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갔다 올래?

21.11.18(목)

by 어깨아빠

출근할 때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의 배웅을 받았다. 서윤이가 먼저 깨서 아내와 나왔고 소윤이도 그 소리에 깨서 나왔다. 요즘 뽀뽀에 매우 박한 서윤이가 아침에는 아주 흔쾌히 입술을 허락했다. 아빠가 출근하는 걸 아는지 옷 입을 때부터 계속 안녕을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연차와 휴가에 제한이 없는 회사였다면 당장 ‘아침에 나를 배웅하는 딸들이 너무 예뻐서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음’이라는 사유로 휴가를 내고 쉬었을 만큼 반가웠다. 다만, 그 이른 아침에 깨서 다시 안 자면 아내의 하루가 너무 길까 봐 걱정이었다. 서윤이의 표정과 활동 범위를 보아하니 다시 잘 것 같지는 않았다. 소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어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틈도 없이 밤을 맞은바람에 오늘의 일정을 듣지 못했다. 일정을 안다고 해도 특별히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부가 서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는 게 나쁘지는 않다. 짧게라도 마음의 응원과 기도를 보태는 정도는 할 수도 있고.


점심시간 무렵에 기도 모임이 끝났다면서 연락이 왔다. 그 뒤로는 특별한 일은 없다고 했다.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가 잠시 놀러 올지도 모른다고 했고.


아내는 서윤이가 뜯어 놓은 벽지 사진을 보냈다. 한 20분 뒤에는 감쪽같이 원래대로 돌려놓은 사진도 보냈다. 아무래도 아내는 오염되고 훼손된 무언가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데 탁월하다. 난 그런 능력이 없고 의욕도 없지만 아내가 해 놓은 걸 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오후에는 형님네 부부도 오고 장모님도 오셨다고 했다. 아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은 걸 보니 많이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저녁은 메밀묵과 생굴, 굴전이었다. 평소에 식탁에 잘 올라오지 않는 생소한 반찬들이었다. 굴은 아내도 나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메밀묵은 아마도 집에서는 처음 먹어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생굴을 너무 먹어 보고 싶어했다. 하나씩 먹어 보더니 둘 다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내는 아직 아이들에게 조리되지 않은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은 듯했다. 아내와 내가 먹으려고 김치와 버무린 메밀묵도 잘 먹었다. 곧 어른용, 아이용 반찬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다. 아, 서윤이가 있구나.


저녁 먹고 애들을 씻기면서 아내에게 충동적(?)으로 얘기했다.


“여보. 나갔다 올래? 어디 나갈 데 없어?”

“어?”


아내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나 보다. 좋다, 아니다 말을 못 하고 버벅댔다. 한 번 더 물어봤더니


“나야 좋지”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을 했다.


“아, 엄마 가지 마여”

“엄마랑 자고 싶어여”


오늘은 좀 야박하게 차단했다.


“엄마를 좀 기쁘게 보내 드려 봐. 엄마도 좀 쉬셔야지. 너네가 자꾸 그러면 이제 맨날 엄마 나가라고 할 거야. 어? ‘엄마. 잘 쉬다 오세요’ 이렇게 할 줄도 알아야지”


아이들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니, 맨날 엄마랑 자는데 고작 하루 못 잔다고 그때마다 그러는 게 이해가 안 되기도 하네) 엄마가 쉰다고(이게 쉬는 거라고 하는 게 맞나 싶지만) 하면 막 환호하면서 좋아하는 삼남매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


가장 먼 건 서윤이다. 아내가 강제로 인사하고 방에서 나가자 오열을 시작했다. 물론 길게 가지는 않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강서윤. 신경질은 내지 마세요. 소리치지 마세요. 대답하세요”


이렇게 몇 번 반복해서 말했더니 울다가도


“데에에”


하면서 대답을 했다. 서윤이 특유의 순둥순둥한 지점이 있다.


다들 금방 잠들었다. 카페가 늦게까지 문을 여는 덕분에 아내도 오랜만에 엄청 늦게 왔다. 가끔 나가더라도 어쩔 수 없이 엄청 금방 돌아왔는데. 카페에 있다 왔다고 하길래 물어봤다.


“커피만 마셨어?”


아내는 음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크로플도 먹었어”


같은 커피와 빵이라도 언제 불려 들어갈지 몰라서 불안해하며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내보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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