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온 손님, 2일차

21.11.11(목)

by 어깨아빠

그나마 몇 시간 못 자는 잠도 푹 못 자고 계속 설쳤다. 자면서 계속 ‘아, 2시간밖에 못 자니까 얼른 더 푹 자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4시간이었는데. 푹 자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푹 못 잔 밤이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날 때 생각보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Y네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 갔다. 원래 Y네 가족만 가는 거였는데 Y와 L(Y의 아내)이 끈기 있게 설득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아내는 Y네 가족의 가족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남편 없이 혼자(Y와 L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셋을 데리고 가는 게 자신이 없어서 한사코 거절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로 다투거나 너무 신이 나서 귀를 닫는 일이 아니면 아내를 크게 힘들게 할 일이 없었다. 역시 관건은 서윤이였다.


아내와 아이들, Y네 가족은 점심시간 무렵에 출발했다고 했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고, 에버랜드에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아내는 오후 3시쯤 아기띠에 안겨 있는 서윤이 사진을 보냈다.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어떠한 설명도 없는 이모티콘이었지만 그냥 웃음이 아니라, 아내의 ‘자조’가 섞인 웃음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도 그저 그 순간에만 잠깐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서윤이는 차에서 내리고 나서는 거의 단 한순간도 유모차에 앉지 않았다고 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단 한순간도 아내의 품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거다. 아내가 예상했던 가장 안 좋은 전개였던 ‘서윤이가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라고 하는 상황’을 뛰어넘었다. 시도 때도 없는 정도가 아니라 시와 때를 무시했다. 덕분에 아내의 허리 나이가 몇 년은 짧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이 많아서 놀이 기구는 많이 타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소윤이는 오랜만에 만난 오빠(Y의 첫째, 8살)와 노느라 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대신 시윤이는 좀 슬펐다. 누나가 형아한테만 가서 놀고 그러느라 자기는 뒷전인 게 속상했다. 아내는 소윤이에게 수시로 ‘동생을 챙기라’며 주의를 줬지만, 동향의 벗을 만난 소윤이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도 퇴근하고 에버랜드로 갔다. 오후에 외근이 있어서 거기서 바로 갔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아이들이 더 논다고 하면 나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쯤 나온다고 해서 난 먼저 식당으로 가서 기다렸다. 아내가 찾았다는 식당에 먼저 가서 앉을 자리를 살피는데 사장님과 약간의 마찰이 생겼다. 식구가 많다 보니 자리를 어떻게 앉아야 할지 물어봤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굉장히 성의가 없고 귀찮아하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가게의 표준 세팅은 이러니까 너네가 알아서 맞춰서 앉든지 나가든지 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덕분에 짧은 언쟁이 오갔다.


여야 대표의 100분 토론 같았다. 사장님도 나도 자기 얘기만 하다가, 내가 나왔다. 나와서 생각해 보니 나도 좀 과민하게 반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인 가족을 반기지 않는 식당을 심심치 않게 경험하다 보니 뭔가 쌓였던 게 있었나 보다. ‘덜 친절’한 사장님의 태도가 섭섭했나 보다. 아무튼 기분은 별로였다.


그 근처의 다른 식당을 찾았고, 내가 먼저 가서 기다렸다. 시간이 좀 지나고 아내와 아이들, Y네 가족도 도착했다. 아이들은 ‘우리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았다’라는 느낌을 풀풀 풍기며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고, 활력이 넘쳤다. 그에 비해 어른들은 ‘히말라야를 종주하다가 베이스캠프에 들어온 등산가’ 같은 모습이었다. 아내가 단연 그래 보였다. 서윤이는 어제처럼, 지난날의 만행(?)을 감추는 천사 같은 얼굴로 날 대했다. Y는 놀이공원에서 힘들 때마다 아내를 보며 힘을 냈다고 했다.


‘가영이도 저러고 있는데 내가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의 여러 가지 일을 신나게 얘기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는 마치 구름 위에 뜬 것 같았다. 차에 타기 전에도 소윤이의 ‘오빠 편향(?)’ 때문에 시윤이가 다소 속상할 뻔했지만, 이번에는 아내와 내가 강제로 차단했다. 소윤이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를 했기 때문에 최대한 너그러이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했다.


놀이공원은 강렬했다. 일하고 온 내가 가장 쌩쌩했다. 집에 돌아와서 나머지 어른들은 애들 재우고 씻는 동안 난 치킨을 사러 갔다 왔다. 가면서도 ‘과연 오늘 심야 수다가 가능할까’ 걱정스럽긴 했는데 일단은 사 왔다. 문을 열었더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Y였다. Y는 소파에 누워서 아니 쓰러져서 자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누군가 씻는 소리가 났다. 그게 아내인지 L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Y는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깼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만약에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사람이 아내라면, 내가 사 온 치킨은 오롯이 나만의 몫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화장실에서 L이 나왔다. 그렇다면 아내는 서윤이 재우러 들어갔다가 잠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L과 둘이 앉아서 치킨을 뜯으며 수다를 떨 수는 없으니 난 아내를 깨우러 들어갔고 L은 Y를 깨우러 들어갔다. 아내는 바로 나왔고 Y는 ‘못 일어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일어나서 나왔다. 무엇이 그토록 피곤했던 그들을 일어나게 했을까. 치킨도 치킨이지만, 아마도 마지막(이틀 중에 두 번째지만) 밤을 향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어제와는 다르게 마음의 부담이 하나도 없었다. 내일 연차를 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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