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쪽지가 지키는 우리 집

21.11.19(금)

by 어깨아빠

어제 자러 들어가기 직전에 소윤이와 서윤이가 모두 깨서 거실로 나왔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자면, 소윤이는 아내가 귀가하기 직전에 깨서 아내 얼굴을 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서윤이가 깨서 나왔다.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소윤이가 그때까지 안 자고 있었다. 아내는 서윤이 옆에 눕고, 난 소윤이와 침대에 누웠다. 소윤이와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다가 늦게 잠들었다.


새벽에 자다가 살짝 깼는데 시간이 가늠이 안 됐다. 햇볕의 밝기가 너무 어두웠다. 요즘은 집에서 나갈 때도 어둡기 때문에 대충이라도 짐작이 안 된다. 혹시나 시간을 확인했는데 30분 안에 알람이 울릴 시간일까 봐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러고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또 잠에서 깼다. 이번에는 확연하게 밝았다.


‘뭐지. 왜 이렇게 밝지’


하면서 시계를 봤는데 8시였다. 약간 놀라긴 했는데 그렇다고 또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지각할 만큼 늦은 건 아니었고, 설령 늦는다고 해도 ‘알람 못 맞춰서 좀 늦었다고 얘기하면 되지 뭐’하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준비하고 나가서 차에 탔는데 에너지 바 한 개와 커피 음료가 있었다. 아내가 써 놓은 짧은 쪽지와 함께. 아내만큼이나 귀여운 글씨체로 가장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어제 나갔을 때 놓고 들어왔나 보다.


대쪽같이 공평한 업무 분담과 책임 소재 규명이 건강한 가정을 지속시키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진심 어린 격려와 인정, 존중이 화목한 가정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각 가정의 방식대로. 가장이 가장을 지키는 게 아니고 가장을 지키는 가족이 가정을 지키는 거고, 엄마가 아이를 기르는 게 아니라 엄마를 인정하는 가족이 아이를 기르는 거고. 난 아내의 편지에 정말 큰 힘을 얻었다.


아내는 오전에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어서 무척 바쁘다고 했다. 내가 나오자마자 다들 깼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더 자고 싶다고 했지만 아내가 재우지 않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아침이었다는 얘기다.


처치홈스쿨 모임 시간이 끝나고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모임 하면서 찍은 애들 사진을 보냈나 보네’


라고 기대하며 메시지 창을 열었는데, 식당이었다. 그것도 아주 익숙한, 하지만 아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결코 녹록하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아내가 사진과 함께 메시지도 보냈다.


“엄청나지?”


아내 말처럼 엄청난 시도였다. 서윤이가 자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밤에 들어 보니 서윤이가 깰까 봐 밥 먹는 내내 불안에 떨었다고 했다. 효녀 서윤이는 아내가 마지막 치즈 돈까스 한 조각을 집는 순간 깼다고 했다. 불안하긴 했지만 나름 안락한 식사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오늘 저녁은 어묵탕이었다. 이것도 약간 아내의 대표 메뉴가 된 요리다. 국물을 들이켜면 ‘크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만 나는 밥을 국에 말아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예전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 특히 그렇다. 국밥을 먹으러 가도 웬만하면 따로 먹는다). 어묵탕은 더더욱 그렇다. 나에게 어묵탕은 말 그대로 ‘탕’이다. 미역’국’ 하고는 엄연히 다른 거다. 식탁 가운데 어묵탕 냄비를 놨고, 각자 밥그릇 하나씩만 받았다. 어묵탕을 떠서 밥그릇에 부어 먹으라는 의도였을 거다. 굳이 그릇을 하나 더 꺼내지 않고 밥을 먼저 먹고 그다음 어묵탕을 먹었다. 그래도 충분히 맛있다. 난 이렇게 상황순응적인 사람이다.


무엇보다 설거지 할 때 좋다. 내가 하든 아내가 하든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서윤이를 빼더라도 네 식구에게 국그릇을 모두 따로 주면 씻어야 할 그릇이 네 개가 늘어나는 거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 식성을 바꾸든지 오늘처럼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솔직히 어떻게 먹든 진짜 너무 맛있다.


(여보. 다음부터 따로 달라는 소리 정말 아니야. 알지?)


금요일은 언제나 좋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 좋다. 이번 주말에 여행을 가기로 했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휴가까지 냈다. 오늘 밤을 새워도 거뜬할 정도의 기분이다. 일기 다 쓰면 본격적으로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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