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온 손님, 마지막날

21.11.12(금)

by 어깨아빠

손님을 맞느라 서윤이와 나, 아내가 작은방에서 잤다. 그 덕분에 아침에 아이들의 방해에서 자유로웠다. 그래도 늦게까지 자지는 않았다. 서윤이가 우는소리(정확히는 짜증 내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바로 나왔다. 대식구가 먹을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찬 밥과 두어 가지 야채를 넣은 그야말로 간단한 볶음밥이었는 데 엄청 오래 걸렸다. 양이 어마어마했다. 밥을 넣고 나서는 웍질이 불가능할 정도의 무게가 되었다. 그래도 애들이 다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꼭 해야 하는 일(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등)을 하지 않을 때는 알차고 알차게 쉬지 않고 놀았다. 시간의 공백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간이 아니면 가만히 있지 않고 촘촘하게 놀았다.


오후에는 임진각에 가기로 했다. 나가기 직전에 소윤이는 나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자꾸 시윤이를 밀어내고 어떻게든 오빠(Y의 첫째)와 붙어 다니려고 잔꾀를 부렸다. 붙어 다니려고 하는 건 전혀 상관없지만,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떨어뜨리는 건 안 된다. 그게 자기 동생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그제, 어제 많이 눈감아줬다.


날씨가 너무 추울까 봐 걱정이었는데 너무 춥지는 않았다. 조금 추웠다. 따뜻한 날씨는 아니었다. 처음에 나가면 ‘어우 춥다’이러다가 잠깐 햇볕 있는 곳에 가면 ‘오, 그래도 햇볕에 있으니까 따뜻하네’ 이러다가 한 3분 지나면 ‘아, 그래도 춥긴 춥구나’하고 느끼게 만드는 그런 날씨였다. 그래도 애들이 밖에서 못 놀 날씨는 아니었다.


임진각에 도착해서 먼저 전망대도 올라가고 포탄 맞은 기차도 보고 벙커도 들어가고 그랬다. 의외로 거기에 시간을 많이 썼다. 아이들이 좀 어리고 전혀 준비를 안 하고 가서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쟁을 겪은 세대와 함께 살기는 했던 세대다. 내 자녀들은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겪은 세대와 같이 살지도 않는다. 내 자녀는 홈스쿨로 기르기로 한 이상, 나와 아내가 가르쳐야 한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에게 습자지같이 얇은 지식을 전하는 오늘의 나를 반성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내가 찾은, 아직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나름 덜 유명한 놀이터에 갔다. 임진각 끝자락에 위치한 캠핑장 옆에 있는 놀이터였는데, 확실히 동네 놀이터하고는 달랐다. 동네 놀이터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놀이 기구와 동네 놀이터에 있는 거라도 재미의 수준이 다른 놀이 기구가 많았다. 딱 한 시간 정도 놀았는데 다들 엄청 신나게 놀았다. 어른들에게도 지루하지 않은 놀이터라서 좋았다.


매서운 추위는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찬바람을 맞았더니 몸 구석구석 한기가 자리를 잡았다. 저녁은 월남쌈을 먹었는데 쌀국수 국물이 천상의 맛이었다. 매운 고추를 잔뜩 풀어서 먹었더니 절로 ‘으아’ 소리가 나왔다. 아이들도 다 잘 먹었다. 서윤이는 그 많은 쌈 재료를 눈앞에 두고 밥만 먹었다. 요즘 고기를 안 먹는다. 종류와 조리 방법을 불문하고 고기 자체를 거부한다. 씹는 게 싫은가. 아무튼 오늘도 그저 밥만 먹었다.


밥 먹고 나오니 날이 깜깜했다. Y네 가족은 잠시 집에 들러서 짐을 챙기고 애들을 씻기고 바로 출발해야 했다.


“아빠. 벌써 헤어지는 날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여”

“그러게. 아빠도 그러네. 소윤이랑 시윤이가 환영해 준 게 엊그제 같은데”

“맞아여”

“소윤아, 시윤아. 사실 진짜 엊그저께긴 해”


소윤이와 시윤이는 정말 아쉬워했다.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떠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애들만큼이나 아내도 아쉬워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헤어지는 순간에는 눈물이 찔끔 났다고 했다. 나도 아쉽긴 했다. 맨날 울산에 손님으로 갔지 우리 집에서 이렇게 손님을 맞은 게 오랜만이었다. 고생은 아내가 해서 그런가 힘들지 않고 즐겁기만 했다. Y네가 떠난 집은 아내 말처럼 휑했다. 부모님들도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우리도 얼른 애들을 씻겨서 재웠다. 떠난 이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기쁨이 있었다. 자꾸 오늘이 토요일 같았는데 금요일이었다. 오늘도 주말처럼 보냈는데 내일 주밀이 시작이라니. 금요일 연차의 매력은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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