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고 와서도 고맙다는 얘기를 듣는 방법

21.11.14(주일)

by 어깨아빠

역시나 신비로운 주일 아침이다. 별로 안 늦었다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늦었고, 좀 늦었다고 생각하면 왕창 늦었고. 오늘은 전자였다. 물론 모든 촉박함의 근원은 아내와 나의 꾸물거림이다.


몇 주간 예배 시간에 유모차에서 자던 서윤이가 오늘은 안 잤다. 나에게 잘 안겨 있다가 자기가 먼저 유모차에 앉겠다고 해서 앉혔더니 바로 손가락을 넣고 빨았다. 잠이 오는 것 같기는 했는데 잠들지는 않았다. 막판에는 뭔가 수가 틀려서 크게 우는 바람에 아내가 안고 나가기도 했다. 점심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잠들었다.


식당에서 시윤이가 메뉴판의 글씨를 버벅거리며 읽었다.


“드 드 드 오 오 오 드오 드오 응 응 응 드오응 드오응 동 동 즈 즈 즈 우 우 우 즈우 즈우 즈우 그 그 그 그는 뭐지?”

“그건 윽”

“즈우윽 즈우윽 죽 크 크 크 아 아 아 크아 크아 크아 을 을 을 크아을 크아을 칼 칼 그 그 그 우 우 우 그우 그우 그우 윽 윽 윽 그우윽 그우윽 국 국 스 스 스 우 우 우 스우 스우 수”

“그럼 뭐야? 붙여서 읽어 봐”

“동죽칼국수?”


통글자가 아니라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읽기를 배우고 있는데, 직접 보니 엄청 신기했다. 소윤이도 이렇게 배웠는데 의외로 소윤이 때의 기억은 별로 없다. 소윤이 때는 한글 연습하는 걸 별로 못 봤나 보다. 시윤이가 한글을 읽는 것도 신기하고, 그렇게 조합해서 읽는 건 더 신기했다. 시윤이 나름대로 연습을 많이 했을 걸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메뉴 대여섯 개를 읽는 게 꽤 한참 걸렸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주 재미있게, 시윤이의 어설픈 메뉴 낭독을 관람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서윤이도 잠들고 나도 잠들었다. 밥 먹고 잠시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샀다. 아내가 사러 갔는데 그새를 못 참고 잠들었다. 너무 졸렸다.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기고 조수석에 앉아서 머리를 기대자마자 잠들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어렴풋이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좀 조용히 하자”


자는 아빠를 배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내 뒤에 앉은 서윤이를 깨우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서윤이를 안고 와서 방에 눕혔는데 바로 깨버렸다. 너무 방심했나 보다. 아내가 남아서 서윤이를 다시 재우고 나왔다.


짧은 틈새 시간을 이용해 소윤이, 시윤이와 우노를 했다. 동생의 방해가 없는 자유가 확보되었으니 두 녀석이 원하는 만큼 하려고 했다. 두어 판 하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블록을 꺼내서 놀고 있었다.


서윤이도 또 깼다. 오늘은 길게 잘 생각이 없었는지 아주 잠깐씩 자다가 깼다. 아내는 잠시 후 다시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조용하고 안 나오길래 서윤이와 함께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방 문이 열렸다.


“여보. 서윤이는 안 잤어”

“아, 그래? 그럼 뭐 했어?”

“그냥. 막 뒹굴고 장난치고”

“여보는 잔 거 같은데?”

“어, 난 좀 졸았어”


아, 서윤이가 엄마 재우러 들어간 거였구나. 아빠가 오해했구나.


오후에는 아내와 내가 각각 일정이 있었다. 아내는 처치홈스쿨 엄마 선생님 모임이 있었는데 ‘가능한 사람은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기’가 조건이었다. 당연히 내가 아이 셋을 맡아야 했지만 축구장에 서윤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데리고 가고, 서윤이는 아내가 데리고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축구장에서 잘 놀았다. 주중에는 날씨가 많이 춥더니 주말이 되자 좀 풀렸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날씨였다. 머지않아 엄청 추워질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축구장에 갈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내년이 돼도 소윤이가 날 따라서 축구장에 갈지 모르겠다.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가서 서윤이를 받아왔다. 아내는 모임이 조금 더 늦게 끝날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차례대로 씻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했고, 서윤이는 간단히 씻겼다. 저녁은 뭘 먹일까 고민하다가 간편하게 주먹밥을 먹이기로 했다. 주먹밥의 최대 장점은 차리고 치우는 과정을 축약한다는 거다. 양푼 그릇에 밥과 미역줄기, 김가루, 참치를 넣었다. 참치는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최소한의 맛을 위해 넣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주먹밥을 한 알씩 만들어서 입에 넣어줬다. 소윤이 한 개, 시윤이 한 개, 서윤이 한 개. 새처럼 받아먹는 녀석들 입에 하나씩 넣어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내에게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늦게 와도 돼. 애들은 먹여서 재울게. 혹시라도 추가 모임을 가지거나 혼자 놀다 오거나”


나도 실컷 놀고 왔으니, 이건 인지상정이다. 아내는 엄마 선생님 한 분과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다. 난 애들 저녁을 다 먹이고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자기 전에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잠깐 전화를 했다. 서윤이는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엄마를 찾으며 통곡을 했다. 물론 잠깐이었다. 전화를 끊고 자리에 다시 눕히니 금방 괜찮아졌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번 주말에도 너네랑 너무 행복했어”

“아빠. 저두여. 내일 보자여”


다들 금방 잠들었다. 아내도 그렇게 늦게 오지는 않았다. 아내는 자꾸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내가 축구하고 온 걸 잊었나.


소파에서 쉬다가 자러 들어가려고 움직일 때, 싱크대의 설거지가 그대로라는 게 생각났다.


“아, 설거지를 안 했구나”

“괜찮아. 내가 내일 하면 되지”


빠뜨린 게 또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애들 머리를 안 말려줬네”

“아, 그래?”

“어. 완전 깜빡했네”


소윤이와 시윤이 머리를 안 말려 준 게 그제야 생각이 났다. 역시. 남편의 육아는 이렇게 허술한 맛이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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