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양양 여행, 4일차

21.11.23(화)

by 어깨아빠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아내는 따로 청소기나 청소 도구가 없는 호텔에 묵지 않는 이상 체크아웃 전에 깔끔하게 청소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대체로 에어비앤비로 가정집에 가깝거나 최대한 공용 숙소의 느낌이 덜 나는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청소기가 있다.


이번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체크아웃 전에 짐 정리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정리까지 하려면 생각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물론 오늘도 아내가 가장 바빴다. 대신 전략이나 생각이 필요 없는 청소기 돌리기는 내가 했다. 가장 중요한 짐 정리는 오늘도 아내의 몫이었다.


마지막 날이니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최대한 양양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체크아웃하고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아, 중간에 첫날 갔던 카페에 들러 커피를 샀다. 첫날은 나 혼자 가서 샀는데 분위기가 너무 괜찮아서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서윤이가 잠들어서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만 갔다 오려고 했는데 차가 멈추자마자 서윤이가 눈을 떴다. 온 가족이 함께 갔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여러 소품을 구경했다. 사장님 내외가 직접 만드는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사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처음에는 마그네틱을 골랐다가 엽서로 바꿨다. 그러다 다시 마그네틱으로 바꿀지 고민했다. 아내는 시원하게


“둘 다 사 줄게. 여행이니까”


라고 얘기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소윤이는 자기 용돈으로 엄마에게도 선물을 사 주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겨우 만류했다고 했다. 소윤이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선물을 사 주고 싶어 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소윤이의 가장 강력한 사랑의 언어는 ‘선물’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크고 작은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소윤이에게 되돌려 주는 선물이 너무 게을러서 미안할 따름이다.


대낮에 출발하니 정말 얼마 안 걸렸다. 첫날의 절반도 안 걸렸다. 집에 가기 전에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아내가 장모님과 종종 가는 쇼핑몰 안의 식당이었다. 아이들과 먹기 딱 좋은 두부 요리가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들깨 순두부, 아내와 나는 쭈꾸미를 먹었다. 아내는 신선한 쌈 채소를 마음껏 가져다 먹는 게 가능해서 그곳을 좋아한다. 난 밥을 먹다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며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도 병에 걸렸어”

“무슨 병이여?”

“정신이 없으면 쌈을 싸 먹지 못하는 병”


생선구이에 비하면 천국의 식사였지만 그래도 서윤이를 챙기는 건 언제나 바쁘다. 아무리 쌈이 무한 제공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림의 쌈일 뿐이다. 아내가 나를 위해 계속 쌈을 사서 입에 넣어줬다. 싸 주는 쌈 속에 오고 가는 부부의 사랑 아니 전우애인가.


직장인에게 3박 4일이면 그래도 짧은 여행은 아니었는데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저께 밤, 2박 3일을 더 머무르게 된다는 걸 듣게 된 그 순간을 얘기했다. 그때 너무 좋았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냐며.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사자인 나 못지않게 올해 아빠의 남은 연차가 없다는 걸 아쉬워했다.


“아빠. 그럼 내년에는 다시 생겨여?”

“어, 그렇지. 12월까지는 휴가가 없다는 말이지. 12월까지 쉬는 날도 없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이들은 일찌감치 재웠다(그렇다고 뭐 평소에 비해 이른 시간은 아니었고 그냥 평소처럼 재웠다). 아이들은 간단하게 계란밥으로 저녁을 먹였지만 아내와 나는 먹지 않았다.


“여보. 우리 아직 여행이야”


아내의 말은 여러 영역에서 자유를 주는 일종의 자기 선언이었다. 경제적, 육체적(몸무게적) 가책에서 자유롭기 위한 여행 연장 선언.


아내와 나는 거나하게 떡볶이를 먹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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