“괜찮아?”
“아니, 힘드네”
“아이고, 애들은 어때?”
“애들도 차가 편하대”
“아 진짜?”
“어. 덥고 힘들어서 그냥 차가 더 좋대”
“도시 아이들의 단상이구만”
차의 편안함과 안락함이 대중교통의 낭만을 넘어섰나 보다.
아내는 도착하자마자 장모님께 소윤이와 서윤이를 맡기고, 시윤이와 함께 미용실로 갔다. 물론 버스를 타고. 거기는 가깝기도 하고 시윤이와 둘이 가는 거라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대신 그전까지의 시간이 워낙 고돼서, 그때까지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시윤이 펌을 끝내고 다시 친정으로 간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서윤이 열이 좀 있네”
37.5도에서 38도 사이라고 했다. 어제 잠깐 깨서 나왔을 때 코가 찬 소리가 들렸는데 전조증상이었나 보다. 어제 찬 바람을 많이 쐐서 그랬는지, 아무튼 얼굴에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다. 힘없는 얼굴로 아내에게 안겨서 손가락만 열심히 빨았다. 다행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괜찮다고 했다.
퇴근하고 바로 처가로 갔다. 주차를 하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장모님과 소윤이, 시윤이를 만났다. 원래 삼겹살 구워 먹으려고 간 건데 취소했다. 아무래도 아픈 서윤이를 데리고 몸이든 마음이든 편히 먹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장모님은 내게 봉지 두 개를 건네셨다. 하나는 장 본 거였고 하나는 족발이었다. 장모님은 아이들과 돈까스 가게에 간다고 하셨다. 애들 먹을 걸 찾으러 가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께 밤 이후로 아빠의 얼굴을 처음 본 소윤이는 나를 유독 반가워했다. 시윤이도 반가워했지만 소윤이 만큼은 아니었다. 소윤이는 나와 함께 집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장모님이 소윤이에게 그건 안 된다고 하셨다. 아까 약속했으니까 할머니랑 같이 가야 한다고 하셨다. 의아했다.
‘왜 안 된다고 하시는 거지’
아무튼 소윤이와 시윤이는 장모님과 가고, 난 집으로 올라왔다. 서윤이는 거실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낮에도 많이 잤다고 했는데 또 자는 걸 보면, 아프긴 했나 보다. 금방 깨긴 했는데 엄청 칭얼댔다. 나한테는 아예 오지도 않고, 오로지 엄마만 찾았다. 붙어 있는데도 찾았다. 잠시의 격리도 허용하지 않고.
장모님과 아이들이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장모님과 아이들은 거기 가서 저녁을 먹고 온다는 말이었다. 족발은 나와 장인어른, 아내를 위한 거였고. 장인어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내내 아내에게 안겨 있던 서윤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말했다.
“합지이이이이이”
엄청 반가운 표정으로 옅은 미소와 함께. 그전까지는 아예 웃지를 않았다. 그러던 녀석이 할아버지를 보더니 계속 부르고, 웃었다. 물론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못 먹어서 배가 고팠는지 아픈 와중에도 자리에 앉아서 밥을 한 공기 넘게 먹었다. 처음에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반찬은 안 먹고 밥만 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좀 나은 것처럼 웃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퇴근하고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장모님과 아이들은 꽤 늦게 돌아왔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나올 때쯤에는 서윤이가 멀쩡한 아이처럼 나아졌다. 나은 게 아닌 건 분명했지만 그렇게 보였다. 자면서 다시 열이 오르고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쨌든 당장 덜 아파 보이니 마음이 좀 놓였다.
집에 도착하니 11시였다. 시윤이는 잠들었다가 살짝 깼는데 눕혔더니 다시 잠들었다. 서윤이는 잠들었다가 깼고, 소윤이는 쌩쌩했다. 이 모든 아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야 하는 아내는, 가장 졸려 보였다. 당연히 못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빠른 시간에 탈출에 성공했다.
아내는 그 늦은 시간에, 그 피곤한 몸으로 파닉스 연습도 하고 다른 선생님들의 발음을 교정도 해 줬다. 다른 선생님들도 아내도 새삼 참 대단해 보였다. 학습의 질이나 교수법의 완성도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혹시나 그게 좀 미비하더라도, 저들의 저 연습과 노력이 어딘가에서는 싹을 틔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단어 하나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함께하는 시간, 그 시공간에서 주고받는 감정은 분명히 남다른 의미가 있을 거다(아 물론, 내 자녀의 학습 과정을 오롯이 지켜봐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고 매우 원색적인 일일 때가 많다. 반대로 자녀가 부모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쨌든 양육과 교육의 외주화 시대에 기꺼이 자급자족을 선택한 아내에게 다시 한번 격려, 응원, 존경, 위로, 감사, 그리고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