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3(토)
아내가 나를 깨웠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작은방이었다. 어제 분명히 안방에 누워서 잤는데.
“여보. 왜 여기서 잤어?”
“어? 나도 모르겠는데?”
“그래?”
“어. 나 왜 여기 있지?”
정말 기억이 안 났다. ‘본능적으로 고요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찾아 움직인 건가’하는 추측만 했다.
눈을 뜨자마자 나갈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미용실 예약을 잡아놨다. 어제 자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따라갈 건지 집에 있을 건지 물어봤는데 갈팡질팡했다. 따라간다고 했다가 집에 있겠다고 했다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여전히 자고 있어서 그냥 혼자 다녀 오려고 했는데, 준비를 다 마쳤을 때쯤 아이들이 모두 깼다.
“소윤아, 시윤아. 어떻게 할래? 아빠 따라 갈래?”
둘 다 따라가겠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부지런히 옷을 입혀서 같이 나왔다. 급히 나오는 바람에 아침을 못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각 바나나 한 개로 허기를 달랬다. 미용실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앉아서 아빠 머리하는 거 구경만 하는 건데 따라나서는 게 신기했다. 그냥 집에 있는 것보다는 어디라도 나가는 게 좋아서 그런 건가. 아무튼 어른도 지겨워서 버티기 힘든 시간을 얌전히 앉아서 구경하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기특하기도 했다.
미용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면서 ‘순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신기했나 보다. 아빠 따라다니는 걸 신기하게 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순한 편이기도 하지만, 아내와 내가 지나온 치열한 훈육과 인내의 시간의 작은 열매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겪지 않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얌전하게 기다리는’ 아이로 자라는 자녀가 과연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매우 드물다고 본다. 서윤이를 볼 때마다 그 과정을 피해 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냥 니가 알아서 말도 잘 듣고, 할 것 하지 말 것 잘 지키면 안 되겠니?’
‘말 한마디에 찰떡같이 알아듣고 처신하면 안 되겠니?’
‘나중은 모르겠고 일단 지금 당장은 넘어가 줄까?’
안타깝게도 서윤이를 아빠 따라 미용실에 가서 얌전히 앉아 피해와 방해를 끼치지 않는 아이로 기르기 위한 필수의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매일 느낀다.
첫 손님으로 간 덕분에 예상보다 금방 끝났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 가려고 잠깐 들렀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잠깐 카페에 오신다고 했다(미용실과 카페, 처가가 다 같은 동네다).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다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아시고는 잠깐이라도 보러 오신다고 했다는 거다. 곧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오셨고 카페에 잠깐 앉아 있다가 왔다.
오후에는 아는 목사님의 취임 예배에 가야 했는데 시간이 빡빡했다. 다른 지인을 태우고 함께 가야 해서 차를 대충이라도 치워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먼저 올려 보내고 난 차를 정리하고 올라갔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먼저 올라가서 급하게나마 김과 밥을 먹었다고 했다. 잠깐 숨만 돌리고 바로 다시 나왔다.
40분 정도를 달려서 교회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자모실로 들어갔고 난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자모실이긴 한데 아이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온 지인의 아이들뿐이었다. 애들이 좀 시끄럽게 떠들고 돌아다녀도 무방한 곳이었으니 아내도 엄청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그것보다는 생각보다 길어서 끝나지 않는 이취임 예배 자체가 더 곤혹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긴 예배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왔더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지인네 가족을 내려주고 다시 식당을 향해 출발했다. 아내는 원래 집에 가서 가지밥을 해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갔다 오니 모든 의욕이 사라진 듯 밖에서 먹자고 했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치즈 돈까스를 먹으러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근처에 있는 중국 음식점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이번에는 시윤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을 먹으러. 처음 가 보는 곳이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앞으로 중국 음식이 먹고 싶으면 이곳에 오기로 했다. 모두 동의했다.
밥 먹고 집에 돌아오는데 엄청 피곤했다. 그냥 막 졸렸다. 집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정신없이 졸았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가고, 방 문을 닫는 순간부터 조금씩 잠에서 깼다. 이건 정말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애들 재우다 재움을 당하고 나온 아내도 나와 비슷했다.
“와, 여보.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게.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하루 종일 움직여서 그런가 봐”
“그러게. 그런가 보다”
정신을 차리고 나왔던 아내는 그리 길게 버티지 못하고 다시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자야겠다며 씻고 나와서는 잠시 또 정신을 차린 듯하다가 금방 눈꺼풀이 다시 내려왔다. 아내는 먼저 들어갔고 난 남아서 억지로 더 밤을 즐기다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