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7(수)
아내와 아이들은 내 동생네 집에 갔다. 얼마 전에 아내가 (내) 엄마와 통화할 때 서윤이가 말하는 걸 들려줬더니, 서윤이를 엄청 보고 싶어 하셨다고 했다. 어제는 소윤이가 사촌 동생(내 조카)을 보고 싶다고 했고. 엄마는 수시로 동생네 집에 가니까 아내만 가면 모두의 갈급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서윤이야 자기 동생이니까 그렇다 쳐도 사촌 동생까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소윤이는 아기를 남다르게 좋아하는 것 같다. 자꾸 아내와 나에게도, 자기는 동생이 더 있어도 너무 좋을 거 같다는 말도 자주 한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지금 있는 동생들에게 잘 해 주라고 대답해 주곤 한다.
낮에 아내와 잠깐 통화하고 끊을 때, 아내가 이렇게 인사를 했다.
“여보. 내일 봐”
아침에 나올 때 축구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퇴근하고 바로 축구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퇴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집에 가고 있어?”
“아, 여보. 사실 우리는 여보 사무실 쪽으로 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어”
“어? 진짜? 갑자기?”
“원래 서프라이즈로 잠깐 보고 가려고 했는데 거의 다 와서 길을 잘못 들어서 난 지금 월드컵대교를 건너는 중이야”
사무실은 강 아래쪽이고 집은 강 위 쪽이다. 어디선가 잘못 빠졌나 보다. 아내는 축구장에서라도 잠깐 얼굴을 보고 가겠다고 했다. 물론 아내가 날 사랑하지만, 축구장까지 따라와서 단 몇 분이라도 얼굴을 볼 정도로 불타오르는 건 아니다. 아마 애들이 그러자고 했을 거다. 잠깐이라도 아빠 얼굴을 보는 게 좋은 건지 조금이라도 늦게 귀가하는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빠를 못 만나는 날에는 무척 아쉬워한다고 했다.
부지런히 축구장으로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쯤이야?”
“나? 00역”
“아, 진짜? 우리 자연드림인데 그럼 이쪽으로 잠깐 와서 얼굴 보고 갈 수 있어요?”
“그래”
아내와 아이들은 장을 다 보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막상 만나니 반갑긴 했다. 맨날 보는 얼굴이 맨날 보고 싶은 것도 참 신기하다. 이 또한 나만의 특권이다. ‘보고 싶음’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특권.
축구를 하고 집에 왔을 때 아내는 언제나처럼 식탁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었다.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지만 힘이 넘치지도 않았다. 부드럽고 달콤하지만 많이 묽어진 바닐라 라떼 같았다. 운전도 많이 했고 축구하러 간 남편 없는 밤도 길었을 테고.
아내도 보고 싶었고(진심으로)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샤워하고 나와서 아내한테 오늘 찍은 애들 사진도 보여달라고 하고 얘기도 좀 하고 그러려고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거실의 풍경은 그대로였다. 아내만 안 보였다. 아내가 먹던 빵, 새로 샀다며 보여준 애들 옷 다 그대로였다. 아내가 없는 것만 빼면. 아마 서윤이가 깬 모양이었다.
아내는 다시 나오지 못했다. 구글포토가 유료화(유료화가 문제가 아니라 용량 제한이 문제긴 하지만) 되는 바람에 실시간으로 사진을 공유하지 못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