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양양 여행, 2일차

21.11.21(주일)

by 어깨아빠

“아, 벌써 돌아가는 날이라니. 아빠 1박 2일은 진짜 너무 짧다여. 다음부터는 1박 2일로 올 거면 그냥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낫겠어여. 여행 오는 게 좋기는 한데 너무 짧아여”

“그러게. 너무 짧네”


최대한 극적인 사실 발표를 위해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쉬움을 극대화했다. 아내와 나는 여전히 튀어나오는 말실수를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고작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는 걸 여러 번 표현했다. 그때마다 아내와 나는 눈을 맞추고 무언의 웃음을 나눴다.


체크아웃 시간을 피해 일찌감치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그전에 아침까지 먹였으니 꽤 부지런히 움직인 거다. 사실 나보다는 아내가 바쁘게 움직였다. 예배를 드린 뒤에도 정리와 짐 챙기기는 아내가 주도했다. 난 아내가 싸 놓은 짐을 열심히 차에 싣고 아이들이 아내의 정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날씨가 무척 좋았다. 우리 동네에서는 미세먼지 수치가 바닥을 찍고 있다고 했는데 여긴 아주 맑고 깨끗했다. 아직은 많이 춥지도 않았다. 체크아웃을 하면서 차에 짐을 싣고 주변 산책을 했다. 시골길 산책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같으면서도 또 다 다르다. 걸어본 사람만 아는 각각의 길 만의 매력이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빠. 또 산책해여?”


라는 질문을 날리며 지겨워하지 않는 걸 보면 아직은 산책의 즐거움을 즐기는 듯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산책을 마치고 차에 탈 때


“아빠. 이제 바로 집에 가는 거에여?”


라고 물어봤다. 능청스럽게 점심 먹고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 갈 거라고 말해 줬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어제는 피했던 생선구이를 오늘은 피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 좋은 음식이긴 하다.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그렇지. 서윤이가 곤히 잠들어서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만 먼저 들어가서 주문을 했다. 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차에서 기다렸다. 음식이 다 나왔을 때 마침 서윤이도 깼다.


역시나 예상대로 생선구이는 게으르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아내는 생선 발라주는 동안에는 거의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나도 크게 다를 바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한 입씩 먹기는 했다. 나중에는 강제로 아내가 생선에서 손을 떼게 했다. 물론 그래도 ‘엄마’인 아내는 막내에게 생선살을 발라 주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밥 먹고 카페에 들렀다가 근처에 있던 바다를 구경했다. 정말 구경만 했다. 모래도 밟지 않고 멀찌감치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꽤 쌀쌀했는데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신기한 구경이었다. 어떻게 보드를 밟고 서서 파도를 타는 게 가능한지 계속 물어봤다.


“아빠. 어떻게 저기 설 수 있어여?”

“그러게. 연습을 많이 하면 되나 봐. 아빠도 해 본 적 없어”


‘양양에서 가 볼 만한 곳’을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는 곳이 한정적이었다. 낙산사, 휴휴암, 서퍼비치가 제일 많이 나왔다. ‘아이들과’를 추가하니 조금 다른 곳이 나왔는데, 그중에 놀이터가 있었다. 공원에 있는 놀이터인 듯했는데 나름 재밌어 보였다. 선사유적박물관도 나왔는데 거기도 아이들과 가기에 괜찮아 보였다. 아이들에게 어디를 가고 싶냐고 했더니 당연히 놀이터를 골랐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을 거다.


임진각에 갔을 때 놀았던 놀이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짚라인만 탔다. 타고 또 타고 또 타고. 속도를 붙여서 재밌게 탈 수 있도록 뒤에서 계속 밀었다. 나중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서윤이는 아내가 전담했다. 그래도 바닥이 모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단조로운 우레탄 바닥도 아니었다. 인조잔디와 낙엽이 적당히 조합된, 서윤이에게 알맞게 푹신하고 재밌는 바닥이었다. 아내는 덕분에 좀 덜 힘들었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다 놀고 차에 탈 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까 그 질문을 던졌다.


“아빠. 이제 바로 집으로 가여?”

“아, 바닷가 보고 가려고”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이번에는 모래사장을 자유롭게 활보하도록 뒀다. 만약에 진짜 집으로 가는 거였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코앞에 숙소였고 욕조가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열심히 조개껍데기를 주워 모았고 서윤이는 모래밭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모래를 마음껏 만지며 놀았다. 아무리 숙소가 코앞이어도 모래를 뒤집어쓰다시피 노는 서윤이를 보니 본능적인 불편함이 올라오긴 했다.


이제 드디어 때가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너무나 아쉽지만 집에 가야 하는 때, 아내와 나에게는 진실을 밝힐 때. 모래를 꼼꼼히 털고 차에 태운 뒤에 얘기했다.


“아, 이제 진짜 안녕이네. 너무 아쉽다. 그치?”

“하아. 아빠. 진짜 너무 짧아여. 너무. 너무”

“그래, 다음에는 더 길게 오자”


숙소는 바닷가에서도 훤히 보이는, 차로 1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닷가에서 놀 때도 일부러 숙소 얘기를 했다. 2년 전에 왔던 곳인데 기억이 나냐는 둥, 이번에는 못 자고 가서 아쉽다는 둥. 서서히 차를 움직여서 숙소 앞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의아해하며 질문을 했다.


“아빠. 여기는 왜 들어온 거에여?”

“아빠. 여기가 어디에여?”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내려서 트렁크 문을 열었다.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드디어 모든 걸 밝혔다.


“소윤아, 시윤아. 사실 아빠 월요일, 화요일 휴가 냈지롱. 우리 여기서 두 밤 더 자고 갈 거야. 여기 우리 숙소야”


소윤이와 시윤이의 얼굴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으로 시작해서 점점 웃음이 번졌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확인했다.


“아빠. 진짜여? 진짜 여기서 더 잔다구여?”

“어. 아빠 월요일하고 화요일에 휴가 냈어. 회사 안 가도 돼”

“아빠. 진짜 너무 좋아여. 진짜. 너무너무 좋아여. 진짜 생각도 못했어여”


숙소에 들어가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물어보니, 차를 돌리는 줄 알았다고 했다. 조금도 눈치를 못 챘냐고 했다. 아주 뿌듯했다. 이런 게 진정한 선의의 거짓말 아닌가. 특히 소윤이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그 순간’의 감흥을 떠올리며, 나에게 당시의 감정을 전달했다. 이런 표현을 하기도 했다.


“아빠. 진짜 아까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여. 제가 여태까지 살면서 제일 좋았던 순간이에여”


아이들은 들어가자마자 욕조에서 목욕을 했다. 욕조가 넓어서 서윤이도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서윤이를 혼자 두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도 들어갔다. 서윤이는 물놀이를 좋아하긴 하는데 끝장을 보는 느낌은 아니다. 욕조에서 놀 때마다 항상 자기가 먼저 나오겠다고 했다. 오늘도 그랬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참 더 놀았다.


저녁 먹고 자려고 누웠을 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까 그 얘기를 계속했다. 내가 보기에도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행 왔다고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좋아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다. 여러 번의 위기를 넘기고 보안을 유지한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이틀이나 더 남았다는 건, 아이들만큼이나 나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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