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4(목)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식탁 의자 밑에 누워서 활짝, 아주 환하게 웃고 있는 서윤이 사진을.
“방해꾼”
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아무튼 서윤이가 뭔가를 방해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방해꾼이지만 사랑받고 있는 것도 확실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힘들지도 모르지만’ 기분 좋게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한 20여 분 뒤에 아내의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정말 이 시간 너무 힘들다. 애들 모습이 자꾸 화가 나네”
“공부하는 시간?”
“기도 모임”
여기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아서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아내가 기도 모임 하는 동안 서로 잔잔하게 티격태격하거나 (우리 아이들은 전면전은 거의 없다. 한미연합훈련, 동해상 미사일 발사 같은 신경전만 존재한다) 불필요하게(?) 아내를 찾거나 그랬을 거라고 짐작만 했다.
아내는 오후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했다. 지난주에 주말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인데 오늘은 다들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했다. 아내에게는 반갑고 즐겁지만 고된 시간이었을 거고 아이들에게는 마냥 좋은 시간이었을 거라고 예상했다.
“여보. 애들 잘 만나고 있어?”
“어, 여보”
“어디서 만났어?”
“아, 여기 우리 집 근처에 플랜테이션이라고”
“아, 우리 예전에 한 번 갔었잖아”
“어, 근데 여기 싹 바뀌었더라고. 애들 놀기가 너무 좋더라”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있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았다고 했다. 서윤이도 걸릴 것이 없어서 아주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끊임없이 막고, 못 가게 하고, 쫓아다녀야 하는 곳에 비하면 훨씬 피로도가 낮은 듯했다. ‘비하면 낮다’는 거지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아이 셋과 함께 할 때의 기본 수치가 있다.
퇴근하면서 통화할 때는 스타필드라고 했다. 거기서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고 했다. 아마 거기서부터가 고비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좋은 시간을 보냈어도 그 시간이면 체력은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었을 테고, 저녁 식사는 마지막 1km를 남겨 놓은 마라토너의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던 건, 내가 그렇게 늦은 시간에도 귀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귀가하지 않고 바로 축구장으로 가겠다고, 어제 얘기했다. 축구 할 때는 좋았는데 다 끝나고 집에 오니 애들이 엄청 보고 싶었다(아내가 제일 보고 싶었는데, 아내는 봤으니까). 아쉽지만 아내에게 아이들의 하루를 듣고,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막 자러 들어가기 직전에 서윤이가 깨서 우는소리가 들렸다. 시윤이가 서윤이 자리로 굴러 가서 깔아뭉갰는지
“어빠아아아아악”
하면서 짜증을 내며 울었다.
“여보. 그냥 데리고 나와”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서 거실로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거실로 나온 서윤이는 아직 잠이 충만해서 나에게 오지는 않았다.
“서윤아. 아빠 안을까?”
“시여”
그래도 좋다. 그냥 보기만 해도 좋다. 니가 날 안 봐도, 내가 널 볼 수만 있어도 좋다. 그래도 나중에 아내가 씻으러 갔을 때는 겨우겨우 사정해서 내 품에 안았다. 안아주고도 사정해야 하는 게 억울하지만 그래도 좋다.
거기에 방에 들어가서도 아내와 내 사이에 눕히고 잤다. 물론 그때도 난 외면당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