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0(토)
지난번 양평 여행을 준비할 때, 숙소를 찾던 아내가 갑자기 양양의 숙소를 덜컥 예약했다. 당시로는 두 달 뒤인 지금쯤 예약이 가능하다면서 나에게 휴가를 내는 게 가능한지 물어봤다. 2년 전 양양 여행을 떠났을 때 묵었던 숙소였고, 아주 만족했던 곳이었다.
“취소 언제까지 되는데?”
“일주일 전까지는 전액 환불이야”
“그래? 그럼 일단 예약해. 그때 가서 안 되면 취소하지 뭐”
두 달의 시간은 금방 흘렀다. 연차 신청과 결재는 무사히 완료됐다. 두 달 전부터 잡힌 우리의 여행도 시작됐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어제 말했다. 원래 가까운 공원에 가는 척하면서 깜짝 여행을 선사할 계획이었다. ‘여행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어제 사실대로 알렸다. 고작 하루지만 여행을 기대하며 기쁘게 자라는 뜻으로. 대신 월요일과 화요일에 휴가를 냈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토요일과 주일, 이렇게 1박 2일의 짧은 여행으로 알았다.
언제나처럼 ‘차가 막히기 전에,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처음 목표한 시간에는 훨씬 못 미쳤어도 꽤 이른 시간에 출발을 하긴 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좀 덜 막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부지런하다는 걸 느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쉰 걸 빼도 거의 4시간이 걸렸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집에서 나오기 전부터 신나고 들뜬 게 느껴졌고, 긴 이동에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어디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이들과 가 볼 만한 곳을 여러 군데 찾아놨었다. 괜한 고생이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서 도착했다. 아내가 점심으로 먹을 만한 걸 이것저것 읊었다.
“생선구이는 별로다”
“왜? 좀 편하게 먹고 싶어?”
“응”
돈까스를 먹기로 했다. 옛날식 돈까스였다. 아이들은 어제도 돈까스를 먹었지만, 철저한 내 위주의 음식 선택이었다. 서윤이와 함께 먹기에 무난하기도 하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요즘 고기를 안 먹는 서윤이가 ‘돈까스도 안 먹으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했지만, 그냥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일단 갔다.
다행히 서윤이는 잘 먹었다. 어떤 고기는 거부하고 어떤 고기는 먹는 건지 기준은 모르겠다. 육종에 따라 다른 것도 아니고 조리법에 따라 다른 것도 아닌데. 아무튼 잘 먹으니 다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먹는 돈까스였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배불리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아빠의 강력한 교육 혹은 세뇌가 잘 스며들었다.
오늘 묵을 숙소는 2년 전에 갔던 그 숙소는 아니었다. 거기는 내일부터 예약이 가능해서 오늘 하루는 다른 곳을 잡았다. 자그마한 잔디 마당이 있어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했다. 짐 풀고 잠시 쉬다가 바로 마당으로 나가서 놀았다. 잠시 쉴 때 엄청난 잠의 유혹이 찾아왔지만 간신히 이겨내고 마당으로 나갔다. 하는 건 맨날 비슷하다.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냥 무작정 뛰기. 정말 자그마한 마당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실컷 뛰기에는 충분했고 지대가 약간 높은 곳이라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저녁은 아내가 미리 사 놓은 냉동 볶음밥으로 간단히 먹였다. 온라인 모임을 마치고 아내가 애들을 재웠다. 진짜 1박 2일이었다면 ‘뭐 한 것도 없이 첫날이 끝났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모르는 2박 3일이 더 있어서 든든했다. 아내와 나는 몇 번이나 말실수를 해서 소윤이에게 들킬 뻔했다. 보통 눈치가 빠른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단서에도 눈치를 챌 때가 많았다. 과연 내일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 입단속하는 걸 실패할 가능성도 매우 컸다. 다행히 오늘은 안 걸렸다. 아내와 나는 내일 모든 걸 알게 되고 기뻐할 소윤이와 시윤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내가 나가서 아내와 내가 먹을 저녁 겸 야식을 샀다. 피자와 감자튀김을 샀다. 여름에는 서퍼의 도시가 되는 곳인 만큼 휴양지의 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왠지 엄청 맛있을 것 같은 피자 가게였다. 이런 비수기에도 장사를 하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피자와 감자튀김은 진작에 도착했는데, 아내는 소식이 없었다. 서윤이가 안 잔다고 했다. 소윤이나 시윤이가 안 자면 얘기하고 나오면 되는데 서윤이는 아직 그게 안 된다. 꼼짝없이 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내는 피자와 감자튀김의 온기가 거의 다 사라졌을 때쯤 나왔다. 예상대로 피자는 식어도 맛있었다. 따뜻했으면 더 맛있었겠지.
가볍게 영화 한 편으로 지금은 긴 것 같지만 마지막 날이 되면 짧아도 짧아도 너무 짧게 느껴질 휴가의 첫날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